PODCAST · news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by 김형래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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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6] 40억 달러를 되돌려주고 떠난 사람
네 살에 어머니를 잃고 여덟 살에 일터로 나갔던 소년, 90년의 생애 끝에 무엇을 남겼는가지난 7월 18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에서 한 시니어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름은 토머스 데니 샌포드(Thomas Denny Sanford), 향년 90세였습니다. 뉴욕타임스가 7월 22일자 부고면에 그의 별세를 알렸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만, 그가 생전에 자선단체에 내놓은 금액을 확인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조 5,000억 원이 넘습니다. 본문의 원화 환산은 1달러당 1,380원을 기준으로 했습니다.네 살과 여덟 살그는 1935년 12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에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여의었고, 여덟 살에 의류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유년입니다. 유족과 지인들은 바로 그 결핍의 경험이 타인을 돕고자 하는 열망의 뿌리가 되었다고 전합니다.1958년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그는 영업과 마케팅, 자재 유통 분야를 거쳤고, 밀봉재와 코팅제, 접착제를 만드는 제조회사 콘텍을 창업했습니다. 전환점은 1986년이었습니다. 회사를 매각한 자금으로 수폴스의 한 은행을 인수해 퍼스트 프레미어 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어 신용카드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제조업에서 출발해 소비자 금융에서 부를 완성한 셈입니다.첫 기부는 예순을 넘겨서기부의 출발은 1999년이었습니다. 사우스다코타 아동의 집 협회에 낸 200만 달러(약 27억 6,000만 원)가 첫 대규모 기부였습니다. 이미 예순을 넘긴,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시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눈여겨봅니다. 나눔의 시작이 청년기가 아니라 시니어의 문턱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규모가 달라진 것은 2007년입니다. 지역 의료기관인 수밸리 보건 시스템에 4억 달러(약 5,520억 원)를 단번에 기부했고, 그 기관은 이름을 샌포드 헬스(Sanford Health)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추가 기부는 샌포드 어린이병원을 비롯한 전문 의료시설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방향은 일관됐습니다. 아동복지와 보건의료, 고등교육, 인력 양성, 예술이 축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의 샌포드 재생의학 컨소시엄과 샌포드 버넘 프레비스 의학연구소,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래디 어린이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했습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사회정서 교육 프로그램 샌포드 하모니와 내셔널대학교 샌포드 교육대학도 그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우스다코타에는 블랙힐스의 샌포드 지하연구시설(Sanford Underground Research Facility)과 크레이지호스 메모리얼에 거액을 냈고, 주 안에서 기술인력을 길러내는 빌드 다코타 장학사업을 창설했습니다.축적과 환원은 따로 저울에 올려야 합니다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하겠습니다. 그의 재산은 상당 부분 소비자 신용카드 사업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카드 금리와 수수료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기부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축적 과정에 대한 검증이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축적 과정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환원의 실체까지 지워버릴 일도 아닙니다. 두 가지는 각각 저울에 올려야 합니다. 그것이 공정한 평가의 기본입니다.한국의 시니어에게 남는 질문한국도 자산이 시니어 세대에 집중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자산이 사회로 흘러갈 통로가 아직 좁다는 점입니다. 기부는 여전히 기업과 연말 캠페인 중심이고, 개인이 생전에 설계하는 유산 기부는 제도와 인식 양쪽에서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자발적 나눔이 국가의 복지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도가 닿지 못하는 틈을 먼저 메우고, 공적 체계가 굳어지기 전에 앞서 실험해 보는 역할은 민간의 몫입니다. 샌포드가 병원과 연구소와 장학재단을 세운 방식이 정확히 그러합니다. 그는 돈을 뿌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떠난 뒤에도 남을 구조물을 세웠습니다.숨이 다하기 전에그가 평생 품었다는 좌우명은 짧습니다. 숨이 다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라(Aspire to inspire before you expire). 운을 맞춘 말장난처럼 들립니다만, 여든을 넘겨서도 기부를 이어간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무게가 다릅니다.유족은 조화 대신 각자가 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이름이 아니라 다음 사람의 행동을 남기려 한 것입니다. 40억 달러는 우리 대부분과 무관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예순을 넘겨 시작했다는 사실, 재산이 아니라 구조를 남겼다는 사실, 그리고 끝까지 남에게 권했다는 사실은 액수와 무관합니다. 시니어의 후반생이 소비의 시간이 아니라 환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한 장의 부고가 우리에게 남긴 실질적인 유산일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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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5] 황혼 이혼, 두 사람만의 결정이 아닙니다
황혼 이혼은 성인 자녀와 가족 전체가 함께 흔들립니다▲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것입니다.한 통의 편지가 제기한 물음미국 뉴욕타임스가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자 A23면 오피니언 섹션에 실은 독자 편지 한 통이, 시니어 세대의 이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미시간주 앤아버에 사는 웬디 피셔 하우스(Wendy Fisher House)로, 노년기 이혼이 성인 자녀와 가족에게 남기는 영향을 다룬 저서를 낸 인물입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같은 신문이 7월 2일 목요일 자 스타일 섹션에 게재한 기사였습니다. 해당 기사는 시니어 세대가 이름만 남은 결혼 생활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는 흐름을 다루었습니다.편지의 요지는 간명합니다. 결혼 생활이 형식만 남은 것이었든 서로에게 해로운 것이었든, 노년기의 이혼은 부부 두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가족이라는 체계 전체를 지진처럼 흔든다는 것입니다.성인이 되었다고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편지의 필자는 열여덟 살부터 쉰 살, 그 이상에 이르는 성인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사회에 갓 나선 자녀들은 졸업과 결혼, 출산이라는 인생의 이정표를 지나는 동안 여전히 부모의 지원에 적지 않게 기대고 있습니다. 중년에 접어든 자녀들은 자기 가정과 직장에서 짊어진 책임이 가장 무거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으며, 이미 조부모가 된 부모에게 손자녀 돌봄을 비롯한 도움을 청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부모가 갈라서는 순간, 이들 자녀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갑니다. 두 분이 각각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홀로 설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계신가. 신체적 또는 인지적 어려움은 없으신가. 재혼이 이루어질 경우 확대된 가족의 재정 구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편지는 이러한 물음들이 고스란히 자녀 세대의 어깨 위에 얹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혼의 원인과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에만 시선을 좁히면 가족 관계의 소원함, 나아가 단절까지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시기에 누구에게도 또 하나의 상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편지가 남긴 마지막 문장입니다.왜 그동안 간과되어 왔는가구조적으로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혼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을 미성년 자녀로 상정합니다. 양육권과 양육비, 면접교섭은 모두 미성년을 전제로 설계된 장치입니다. 성인 자녀는 이미 독립한 존재로 간주되어 제도의 시야 밖에 놓입니다. 그러나 가족은 부품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도는 하나의 체계입니다. 한 축이 어긋나면 그 진동은 세대를 건너 전달됩니다.수명이 길어진 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예순에 갈라선 부부에게는 이후 이삼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였던 살림이 둘로 나뉘면서 주거비와 생활비, 의료비가 이중으로 발생하고, 그 부담의 일부는 결국 자녀 세대로 흘러갑니다. 명절과 결혼식, 돌잔치처럼 가족이 모여야 하는 자리는 매번 조율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묵은 갈등이 되살아나는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한국의 사정은 오히려 더 무겁습니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이른바 황혼 이혼(gray divorce)은 최근 수년간 전체 이혼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특유의 조건이 겹칩니다. 손자녀 돌봄의 상당 부분을 조부모가 감당해 온 관행, 부모 부양에 대한 도덕적 기대,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 이해관계가 그것입니다. 부모의 이혼은 이 세 축을 동시에 흔듭니다. 국민연금의 분할연금처럼 혼인 기간 중 형성된 노후 소득을 나누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나, 이는 소득의 일부를 조정할 뿐 두 사람이 각자의 생활을 온전히 꾸릴 재원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인내가 답은 아니되, 자기결정만도 답은 아닙니다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폭력과 학대, 회복이 불가능한 신뢰의 파탄 앞에서 분리는 마땅한 선택이며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이혼을 오로지 개인의 자기결정 문제로만 환원하는 요즘의 화법에는 빠진 것이 있습니다. 가족은 계약의 당사자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그 결정의 비용을 함께 치르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필요한 것은 감정에 기댄 호소가 아니라 합리적인 절차입니다. 결정에 앞서 두 사람 각자의 노후 재정을 냉정하게 계산하고, 건강 상태와 돌봄 필요를 점검하며, 성인 자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왕래와 가족 행사의 원칙을 미리 정해 두는 일입니다. 가족상담과 법률상담을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는 이혼을 막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갈라선 뒤에도 관계가 완전히 끊기지 않도록 붙드는 장치입니다.사회는 홀로 서게 된 시니어의 주거와 소득, 돌봄을 뒷받침해야 하고, 당사자는 남은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각오와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녀 세대에게는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되 감당할 수 있는 몫과 그렇지 않은 몫을 분별할 권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내리는 결정일수록, 그 결정이 가닿는 사람들의 얼굴을 먼저 헤아리는 일이 순서일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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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4] 화려한 경력도 노후를 지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정상의 자리에서 중년의 재정 위기로 내려앉은 영국 중장년층의 사연과, 오래 묶여 있는 세금 면세 기준이 만들어 낸 이른바 조용한 증세의 구조를 함께 짚어 봅니다.한때 사회적으로 촉망받던 고소득 직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한 인물이 중년에 이르러 재정적으로 무너져 이른바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는 고백이 최근 영국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는 2026년 7월 20일 자 1면에 이 사연을 주요 기사로 예고하고, 생활·문화 별지 부록 타임스2(TIMES2)의 표지 기사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겉으로는 한 개인의 사연이지만, 그 안에는 오늘날 여러 사회의 중장년층이 공통으로 겪는 재정적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성공의 정점에서 맞은 반전젊은 나이에 빠르게 정상에 오른 이 기사의 주인공은, 청년기의 경력만 놓고 보면 재정적 어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년에 접어들며 예상치 못한 해고와 사업 실패, 건강 문제, 그리고 빠르게 바뀌는 산업 구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 가는 과정을 겪으며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랫동안 몸담아 온 직업과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면, 사람은 소득뿐 아니라 자신이 서 있던 자리의 감각마저 함께 잃게 됩니다.드러내지 못하는 곤경, 그 뒤의 구조더 어려운 대목은 많은 사람이 체면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감춘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예전의 위신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그 이면에서는 과도한 대출 부담과 오르는 물가, 그리고 예전만큼 촘촘하지 못한 복지 안전망이 한꺼번에 짓누르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압박이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배경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의 소득세 면세 구간, 곧 그 금액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기준선인 개인 기본공제액(personal allowance)이 오랫동안 제자리에 묶여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이 공제액은 2021년 4월 이후 1만 2,570파운드(약 2,534만원, 2026년 7월 22일 기준 1파운드당 약 2,016원 적용)에서 한 걸음도 오르지 않았고, 당초 2026년에 끝날 예정이던 동결 조치는 2028년으로, 다시 지난해 가을 예산에서 2031년 4월까지로 거듭 연장되었습니다.물가와 임금은 해마다 오르는데 면세 기준만 그대로이면, 실제로 세금을 내기 시작하는 문턱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지는 셈이 됩니다.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세 부담이 늘어나는 이 현상을 영국에서는 재정적 견인(fiscal drag), 또는 조용한 증세라고 부릅니다. 영국 예산책임청(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 OBR)의 추계에 따르면 이 동결로 2030/31 회계연도까지 약 520만 명이 새롭게 소득세 납부 대상으로 편입되고, 약 480만 명이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밀려 올라갈 것으로 추산됩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한 개인의 몰락 뒤에는, 이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제도의 흐름이 겹겹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이 이야기가 먼 나라의 사연으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이 있습니다. 은퇴 이후 소득이 갑자기 끊기는 이른바 소득 절벽, 중장년의 재취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 퇴직금을 밑천으로 뛰어든 자영업의 높은 위험, 그리고 무리한 대출이 노후를 짓누르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의 경력이 그대로 노후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영국의 사례가 담담하게 일깨워 줍니다.그런 점에서 이 기사는 시니어 세대와 은퇴를 앞둔 중장년에게 두 가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지금의 소득과 지출, 그리고 부채의 균형을 정확히 알고 계신지,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을 때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을 마련해 두셨는지 말입니다. 국가의 안전망은 마지막 순간 우리를 받쳐 주는 소중한 장치이지만, 그것에만 기대기보다 성실한 준비와 분수에 맞는 씀씀이라는 오래된 미덕을 함께 지켜 갈 때, 노후는 한결 단단해집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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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3] 중국, 정년 지난 ‘백발 인재’ 다시 부른다
… 시니어 경험 활용과 세대 상생의 과제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드는 중국이 정년을 마친 숙련 전문 인력을 다시 일터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노동력을 메우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청년 구직 시장과의 마찰이라는 새로운 숙제도 함께 안겨 주고 있습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SCMP)는 최근 중국의 여러 공공 부문이 숙련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이른바 ‘백발 인재’ 채용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정년으로 현장을 떠났던 전문가들을 다시 불러들여, 오랜 세월 쌓아 온 경험과 기술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입니다.대표적인 사례가 쓰촨성의 한 대학에서 전기공학 교수로 일하다 정년을 맞은 62세 루 씨입니다. 그는 오는 9월부터 같은 대학에서 연구원 신분으로 다시 근무하며,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연구 과제를 이어 가게 됩니다. 대학 측이 경험이 풍부한 그에게 남은 연구를 계속 맡기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새로 받게 될 급여는 퇴직 전보다 줄어든 월 1만 위안(약 200만 원, 원·위안 환율 위안당 약 200원 기준) 안팎입니다. 다만 이미 연금을 받고 있어 대학은 별도의 사회보장보험을 부담하지 않아도 됩니다. 루 씨는 금전적 보상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계속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가파른 인구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0세 이상 인구는 3억23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3%에 이릅니다. 이 비중은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남성의 법정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3세로, 여성 사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55세에서 58세로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정년 연장과 함께, 이미 은퇴한 인력을 다시 활용하려는 시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윈난성 교통 당국은 지난달 은퇴 기술자 42명을 사업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젊은 직원들을 지도하도록 했고, 푸젠성 취안저우시도 올해 초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대학가에서도 안후이성·헤이룽장성·산둥성 등지의 여러 대학이 퇴직 교수 재채용 공고를 잇달아 냈으며, 의료계에서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한 공립 병원이 지난달 말 은퇴한 의사 5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이처럼 시니어의 경험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두고, 전문가들은 그 잠재력에 주목합니다. 중국 정부 산하 광둥개혁학회의 펑펑 회장은 중국이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가운데 집에서 쉬고 있는 건강한 은퇴자가 상당수에 이르며, 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오랫동안 논의돼 온 과제라고 진단했습니다.그러나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퇴직자 재채용이 자칫 매년 쏟아지는 수백만 명의 대학 졸업생에게 또 다른 경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펑 회장 역시 정책 당국이 고령화 부담을 덜기 위해 시니어의 노동시장 복귀를 기대하는 반면, 청년들은 이미 매우 치열한 취업 경쟁에 놓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년 정책 개혁은 충분한 평가를 거쳐 점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중국의 사례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 시니어 재고용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현장에서 다져진 시니어의 숙련과 판단력은 하루아침에 대체하기 어려운 사회적 자산입니다. 건강하고 일할 의지가 있는 시니어가 그 경험을 이어 갈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안정을 떠받치는 길이기도 합니다.다만 그 방향은 신중하고 균형 잡힌 것이어야 합니다. 시니어의 복귀가 청년의 첫 일자리를 밀어내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대가 자리를 두고 다투는 구도가 아니라, 경험 있는 시니어가 후배를 이끌고 청년이 새로운 활력을 더하는 상생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니어에게 합당한 역할과 자리를 제공하는 지원과 함께, 그 역할에 걸맞은 책임과 기여를 요구하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어느 세대도 부당하게 소외되지 않도록, 정책은 충분한 검증을 거쳐 단계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합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시니어를 부담이 아니라 자산으로 바라보되, 그 활용이 세대 간 질서와 공정이라는 원칙 위에서 이루어질 때, 고령화라는 도전은 비로소 우리 사회를 한층 성숙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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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2] 무엇이든 세금으로? ― 영국 신임 총리의 '사망세' 구상이 던지는 물음
영국이 2026년 7월 20일 앤디 버넘(Andy Burnham) 신임 총리를 맞이했습니다. 키어 스타머 전 총리의 사임으로 노동당 대표에 오른 그는 취임과 거의 동시에 이른바 '사망세(death tax)' 도입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며 찬반 논란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사회적 돌봄 개혁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적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각오까지 밝혔다고 영국 더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전했습니다. 오래된 난제 앞에서 정치가 가장 먼저 손을 뻗는 곳이 결국 국민의 지갑이라는 익숙한 습성을, 이번 논란은 다시 한 번 드러냅니다.'사망세'란 무엇인가버넘 총리의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2010년 보건부 장관 시절, 국가 돌봄 서비스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사망 시 전체 유산의 10퍼센트를 일괄 징수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보수당은 이를 '사망세'로 규정해 강하게 반발했고, 그해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하면서 이 구상은 흐지부지됐습니다. 그러나 버넘 총리는 이후로도 뜻을 굽히지 않았고, 최근에는 보편적 돌봄 체계 구축을 위해 적절한 시점에 구체적 방안을 내놓겠다며, 기존 상속세를 통합해 사망 시 유산에 일괄 과세하는 이른바 '돌봄 부과금(care levy)'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현실의 문제는 분명합니다그가 이 문제에 오래 매달리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현재 영국의 돌봄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시니어가 보유 자산 총액이 2만 3250파운드(약 4,685만원, 7월 21일 매매기준율 1파운드 약 2,015원 적용)를 넘으면 지방자치단체의 돌봄 비용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전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시니어가 평생 지켜온 집까지 팔아 요양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립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부친을 직접 간병한 버넘 총리는, 취약한 계층일수록 더 많은 비용을 떠안고 한평생 일군 재산을 모두 잃게 되는 구조가 지나치게 불공정하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이 문제의식 자체는 정당합니다.그러나 '증세'가 답은 아닙니다문제는 해법입니다.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대로 된 운영 계획과 대응책을 세우기보다 세금 인상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다는 비판, 복지 확대를 명분 삼아 국민 부담을 늘리는 오래된 방식이라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실제로 이 대목에는 뼈아픈 역설이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앞서 지원 기준 자산액을 10만 파운드(약 2억원)로 올리고 평생 돌봄 비용의 상한을 8만 6000파운드(약 1억 7,300만원)로 두어 시니어의 자산을 지켜주려던 개혁안을 이미 마련해 두었으나,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백지화한 바 있습니다. 시니어의 재산을 보호하려던 장치는 거둬들이고, 이제 그 재산에 새 세금을 물리겠다는 셈입니다.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자산 기준액 2만 3250파운드는 2010년 이후 15년째 그대로 묶여 있습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기준선은 고정된 탓에, 해마다 더 많은 시니어가 자비 부담 대상으로 끌려 들어왔습니다. 손대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용히 세 부담을 늘려온 셈입니다. 여기에 죽음의 순간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일은, 한평생 모은 재산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문제와 맞닿아 있어 재산권과 세대 간 공정성이라는 예민한 지점을 건드립니다.한국 사회에 던지는 물음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역시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 부담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돌봄과 복지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보험료율 인상이나 증세부터 떠올리는 관성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그 재원 부족을 손쉽게 국민 부담으로 돌리는 방식은 당장은 편해 보여도 신뢰를 갉아먹습니다.시니어의 안전망을 지키는 일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다만 그 안전망은 규율 있는 개혁과 효율적인 재정 운용으로 지켜야지, 세금이라는 손쉬운 카드로 메워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금이 꼭 필요한 자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재정의 절제와 국민의 신뢰를 함께 허물고, 그 부담은 끝내 보호하겠다던 시니어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죽음에까지 세금을 물을 것인가를 국민에게 묻기 전에, 정부가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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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1] 가족 없는 시니어의 입원·사후 사무, 일본은 공공이 나선다 개정 사회복지법 성립…
지자체·사회복지협의회, 저비용 종활 지원 길 열려. 초고령 한국에도 던지는 물음혼자 사는 고령 세대가 빠르게 늘면서, 곁에 의지할 가족이 없는 시니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이웃 일본에서도 무거운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이런 지원은 주로 민간 사업자나 법률 전문직의 몫이었으나, 최근 일본에서는 공적 영역이 새로운 선택지로 등장했습니다. 인생의 마무리를 미리 준비하는 이른바 종활(終活)을, 사회가 함께 거들기 시작한 것입니다.법이 바뀌었습니다그 배경에는 법 개정이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経済新聞) 보도 등에 따르면, 일상적인 금전 관리와 같은 지원을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협의회(社会福祉協議会)가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맡도록 하는 개정 사회복지법(改正社会福祉法)이 2026년 6월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해 성립되었습니다. 공포일로부터 2년 안에 시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은 2028년 6월까지 새 지원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신원보증'이라는 벽문제의 한복판에는 신원보증(身元保証)이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시설에 들어갈 때는 대개 신원보증인이 필요합니다. 보증인은 입퇴원 절차를 돕고, 긴급 연락처가 되며, 비용 지불까지 책임지도록 요구받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입원을 거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을 이미 밝혔지만, 비용 미납을 염려하는 의료기관은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 해 구급 환자 2만여 명을 받는 요코하마의 한 병원에서는 보증인이 없을 경우 옮겨 갈 병원을 찾기 어려운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오사카의 80대 남성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가 암이 상당히 진행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수십 년 전 이혼으로 자녀와 연락이 끊기고 형제도 고령이어서 의지할 친족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경우에는 입원과 입소는 물론, 세상을 떠난 뒤의 장례와 납골, 유품 정리, 행정 절차와 같은 사후 사무(死後事務)까지 누군가 대신 맡아야 합니다.공공 지원의 등장, 그리고 비용이번에 주목받는 곳이 바로 사회복지협의회입니다. 지금까지는 가벼운 치매 등으로 판단이 어려운 이들의 금전 관리를 돕던 이 조직이, 앞으로는 가족 없는 시니어에게로 대상을 넓혀 일상생활 지원과 입퇴원 수속, 사후 사무까지 거들게 됩니다. 소득과 자산이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이용자는 무료이거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도쿄 분쿄구의 사회복지협의회는 계약 시 입회금과 연회비를 합쳐 2만 5,000엔(약 23만원, 2026년 7월 20일 100엔당 약 916원 기준)을 받고, 긴급 입원비 등에 대비한 예탁금 50만엔(약 458만원)을 맡깁니다. 반면 민간 종신 지원 사업자를 이용하면 계약금이 대략 100만~200만엔(약 920만~1,830만원)에 이르고, 사법서사 등 법률 전문직을 통할 경우 안부 확인부터 사후 사무까지 30만~70만엔(약 275만~640만원)선이 목표치로 제시됩니다. 서비스 범위가 넓을수록 비용도 높아지는 셈입니다.다만 계약에는 반드시 살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종합연구소(日本総合研究所)의 한 시니어 전문가는, 먼저 자신의 자산과 의지할 사람의 유무를 헤아린 뒤 무엇을 얼마에 맡길지 분명히 하고, 제공 내용과 비용이 서로 걸맞은지 따져 보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사업자가 계약자의 사후에 남은 재산을 받도록 되어 있다면, 서비스에 돈을 덜 쓸수록 남는 재산이 늘어나는 이해 상반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깊이 새겨들을 만합니다.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이 이야기는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고, 홀로 사는 시니어와 무연고 사망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도의 뼈대는 갖추어져 있습니다. 2013년부터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아직 판단 능력이 온전할 때 신뢰하는 사람과 후견의 내용을 미리 정해 두는 임의후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재산 관리와 의료 결정, 사후 처리에 관한 뜻을 문서로 남겨 두면 훗날의 혼란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후견과 유언, 신탁은 법률과 재산이 얽힌 사안인 만큼, 변호사나 법무사 같은 전문가와 상담해 자신의 형편에 맞는 길을 찾으시기를 권합니다. 일상의 돌봄 또한 혼자 짊어질 일이 아닙니다. 홀로 지내는 시니어라면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독거노인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시니어 세대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온 경험과 절제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 자산이 끝까지 존엄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책임과 이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공동체의 지원이 함께 가야 합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연대야말로, 가족의 빈자리를 메우는 가장 굳건한 힘입니다. 부모님이나 홀로 계신 친척과 오늘 나누는 짧은 대화 한마디가, 훗날 나와 가족 모두에게 큰 위안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취재·출처 본 칼럼은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経済新聞) 보도와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 등을 바탕으로, 원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재구성해 정리했습니다. 엔화 환산액은 2026년 7월 20일 기준 100엔당 약 916원을 적용한 근사치입니다. 본문에 소개한 사례와 수치는 보도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세부 기준은 정책 시행 지침이 확정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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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20] 처음 넘어선 벽이, 다음 도전을 부릅니다
시니어의 '첫 번째 순간', 그리고 세대가 함께 짜는 안전망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앞에 두면 누구나 망설입니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아직 자신만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 사람일수록, 또 나이가 들수록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난생처음 해낸 경험 하나는 "다음에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오래 남습니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가이자 구직 상담 분야의 오랜 조언자인 러스 핀켈스타인(Russ Finkelstein)이 최근 한 지면에 풀어놓은 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열두세 살 무렵, 어질러진 무료 급식소 식료품 창고를 스스로 나서서 정리한 일을 자신의 '첫 프로젝트'로 꼽습니다. 어른을 설득해 책임을 맡고, 방법을 찾아 끝까지 마무리한 그 경험이 이후 삶의 크고 작은 도전 앞에서 "한 번 됐으니 또 될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입니다.4분의 벽, 그리고 무너진 '불가능'첫 성취의 힘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꾸기도 합니다. 대표적 사례가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하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이 기록은 1954년 5월, 영국의 의대생이자 육상 선수였던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가 3분 59초 4로 처음 무너뜨렸습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불과 46일 만에 호주의 존 랜디(John Landy)에게 깨졌고, 같은 해 여름 두 사람이 맞붙은 대회에서는 한 경주에서 두 명이 동시에 4분 벽을 넘는 장면이 처음으로 연출되었습니다. 이후 3년 사이에만 열다섯 명의 주자가 같은 기록에 도달했으며, 오늘날에는 "에베레스트를 오른 사람보다 4분 벽을 넘은 주자가 더 적다"던 배니스터 자신의 회고가 무색할 만큼 많은 이들이 그 벽을 통과했습니다. 누군가 '처음'을 열어 보이면, 뒤따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불가능'이라는 빗장이 풀리는 것입니다.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의구심문제는, 아직 자신만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 이들에게 이 심리적 장벽이 나이가 들수록 더 무겁게 얹힌다는 점입니다. 핀켈스타인은 자신이 만난 많은 사람이 "나는 남에게 가르쳐 줄 만한 성취를 단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고 믿더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학교를 졸업했거나 오랜 직장 생활을 거쳐 온 사람이라면, 그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험을 간절히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변에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주목해야 할 지점입니다.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이미 수많은 '첫 번째 순간'을 통과해 온 시니어에게는, 스스로 과소평가하기 쉬운 경험의 자산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안전망은 홀로 짤 수 없습니다그렇다면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핀켈스타인이 제시하는 방법은 의외로 담백합니다. 첫째, 가장 먼저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하나 정하고 자신이 쓸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할 것. 둘째, 그 일을 이미 해낸 사람을 찾아 배울 것, 개인적 인연이 없다면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방법도 있습니다. 셋째, 누구에게나 똑같이 던질 공통 질문의 목록을 미리 준비할 것. 넷째,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돕는 단체나 조력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것. 다섯째, 나를 책임감 있게 이끌어 줄 사람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과 단계별 목표, 그리고 일정을 세울 것. 요컨대 막연한 결심이 아니라 검증된 사람에게 배우고, 합리적 기준과 계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라는 조언입니다.주목할 것은 그가 도약의 위험을 덜어 주는 '그물', 곧 안전망의 존재를 거듭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아래에서 나를 받쳐 줄 누군가가 있다면 큰 도약도 한결 덜 두렵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그가 책과 조사, 그리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진 벗들에게 기대어 낯선 세계를 헤쳐 왔듯, 오늘의 그는 지도를 그리고 안내서를 쓰며 다른 이들이 의구심의 협곡을 건너도록 돕고 있다고 말합니다.스스로 돕되, 서로의 그물이 되어이 이야기는 청년과 초기 창업자를 향한 조언으로 쓰였지만, 그 울림은 시니어 세대에게 오히려 더 깊습니다. 한편으로 시니어는 은퇴 이후의 새로운 일거리, 낯선 디지털 기기와 인공지능(AI) 도구, 지역 사회에서의 새 역할 등 여전히 수많은 '처음'을 마주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검증된 사람에게 배우고 계획으로 무장하는 냉철함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시니어는 자신이 이미 통과해 온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의 '첫 번째 순간'을 받쳐 주는 든든한 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세대 사이의 관계는 서로의 몫을 다투는 갈등이 아니라, 서로의 도약을 받쳐 주는 연대일 때 가장 튼튼합니다.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서로를 받쳐 주는 배려는 어느 하나도 뺄 수 없는 두 축입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경험과 질서를 자산으로 지키되,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합리적 기준으로 길을 여는 것. 이것이 시니어가 자신과 이웃을 위해 함께 안전망을 짜는 길입니다. 먼저 벽을 넘어 본 사람의 뒷모습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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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9] 물가 3.2퍼센트와 7월 31일, 시니어의 셈법은 다릅니다
유류세 인하 시한 보름 앞… 호르무즈 재봉쇄로 다시 흔들리는 기름값과 밥상지난 7월 2일 국가데이터처가 내놓은 6월 소비자물가동향은 3.2퍼센트 상승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이후 2년 6개월 만의 최고치입니다. 1월과 2월 2퍼센트대에서 안정돼 있던 물가는 2월 말 중동에서 전쟁이 터진 뒤 3월 2.2퍼센트, 4월 2.6퍼센트, 5월 3.1퍼센트, 6월 3.2퍼센트로 넉 달 연속 올랐습니다. 석유류가 24.7퍼센트 급등해 전체 물가를 0.93퍼센트포인트 밀어 올린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흐름을 억눌러 온 두 개의 버팀목 가운데 하나가 보름 뒤 시한을 맞습니다.사상 초유의 가격 상한, 106일 만의 첫 인하정부가 꺼낸 첫 카드는 석유 최고가격제였습니다. 3월 13일 시행된 이 제도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의 상한을 정부가 직접 정하는 방식입니다. 시장경제에서 특정 품목의 가격 천장을 국가가 못 박는 일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효과는 수치로 남았습니다. 재정경제부는 이 제도가 없었다면 6월 물가 상승률이 3.6퍼센트에 달했을 것이라며 약 0.4퍼센트포인트를 낮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3월 27일 2차 조정에서 리터당 210원이 올랐고, 3차부터 6차까지 네 차례 동결을 거쳐, 6월 27일 7차 조정에서 시행 106일 만에 처음으로 전 품목 150원이 내렸습니다. 현재 상한은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입니다.7월 31일, 두 번째 버팀목의 시한또 하나의 축은 유류세 인하입니다. 정부는 3월 27일 인하 폭을 휘발유 7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경유 1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확대했습니다. 산업과 물류에 필수적인 경유에 더 높은 인하율을 적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하 효과는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리터당 휘발유 122원, 경유 145원입니다. 당초 5월 말 종료 예정이던 이 조치는 7월 31일까지 두 달 연장됐고, 그 시한이 보름 앞입니다.정부는 6월 26일 필요하면 추가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강기룡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국제유가 흐름과 국내 가격, 소비량, 물가 파급효과를 살피고 있다면서도 목적예비비로 확보해 둔 4조 2천억 원의 재원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한다고 밝혔습니다. 세금을 깎는 일은 나라 곳간이 감당하는 기간만큼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문제는 상황이 되레 나빠졌다는 점입니다. 현지 시간 7월 13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이란 해상 봉쇄 재개를 예고하자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약 10퍼센트 뛰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8월물은 78.14달러(약 11만 5,600원), 브렌트유 9월물은 83.30달러(약 12만 3,300원)로 마감했습니다. 원화 환산은 7월 16일 원·달러 환율 1,480원을 적용한 것입니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해상 원유의 약 4분의 1이 지나는 길목입니다. 산업통상부는 7월 도입 물량은 확보돼 있으나 전쟁이 길어지면 8월 이후 수급이 빡빡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같은 3.2퍼센트가 시니어에게 다르게 읽히는 까닭시니어 독자께서 정작 눈여겨보실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6월 농축수산물이 3.2퍼센트 올랐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파 37.1퍼센트, 쌀 11.7퍼센트, 조기 12.0퍼센트, 달걀 10.3퍼센트, 국산 쇠고기 7.5퍼센트입니다. 자주 사는 품목만 모은 생활물가지수는 3.4퍼센트로 전체보다 높았습니다.같은 3.2퍼센트라도 체감이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소비에서 식료품과 연료비 비중이 큰 가구일수록 실제 부담은 발표치보다 큽니다. 시니어 가구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더구나 근로소득자는 임금이 물가를 뒤따라 오르지만 연금은 다릅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이듬해에 조정되므로, 물가가 오른 그해의 구매력 손실은 소급해 메워지지 않습니다. 물가 상승은 연금생활자에게 사실상 소득 삭감입니다.한국은행은 7월 16일 기준금리를 연 2.75퍼센트로 0.25퍼센트포인트 올렸습니다. 2023년 초 이후 첫 인상입니다. 물가를 잡고 약세를 보이던 원화를 떠받치겠다는 신호입니다. 예금 이자에는 도움이 되지만 빚이 있는 가구에는 부담이 늘어납니다. 같은 시니어라도 유불리가 갈립니다.두 개의 시각, 하나의 전제정부는 1조 원 규모의 재정·세제·금융 수단으로 하반기 물가를 3퍼센트 이내로 묶겠다고 했습니다. 하반기 전기·가스 요금 동결, 에너지바우처 수급 가구 중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쓰는 22만 가구에 동절기 추가지원금 14만 7천 원 지급, 소상공인 대출 1조 5천억 원에서 3조 원 확대 등입니다. 정유사와 주유소 등 관련 품목의 담합 혐의 조사도 병행합니다.당정은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경유가 리터당 2,800원까지 갔을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 가격 통제와 세금 감면이 근본 처방일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유류세 인하는 유가 상승분을 재정이 대신 떠안는 방식이고, 가격 상한을 오래 유지할수록 시장 왜곡과 공급 위축 우려가 커진다는 것은 경제학의 오랜 경고입니다. 정부가 최고가격 고시 주기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출구를 찾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두 시각 모두 일리가 있으나 전제는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야 한다는 것이고, 그 시점은 우리가 정하지 못합니다.지켜볼 세 가지, 그리고 한 가지 당부이달 하순에 일정이 몰려 있습니다. 첫째, 7월 31일 유류세 인하 종료 여부입니다. 둘째, 8차 석유 최고가격 결정입니다. 7차가 6월 27일부터 4주 적용이므로 다시 조정 시점이 옵니다. 셋째, 2026년 세제개편안입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7월 10일 브리핑에서 늦어도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발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여기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시니어 세대는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을 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이 있습니다. 가격을 억누른다고 부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위기의 첫 타격은 언제나 난방과 밥상에 여유가 없는 가구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급한 불을 끄는 일은 정당합니다. 다만 임시 조치는 임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출구의 조건과 일정을 미리 알려야 합니다. 예측 가능성이 곧 신뢰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두텁게 돕되 기간과 대상은 분명해야 합니다. 4조 2천억 원의 예비비도, 걷지 않은 세금도 결국 누군가 갚아야 할 돈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무조건 더 달라고 하는 대신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라고 요구할 때, 안전망은 오래 버팁니다. 그 절제야말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우리의 가장 실질적인 유산일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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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8] 잠이 오지 않아 켠 화면이, 다시 잠을 밀어냅니다
영국 300여 가구 한 달 실험이 시니어의 밤에 남긴 물음밤 열한 시가 지났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손이 저절로 머리맡의 휴대전화로 갑니다. 짧은 영상 하나만 보고 자려던 생각이었는데 다음 영상이 저절로 시작되고, 손가락은 화면을 계속 밀어 올립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한 시가 가깝습니다. 많은 시니어 독자께서 겪어보셨을 밤의 풍경일 것입니다.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수면 구조의 변화, 만성질환과 복용 중인 약, 줄어든 낮 활동량 등 원인은 여러 갈래입니다. 국내 진료 통계를 인용한 보도들은 수면장애로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최근 수년 사이 연간 70만 명 안팎까지 늘었고 그 가운데 60대 이상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전해 왔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집계 기준과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어 인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원인을 헤아릴 때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 쥐고 있는 화면입니다.영국 300여 가구, 한 달의 기록영국 정부가 현지 시각 7월 14일 공개한 연구 결과가 이 대목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영국 전역 3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한 달간 진행된 조사였습니다. 13세부터 17세까지의 청소년에게 세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가 적용되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앱 하나당 하루 15분으로 사용 시간을 묶는 방식,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접속을 차단하는 야간 통금, 앱을 아예 삭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무 제한을 두지 않은 비교 집단도 함께 관찰되었습니다.결과는 이러했습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앞당겨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푹 쉬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학교에서 집중이 잘되고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는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부모들은 저녁 시간이 조용해졌고 각자 화면만 들여다보는 대신 가족끼리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답했습니다.가장 강한 방식이 가장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주목할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앱을 통째로 지운 집단에서 친구를 직접 만나는 시간과 가족과 보내는 저녁 시간이 가장 크게 늘었고 집중력 개선도 두드러졌습니다. 그러나 수면 개선이 가장 꾸준히 보고된 쪽은 야간 통금이었고, 연구가 끝난 뒤에도 자발적으로 계속하겠다고 답한 가정이 가장 많았던 방식 역시 야간 통금이었습니다. 일부 부모는 밤 9시 차단이 2주 만에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다만 신중히 읽어야 합니다. 영국 정부는 이 연구가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서에 스스로 밝혔습니다. 표본이 비교적 작고 참여자의 자기 보고에 기댄 질적 조사이므로 결정적 근거가 아니라 탐색적 자료로 읽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규칙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은 사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 쓰지 않던 예전 휴대전화로 갈아타는 우회가 가장 흔했습니다. 바스 스파 대학교(Bath Spa University)의 피트 에첼스(Pete Etchells) 교수 역시 이번 결과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칼럼이 영국의 실험을 근거로 무엇도 단정하지 않는 이유입니다.자동 재생과 무한 스크롤은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그럼에도 이번 발표에서 반드시 가져와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16세와 17세 이용자를 위해 사업자에게 꺼두라고 요구한 두 가지 기능입니다. 자동 재생(auto-play)과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입니다.한 편만 보려고 켰는데 다음 영상이 저절로 이어지는 구조, 아래로 내려도 바닥이 나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두 기능은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화면 앞에 오래 머물게 하려고 설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계는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열여섯 살의 손가락과 예순여섯 살의 손가락을 구분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잠이 오지 않아 켠 화면이 다시 잠을 밀어내는 일이 벌어집니다. 잠이 오지 않던 것이 원인이었는데 어느 틈에 화면이 원인의 자리에 들어서 있습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냉정하게 확인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정부의 규제는 청소년만 보호합니다. 성인에게는 아무도 자동 재생을 꺼주지 않습니다. 시니어 세대의 밤을 대신 지켜줄 규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꺼야 합니다.디톡스는 끊는 일이 아니라 시간대를 정하는 일입니다그래서 디톡스를 권합니다. 다만 무언가를 끊고 없애는 결단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 실험이 알려준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장 엄격한 방식이 아니라 가장 지키기 쉬운 방식이 살아남았습니다.첫째, 오늘 저녁 설정 화면을 한 번 열어 자동 재생 기능을 꺼두시기 바랍니다. 이 한 번의 조작만으로 화면 앞에 머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둘째,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화면을 내려놓는 규칙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충전기를 침실이 아니라 거실에 두는 방법이 의외로 효과가 큽니다. 완전히 끊겠다는 결심보다 시간대를 정하는 작은 규칙이 오래갑니다.셋째, 규칙의 대상을 손주로만 삼지 마십시오. 영국 부모들이 보고한 가장 큰 변화는 아이의 수면이 아니라 저녁 시간의 분위기였습니다. 조부모가 먼저 화면을 내려놓는 저녁 한 시간은 어떤 잔소리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밤은 잠의 시간이라는 오래된 질서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오래 지켜온 생활의 질서였습니다. 이 질서를 흔든 것은 우리의 게으름이 아니라 밤을 낮처럼 밝히는 화면이었습니다. 기술을 배척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니어 세대가 스마트폰을 익히고 활용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다만 도구에는 쓰는 시간과 쓰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경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절제이며, 절제는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이미 알고 있던 오래된 지혜입니다.국가가 청소년의 밤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은 안전의 문제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근거가 탐색적이라면 그 한계도 함께 말해야 한다는 것 역시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규제가 미치지 않는 성인의 밤은 결국 각자의 절제로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녁, 자동 재생부터 꺼보시기 바랍니다.끝으로 당부드립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화면 탓으로만 돌리지는 마십시오. 화면 사용 시간과 마음 건강의 관계는 학계에서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영역입니다. 잠이 오래 오지 않거나, 우울감이 이어지거나, 스스로 조절이 어렵다고 느껴지신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가까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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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7] 후생가외(後生可畏), 존경은 나이를 따라 흐르지 않습니다
오늘 새벽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4강전에서 잉글랜드가 아르헨티나에 1대 2로 졌습니다. 앤서니 고든의 선제골로 앞서 갔으나, 85분 엔소 페르난데스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후반 추가시간에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헤딩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두 골 모두 리오넬 메시의 크로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과 결승에서 만나고, 잉글랜드는 1966년 이후 60년째 이어진 결승 진출의 갈증을 다시 4년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경기가 끝난 뒤 주장 해리 케인이 남긴 말이 저를 오래 붙들었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도 좋은 경기가 많았고 또 한 번 4강에 올랐으며 문턱 앞까지 왔지만 마지막 한 조각이 아직 없다는 취지로 담담히 말했습니다. 심판을 탓하지 않았고, 동료를 지목하지 않았으며, 운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토마스 투헬 감독 역시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저는 그 장면에서, 제가 오래 지녀 온 습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존경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나이가 곧 서열이고, 경험의 두께가 곧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청년을 볼 때 우리는 대체로 세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합니다. 걱정하거나, 훈계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물러서거나. 본받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네 번째 시선은 좀처럼 목록에 오르지 않습니다.두 청년이 보여준 것지난 7월 11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8강전은 잉글랜드의 연장 2대 1 승리로 끝났습니다. 두 골 모두 주드 벨링엄이 넣었고, 노르웨이는 28년 만에 밟은 무대에서 1938년과 1998년에 이은 8강으로 팀 역사상 최고 성적에 나란히 섰습니다. 엘링 홀란의 14경기 연속 득점 행진은 그가 태어난 나라 앞에서 멈췄습니다.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케이티 로세인스키는 이 경기에서 승패가 아니라 두 사람의 태도에 주목했습니다. 경기 직전 대기 통로에서 벨링엄이 홀란에게 장난스럽게 발을 내민 것은 기 싸움이 아니라 오랜 친구의 농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벨링엄은 2020년 7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초기 확정액 기준 2,500만 파운드(약 507억원)에 이적했고, 영어가 능통했던 홀란이 낯선 땅에 온 소년의 곁을 지켰습니다.주목할 점은 이들이 부와 명성을 가졌으면서도 남성 중심 온라인 생태계를 뜻하는 매노스피어(manosphere)의 문법과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홀란은 탈락 뒤 심경을 묻는 질문에 남 탓 대신 자기 삶에 만족하며 좋은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노르웨이 대표팀 유니폼 등판에 어머니 그리 마리타 브라우트의 성을 새기고 뜁니다. 1990년대 노르웨이 7종경기 전국 챔피언이었던 어머니에게서 규율과 몸 관리를 배웠다고 그는 말해 왔습니다. 벨링엄은 어머니 데니스를 여왕이라 부르며, 어떤 감독보다 어머니가 중요했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왜 우리는 청년에게 배우지 못했는가이 습관에는 구조적인 내력이 있습니다. 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오래 산 사람이 더 많이 아는 것이 대체로 참이었습니다. 변화가 느린 사회에서 경험은 좀처럼 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 경험의 반감기도 짧아집니다. 특히 감정을 다루는 법, 도움을 청하는 법, 타인의 성공을 축하하는 법에서 우리 세대의 교본은 상당 부분 낡았습니다.여기에 착시가 겹칩니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청년은 대개 문제군으로 호명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2025년 발표한 조사에서 젊은 남성의 71퍼센트는 매노스피어의 상징적 인물에게 부정적 견해를 보였고, 그중 59퍼센트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 입소스(Ipsos)가 2025년 5월 영국 성인 2,475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16세부터 24세까지 남성의 76퍼센트가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이 최소 한 명은 있다고 답해, 전체 남성 평균 54퍼센트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다만 해당 연령대 응답자가 221명이었다는 점은 감안해서 읽어야 합니다.소수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다수의 조용한 성숙을 놓칩니다.후생가외의 참뜻공자는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 뒤에 오는 사람이 두려워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뒷사람이 지금의 우리만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는 물음이 뒤따릅니다. 공야장(公冶長)편에는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청년에게 배우는 일은 전통의 파괴가 아니라 전통의 복원입니다. 우리가 지켜 온 질서의 원형이 본래 그러했습니다.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졌을 때 말하는 법입니다. 케인은 남을 탓하는 대신 아직 한 조각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또래가 모인 자리에서 세상 탓과 남 탓으로 저녁이 채워지지 않았는지, 저부터 돌아봅니다. 둘째, 취약함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게러스 사우스게이트는 2025년 3월 영국 BBC 강연에서 고립된 젊은 남성들이 교사나 코치가 아니라 무정한 인플루언서에게 이끌린다고 경고하며, 지위보다 인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고마움을 말하는 법입니다. 벨링엄은 마이크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거르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균형을 위하여다만 무비판적인 청년 예찬은 경계합니다. 인용한 조사는 모두 영국과 미국의 것이며, 한국 청년의 사정이 그대로 같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닙니다. 미국 연구기관 에퀴문도(Equimundo)가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남성의 86퍼센트, 여성의 77퍼센트는 여전히 남자다움을 부양자라는 말로 규정했습니다. 새 흐름이 옛 흐름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두 흐름이 겹쳐 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공자의 문장에도 뒷말이 있습니다. 나이 사십, 오십이 되도록 이름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는 단서입니다. 후생가외는 젊음 자체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젊음이 쌓아 가는 것에 대한 조건부 기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합리적 기준입니다. 나이를 이유로 존경을 강요하지도, 나이를 이유로 존경을 거두지도 않는 것입니다.배울 것은 배우고, 가르칠 것은 가르칩니다. 다만 순서가 하나 있습니다. 먼저 배우는 쪽이 먼저 어른입니다. 존경은 나이를 따라 흐르지 않고 인격을 따라 흐른다는 사실을, 우리 세대가 먼저 인정할 때 비로소 다음 세대도 우리를 바라볼 것입니다.출처: 4강전 경기 기록은 2026년 7월 15일 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FIFA 월드컵 준결승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경기의 보도 자료를 참조했습니다. 8강전 기록은 2026년 7월 11일 마이애미 하드록스타디움 경기 자료를, 인물과 배경은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2026년 7월 14일 자 케이티 로세인스키(Katie Rosseinsky)의 기사를 참조해 재구성했습니다. 통계는 입소스 및 조이 미디어 모던 매스큘리니티 조사(2025년 5월), 유고브 젊은 남성과 남성성 조사(2025년), 에퀴문도 스테이트 오브 아메리칸 멘 2025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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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6] 혼자 빨리 가는 삶에서, 함께 잘 가는 삶으로
― 100세 시대, 성공의 무대 뒤에 선 '호송대'우리 사회는 성취의 결과를 기리는 데에는 매우 능숙합니다. 졸업과 승진, 각종 수상과 성공한 창업가를 축하하는 의식이 있고, 성과를 재는 지표도 촘촘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취를 가능하게 만든 관계를 알아보는 일에는 유독 서툽니다. 무대 위 조명은 한 사람만을 비추지만, 그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쌓인 도움과 헌신은 대개 보이지 않는 곳에 남습니다. 성공을 오롯이 한 개인의 소유로 여기는 생각이야말로, 어쩌면 현대인이 가장 자주 빠지는 착각일지도 모릅니다.『100세 인생(The 100-Year Life)』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린다 그라튼(Lynda Gratton)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최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에 기고한 글에서 바로 이 문제를 차분하게 짚었습니다. 그는 졸업식장에서 정작 시선이 머문 곳은 학위를 받는 졸업생이 아니라, 객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부모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부모들이 떠올린 것은 자녀의 등하굣길과 시험 성적, 힘겨웠던 대화와 크고 작은 희생, 그리고 늦은 밤의 전화였습니다. 무대를 건너는 것은 한 사람이지만, 그를 그곳에 이르게 한 것은 오랜 세월 곁을 지켜 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그라튼 교수는 심리학자 토니 안토누치(Toni Antonucci)가 제시한 '사회적 호송대(social convoy)'라는 개념을 빌려 이를 풀어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인생을 홀로 여행하지 않으며, 격려하는 부모와 과제를 던지는 스승, 안정감을 주는 벗과 믿어 주는 동반자, 새 길을 열어 주는 동료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함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수십 년을 함께하고 어떤 이는 잠시 머물다 떠나지만,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이 관계의 울타리가 사람에게 회복의 힘을 주고 성장을 돕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지난해 펩시코 전 최고경영자 인드라 누이(Indra Nooyi)를 기릴 때 객석의 어머니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청했던 것도 같은 뜻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녀의 성공을 묵묵히 지켜본 이들이 있었음을 함께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이 통찰이 100세 시대에 유독 무겁게 다가오는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일하는 기간 또한 길게는 60년에 이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평생 하나의 직장, 하나의 직업, 하나의 이름표만으로 삶을 마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들은 새로 배우고 자리를 옮기며, 좌절에서 일어서고 다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국면이 바뀔 때마다 곁에 필요한 사람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문은 부모가 열어 주고, 한창 일할 나이에는 스승과 동료가, 뜻하지 않은 실직의 시기에는 오랜 벗이, 병을 앓을 때에는 반려자가 버팀목이 됩니다. 길어진 삶에서 이 호송대는 한 사람이 지닌 가장 값진 자산의 하나가 되는 셈입니다.이러한 호송대는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정과 배려, 가르침을 주고받는 마음이 오랜 세월 차곡차곡 이어지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곁을 오래 지켜 준 이들은, 대개 우리가 그 도움을 정작 필요로 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온 사람들입니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고령화를 겪어 왔습니다. 그만큼 시니어 세대가 걸어온 길은 길고, 그 곁을 지켜 온 호송대의 역사도 깊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는 품앗이와 이웃 간의 정, 대소사를 함께 치르던 공동체의 오랜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라튼 교수가 학문의 언어로 정리한 사회적 호송대는, 우리 시니어 세대가 삶으로 몸소 실천해 온 지혜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다만 오늘의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빠르게 늘고,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고 지내는 일이 예사가 되었으며, 홀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소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관계의 울타리가 얇아진 자리에는 편리한 기술이 들어섰지만, 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아야 합니다. 오랜 세월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온 경험을 지닌 세대야말로, 얇아진 공동체의 그물을 다시 촘촘히 엮어 낼 지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길어진 삶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공이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가느냐에, 그리고 우리 곁을 함께 걸어 준 이들을 얼마나 잘 알아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화려한 무대에 당당히 서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객석에 앉아 다른 이의 걸음을 지켜보는 일이 훨씬 더 값진 순간도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살아온 길이 바로 그 균형을 증언합니다.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호송대는 누구였는지,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누구의 여정을 곁에서 밀어 주고 있는지 말입니다. 앞선 세대가 뒷세대의 손을 잡아 주고, 뒷세대가 다시 그 손의 온기를 기억하는 것, 그 오래된 질서를 지켜 내는 일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가장 확실한 길일 것입니다. 빠름을 재촉하는 시대일수록, 함께 걷는 걸음의 가치를 다시 새기는 냉철한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출처 및 참고 이 칼럼은 린다 그라튼(Lynda Gratton)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가 2026년 7월 13일자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 비즈니스면 '코멘트' 지면에 기고한 글의 논지를 바탕으로, 저작권 보호를 위해 원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그 핵심 개념과 사실관계를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사회적 호송대(social convoy)' 개념은 심리학자 토니 안토누치(Toni Antonucci)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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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5] 맑은 정신일 때 내리는 결정 은퇴 앞에 선 독일 희극 거장이 남긴 용기의 교훈
무대를 내려놓아야 할 때누구에게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문제는 그 순간을 남이 정하게 두느냐, 아니면 스스로 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최근 반세기 넘게 독일 연예계를 대표해 온 원로 배우 겸 코미디언 요헨 부세(Jochen Busse, 85세)가 건강 문제로 사실상 현역에서 물러나며, 시니어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사례를 남겼습니다. 그의 결정이 특별한 이유는 병으로 쓰러진 뒤가 아니라, 정신이 아직 맑을 때 스스로 판단해 움직였다는 데 있습니다.아프기 전에 마음을 정하다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Sonntagszeitung, F.A.S.)과의 인터뷰에서 부세는, 최근 탈장 치료 과정 중 고관절 부위에서 동맥류가 발견되어 큰 수술을 앞두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수술과 재활을 위해 정든 뮌헨을 떠나 쾰른의 한 실버타운으로 거처를 옮기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금, 살 곳과 생활 방식을 직접 선택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그는 자신의 연령대에서는 인지 기능 저하를 겪는 비율이 상당하다고 언급하며 결정을 더 늦출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본인의 발언에 근거한 것으로 정확한 통계는 별도 확인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실제로 그는 2년 전 무대에서 대사를 잊는 경험을 하고도 통증을 참아가며 공연을 이어가다, 결국 독감과 낙상, 뇌졸중 전조 증상까지 겪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일정을 내려놓았습니다.그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자산관리사의 조언에 따라 수입을 생활비·세금·노후자금으로 정확히 3등분해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홀로 지내는 시간도 그에게는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랜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평생 존경했던 스승이자 카바레 거장 디터 힐데브란트(Dieter Hildebrandt)는 여든 살에 스스로 술을 완전히 끊어낸 인물로, 부세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했습니다.뮌헨의 한 공연장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뒤 삶의 의욕을 잃었던 한 관객이 그의 무대를 보고 눈물 속에서도 웃음을 되찾은 일도 있었다고 회고했는데, 그는 이 기억을 배우로서 더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평소 좋아하던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어도 충만한 노년을 그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준비된 노년이 만드는 품위이 사례가 보여주는 구조적 지점은 분명합니다. 첫째, 그가 이주한 실버타운은 단순한 요양시설이 아니라 돌봄과 재활, 문화 프로그램이 한 지붕 아래 통합된 공간으로, 시니어의 자립성과 존엄을 동시에 지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둘째, 수십 년에 걸친 체계적인 자산관리 습관은 갑작스러운 건강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셋째, 판단력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결정하는 태도는 훗날 타인이 대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는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한국 사회가 새겨야 할 대목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요양시설 입주를 '떠밀려 가는 곳'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러나 부세의 사례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미리 준비하는 태도는 오히려 자녀 세대의 부담을 덜고 본인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젊어서부터 수입을 체계적으로 배분하는 습관, 그리고 혼자 지내는 시간을 고립이 아닌 자립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도 함께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전통의 책임감과 합리적인 용기부세는 병중에도 무대를 지키려 했던 이유를 공연이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몸이 더는 버틸 수 없을 때는 미련 없이 내려놓는 것이 옳다는 사실도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는 전통적 가치와, 한계를 인정하는 합리적 태도가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시니어 세대의 용기란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결단에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맑은 정신으로 내리는 결정 하나가 내일의 존엄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부세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출처 및 편집 노트] 이 칼럼은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F.A.S.)에 실린 요헨 부세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인지 기능 저하 관련 통계는 인터뷰이 본인의 발언에 근거한 것으로 공식 통계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게재 전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유로화 환산 금액은 2026년 7월 중순 기준 약 1유로=1,710원 환율을 적용한 것으로, 실제 게재 시점의 환율로 재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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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4] 금지할수록 뜨거워지는 전통, 스페인 투우와 청년 세대의 역설
한 사회가 특정 문화를 낡고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하고 법과 예산의 힘으로 지우려 할 때, 그 시도는 과연 뜻대로 이루어질까요. 최근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투우(鬪牛) 논쟁은 이 오래된 물음에 흥미로운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동물 학대라는 비판 속에 사양길로 접어드는 듯했던 투우가, 정작 그것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젊은 세대의 열광 속에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숫자가 보여주는 반전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 지난 7월 9일 마드리드발로 전한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투우는 통계적으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스페인 투우 주최자 연합(ANOET)의 집계로 지난 시즌 전국의 투우 행사는 2만 1,569건에 이르러 전년보다 619건이 늘었고, 2024년 유료 관객은 620만 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관객 구성입니다. 전체 관객 네 명 가운데 한 명꼴인 25%가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층이었습니다. 수도 마드리드의 라스 벤타스 경기장은 한 축제 기간에만 열아홉 차례나 매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이 흐름을 가장 곤혹스럽게 지켜본 쪽은 진보 성향 언론과 정치권이었습니다. 그동안 투우의 잔혹성을 비판하며 관련 소식을 지면에서 사실상 배제해 온 유력 좌파 성향 일간지조차, 젊은 세대가 투우를 되살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물음을 던졌다고 전해집니다. 금지와 규제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통제받기를 거부하는 청년들이 오히려 투우장으로 몰려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셈입니다.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원인은 크게 세 갈래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강요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무엇이 옳은 가치인지 위에서 일일이 훈계하고 지시하는 방식에 청년들이 피로감을 느꼈고, 그 반발이 전통을 지키자는 문화적 반란의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분석입니다. 둘째는 제도의 역설입니다. 과거 보수 정부가 투우를 국가 무형 문화유산으로 법제화해 둔 까닭에, 정부가 만 18세 청년에게 지급하는 400유로(유로당 약 1,500원 기준, 약 60만 원) 상당의 문화 바우처(문화비 지원권)를 투우 관람에는 쓸 수 없게 한 조치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고, 결국 국가 예산이 청년들의 투우장 입장을 돕는 통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셋째는 마케팅의 진화입니다. 투우 기획사들은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경기가 끝난 뒤 공연과 음악을 결합한 축제형 무대로 젊은 감각에 맞추어 판을 새로 짰습니다. 세비야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300유로(약 45만 원)짜리 청년 한정 시즌권을 선물하려 밤샘 줄서기에 나섰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집니다.다만 이 열기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그늘도 분명합니다. 일부 지방정부가 열네 살 청소년에게 실전 투우 훈련의 길을 열어 주고 어린이에게 무료 관람석을 제공하는 정책을 두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근거로 미성년자를 폭력적 전통 행사에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문제와 아동 보호라는 가치는 전통이라는 이름만으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이 논쟁이 좌우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려 격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냉정히 짚어 둘 대목입니다.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스페인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투우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핵심은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가치를 전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어떤 관습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그것을 설득이 아니라 금지와 낙인으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반발과 결집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통과 변화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 대목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이 새삼 무겁게 다가옵니다. 오랜 세월 공동체의 관습과 그 변화를 함께 겪어 온 시니어야말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 가늠하는 데 필요한 균형 감각을 지닌 세대입니다. 전통을 무조건 붙드는 것도, 낡았다며 통째로 내치는 것도 답이 아님을 삶으로 아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결국 중요한 것은 전통이든 개혁이든 그것을 이루어 가는 방법의 성숙함입니다.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공감을 얻는 변화, 낡은 것을 무작정 버리기보다 지킬 가치와 고칠 부분을 함께 저울질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저울의 눈금을 가장 정확히 읽어 낼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우리 시니어 세대일 것입니다.출처: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2026년 7월 9일 자 7면 보도(마드리드발), 스페인 투우 주최자 연합(ANOET) 집계 인용. 본문의 통계 수치와 유로 환산액(유로당 약 1,500원 적용)은 원 보도에 근거한 것으로, 게재 전 편집부의 환율 및 사실관계 재확인이 필요합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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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3] 조용해진 새벽, 그 빈자리를 채울 사람들
반세기 동안 사라진 영국의 새 7,300만 마리, 그리고 자연에 다시 귀 기울이는 시니어의 몫사라진 아침의 소란이른 아침 창을 열면 참새가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처마 밑 제비가 지저귀던 풍경을 기억하시는지요. 그 소란스럽던 아침은 도시에 사는 많은 이들에게 이미 아득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 온 동네를 뒤덮던 새벽 합창(dawn chorus)이 눈에 띄게 잦아들고 있습니다.영국조류학신탁(British Trust for Ornithology)의 집계를 보면, 영국은 지난 50년 사이 7,300만 마리에 이르는 야생 새를 잃었습니다. 집참새의 재잘거림도, 찌르레기의 수다스러운 지저귐도, 정원을 채우던 검은지빠귀의 청아한 소리도 이제는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의 집참새 번식 개체수는 1970년대 후반 이후 70퍼센트가량 줄었고, 찌르레기 역시 지난 반세기 동안 2천만 마리가량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우리가 잃은 것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전문가들이 특히 경계하는 것은, 정작 상실의 크기를 우리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개체수를 연구해 온 롭 로빈슨 박사는 이 현상을 기준선 이동(shifting baseline)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자연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지금 눈앞의 새가 원래 그만큼이라고 여기지만, 반세기 전 세대는 훨씬 풍요로운 자연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자연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은 각 세대가 이미 훼손된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 이 착시야말로 조용하지만 치명적이라고 지적합니다.새들이 사라진 데에는 여러 원인이 겹쳐 있습니다. 주택과 상업 건물이 들어서며 깃들 곳이 줄었고, 농업이 대규모로 산업화되면서 단일 작물 재배와 살충제, 오염, 기후 변화가 더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질병까지 가세했습니다. 2020년 런던에서 처음 확인된 모기 매개 우수투 바이러스(Usutu virus)는 그레이터런던 지역 검은지빠귀 개체수를 약 40퍼센트 줄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그 배경에도 기후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다시 귀 기울이기 시작한 사람들그럼에도 현장의 전문가들은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자연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이들은 새소리를 알려 주는 스마트폰 앱 멀린(Merlin)의 인기를 꼽습니다. 미국 코넬 조류학연구소가 개발한 이 무료 앱은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어떤 새가 우는지를 실시간으로 찾아 줍니다. 한국의 새도 인식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동네 공원이나 집 근처 산책길에서 바로 써 보실 수 있습니다.바로 이 지점에서 시니어의 역할이 빛을 발합니다. 반세기 전의 풍요로운 새벽 소리를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가 다름 아닌 지금의 시니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새가 얼마나 많았는지, 예전 우리 동네가 얼마나 생기 넘쳤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 귀한 자산입니다. 여기에 시간의 여유와 꾸준함까지 더해질 때, 시니어는 자연을 지켜보는 든든한 눈이 될 수 있습니다.기억하는 사람이 지켜냅니다새소리가 줄었다는 소식을 무겁게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소식은 우리 곁의 자연에 다시 귀를 기울여 볼 좋은 계기입니다. 젊은 세대가 지금의 조용한 아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예전 우리 동네가 얼마나 소란스럽고 생기 넘쳤는지를 자녀와 손주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한 세대가 무심코 흘려보낸 것을 다음 세대가 되찾으려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기억을 간직한 시니어가 자연을 아끼는 마음으로 이 일에 손을 보탤 때, 사라진 새벽의 합창은 다시 돌아올 실마리를 얻습니다. 무엇보다 자연과 다음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 주는 그 일은, 우리 시니어에게 더없이 보람찬 노릇이 될 것입니다.새소리 식별 무료 앱: 멀린(Merlin), 미국 코넬 조류학연구소 제공출처 및 참고: 이 칼럼은 더 가디언(The Guardian)의 2026년 보도와 영국조류학신탁·왕립조류보호협회·코넬 조류학연구소 등의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별도의 사실 확인을 거쳐 새로 정리한 것입니다. 개체수 통계는 영국조류학신탁의 조사 결과를 따랐으며, 일부 수치는 추정치임을 밝혀 둡니다. 인용된 발언은 모두 원문의 취지를 살려 간접 인용으로 옮겼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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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2] 건강을 설교한 축제장, 그곳에 튀김이 넘쳐난 까닭
축제장의 낯선 풍경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한복판, 국립 광장인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서 대형 축제가 열렸습니다.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7월 10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 축제의 월요일은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 이하 MAHA)'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에 온전히 할애되었다고 합니다. 백악관 고문과 임시 의무총감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이 무대에 올라, 미국인이 왜 이토록 병들고 비만해졌는지를 설명하며 올바른 식습관을 역설했습니다.그런데 같은 축제장 바로 옆에는 점보 콘도그와 햄버거, 칠면조 다리, 양동이째 파는 감자튀김을 파는 가판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보도는 건강을 설교하는 강연장보다 기름진 간식을 사려 줄을 선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심지어 이 'MAHA 월요일' 행사 가운데 하나는 다섯 층으로 쌓은 팬케이크를 마구 먹어 치우는 대회였습니다. 건강을 외치는 자리에서 도리어 과식을 부추긴 셈입니다. 이 기묘한 모순이 오늘 저희가 함께 짚어 볼 화두입니다.누구를 탓할 것인가강연에 나선 인사들은 저마다 '적'을 지목했습니다. 어떤 이는 식품 업계 로비스트와 느슨한 정부 규제를, 어떤 이는 아이들을 스마트폰에 붙들어 둔 거대 기술기업을, 또 어떤 이는 의료 제도를 악용해 모두의 비용을 끌어올리는 이들을 겨냥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의 한 선임 고문은 과거 미국의 식생활 지침을 세우는 데 관여한 원로 영양학자를 직접 거론하며, 그 연구가 설탕·담배 업계의 자금을 받았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지목당한 학자는 이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폭로해 온 바로 그 기업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진위를 떠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어떤 운동이든 사람을 결집시키려면 손가락질할 '악당'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의지의 문제인가, 환경의 문제인가이 대목에서 저는 조금 다른 각도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축제장의 진짜 교훈은 '누가 악당인가'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상업의 논리가 만나면 대개 유혹이 이긴다는 냉정한 현실에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강연을 들어도 문을 나서는 순간 기름 냄새가 발길을 붙잡습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이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역시 편의점과 배달 음식, 자극적인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의 유혹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대사증후군과 심혈관 질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건강이란 개인의 결심만으로도, 정부의 규제만으로도 온전히 지켜지지 않습니다.식탁으로 돌아오라는 오래된 지혜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서로 다투던 연사들이 유일하게 한목소리로 동의한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함께 식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팬케이크 대회의 주인공이었던 한 이민자 출신 요리사조차 자신의 음식이 건강식이라 주장하는 대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를 여는 일이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임시 의무총감 역시 끝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는 습관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가족 식사를 되살리자고 호소했습니다.이것이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오랜 세월 몸으로 지켜 온 지혜입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나누던 식탁,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와 눈빛은 어떤 영양제보다 값진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우리 세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수정삭제 주소복사▲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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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1] 전기가 끊긴 자리에 남은 것
월 60달러의 산술쿠바 제2의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에 사는 한 가족의 한 달 수입은 미화 60달러(약 9만 원)에 미치지 못합니다. 가전제품 수리공인 32세 아들, 빵을 떼어다 거리에서 되파는 52세 어머니, 초등학교 교사인 64세 아버지가 버는 돈을 모두 합한 액수입니다. 이 돈으로 부양해야 하는 식구는 며느리와 어린 두 손주, 그리고 73세 시니어 여성인 증조모까지 4세대에 이릅니다. 어머니는 빵 한 개를 7센트(약 105원)에 사서 8센트(약 120원)에 팝니다. 개당 이윤은 15원 남짓입니다.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 에디션이 지난 7월 9일 자 1면과 4면에 걸쳐 보도한 이 가족의 이틀은, 쿠바가 겪고 있는 위기의 축소판입니다. 하루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은 네 시간 안팎입니다. 수리공 아들은 새벽 두 시에 불이 들어오면 일어나 납땜을 시작하고, 두 시간 뒤 다시 암흑이 찾아오면 일손을 놓습니다. 취재진이 머무는 동안 그는 단 한 푼도 벌지 못했습니다.국가가 물러난 자리과거 쿠바인의 식탁을 지탱하던 것은 보데가(bodega)라 불리는 국가 배급 체계였습니다. 지금 이 제도는 사실상 작동을 멈췄습니다. 쌀도 콩도 계란도 배급되지 않는 달이 있고, 사흘에 한 번 주어지는 빵 한 덩이가 전부인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는 식량을 실어 나를 디젤 연료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정부 공식 통계는 올해 식량 가격이 약 20% 올랐다고 밝혔습니다(쿠바 당국 발표치로, 독립적 검증은 어렵습니다).원인은 하나가 아닙니다. 1959년 혁명 이후 정착된 통제 경제의 구조적 비효율이 있고, 수십 년간 이어진 미국의 무역 엠바고가 있으며, 올해 초부터 강화된 사실상의 유류 봉쇄와 추가 제재가 그 위에 겹쳤습니다. 실패한 체제와 외부의 압박이 서로를 증폭시킨 결과, 국가는 자국민을 먹일 능력을 잃었습니다. 지금 쿠바인의 식탁에 오르는 식량 대부분은 플로리다와 스페인에 흩어져 사는 이주민 공동체가 보내오는 송금으로 시장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멕시코 정부는 4세 미만 아동과 65세 이상 시니어를 위해 쌀과 완두콩, 식용유를 배로 실어 보내고 있습니다.이웃이 남긴 것주목할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취재에 등장하는 73세 시니어 여성은 얼마 전 낙상으로 고관절이 부러져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녀를 매일 안아 화장실로 옮기고, 다시 거실로 옮겨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은 아들도 손자도 아닌, 오랜 이웃입니다. 병원 조리사로 일하는 그는 아침마다 이 집 식탁에서 밥을 얻어먹습니다. 돌봄과 끼니가 서로를 갚습니다. 그 이웃에게 농담을 던지며 웃는 시니어 여성의 모습은, 붕괴한 제도 아래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어디에 기대어 서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산티아고의 오리엔테 대학교 법학 교수 발터 문데로 씨는 취재진에게, 가장 적게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크게 나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혁명이 남긴 정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서로 돕는 법을 가르친 유산만은 남아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닭다리 하나, 쌀 한 파운드, 설탕 한 컵을 형편이 더 어려운 집에 건네는 행위가 수없이 곱절로 겹쳐질 때 비로소 사람이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연대는 순수한 이타심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내일은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무언의 신뢰, 즉 호혜의 계약이 그 밑에 깔려 있습니다.우리가 배울 것과 배워서는 안 될 것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습니다. 홀로 사는 시니어 가구는 계속 늘고, 골목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던 관계망은 눈에 띄게 얇아졌습니다. 쿠바의 골목이 우리에게 일러 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안아 올리는 손은 결국 사람의 손이며, 그 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웃과 가족이 서로를 살피는 전통적 질서는 낡은 정서가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판입니다. 이 자산을 지키는 일은 지켜야 할 보수의 몫입니다.시니어 세대는 더 가난했던 시절에 서로를 먹여 살린 경험을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입니다. 그 기억은 향수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을 지키는 실질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전기가 끊긴 방에서 이웃을 안아 올리는 손이 있다면, 그 손이 지치지 않도록 제도를 세우는 일은 우리 몫입니다.출처 및 표기 기준 본 칼럼은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 에디션(The New York Times International Edition) 2026년 7월 9일 자 1면 및 4면에 실린 에드 오거스틴(Ed Augustin) 기자의 쿠바 산티아고데쿠바 현지 보도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요약하고 필자의 해석을 더해 작성했습니다. 원문의 표현은 인용하지 않고 재서술했습니다. 환율은 2026년 7월 8일 서울외환시장 주간 거래 종가(1달러=1,498.5원) 및 7월 9일 오전 고시가(약 1,503원)를 근거로 1달러=약 1,500원을 적용해 환산했으며, 원화 금액은 반올림한 근사치입니다. 쿠바 식량 가격 상승률은 쿠바 정부 공식 발표치로, 독립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수치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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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10] 인공지능이 바꾼 일자리 지형, 청년은 줄고 시니어는 늘었다
- 반도체 호황 뒤편의 세대 격차, 그리고 청년 창업이라는 새로운 활로멀리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뚜렷한 승자처럼 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면서 국내 대표 기업들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500조 원)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삼성전자가 2026년 5월 6일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SK하이닉스가 같은 달 27일 두 번째로 이 문턱을 통과했습니다. 호황의 온기는 임직원에게도 전해져,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5월 성과급 제도 개선안에 합의했고 흑자를 낸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 직원들은 평균 약 5억 6천만 원, 많게는 6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5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인공지능 확산에 대해 우려보다 기대가 앞서는 몇 안 되는 나라로 꼽힌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화려한 성적표에 가려진 두 개의 노동시장그러나 밝은 이야기의 이면에는 훨씬 복잡한 현실이 자리합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오래전부터 깊은 균열을 품어 왔습니다. 대기업과 생산성 높은 일터에서 강력한 고용 안정을 누리는 내부자(insider)와, 중소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불안정한 일자리에 놓인 외부자(outsider) 사이의 간극이 그것입니다.인공지능이 가져다준 혜택은 이 오래된 격차를 좁히기보다 오히려 더 뚜렷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규모 성과급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수많은 협력업체 노동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몫입니다. 이 성과급이 세후 전액 자사주 형태로 지급된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 온기는 내부자의 울타리 안에 더욱 촘촘히 머무는 셈입니다.균열은 세대 사이에서도 선명합니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2025년 10월 내놓은 이슈노트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3년 동안 15세에서 29세 청년층의 일자리는 약 21만 1천 개가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50대 시니어의 일자리는 약 20만 9천 개가 늘었습니다.주목할 대목은 사라진 청년 일자리의 대부분이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약 20만 8천 개가 인공지능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으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시스템 통합·관리 분야에서 11.2퍼센트, 출판 분야에서 20.4퍼센트, 전문 서비스 분야에서 8.5퍼센트, 정보 서비스 분야에서 23.8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반면 보건과 교육, 항공 운송처럼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기보다 보조하는 데 쓰이는 분야에서는 감소 폭이 훨씬 완만했습니다.한국은행 연구진은 이를 연공편향 기술변화(seniority-biased technological chang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정형화된 교과서적 지식에 주로 의존하는 청년 주니어의 업무는 비교적 손쉽게 대체하는 반면, 오랜 경력에서 우러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과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을 갖춘 시니어의 업무는 오히려 보조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분석입니다. 이런 조짐은 영국 등에서도 소프트웨어 개발 직무를 중심으로 나타나지만, 세대 간 골이 한국만큼 깊은 곳은 드뭅니다.왜 고통은 청년에게만 쏠리는가그렇다면 기술 전환의 부담은 어째서 유독 청년에게 집중되는 것일까요.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지연 선임연구위원은 그 배경으로 내부자와 외부자 구조를 지목합니다. 이미 대기업에 자리 잡은 노동자는 강력한 고용 보호를 받기에, 기업은 인공지능에 맞춰 조직을 조정할 때 기존 직원을 내보내는 대신 신규 채용의 문을 좁히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전환의 충격이 노동시장에 새로 들어서려는 청년 세대에게 불균형하게 전가됩니다. 사실 우리 청년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한 2022년 말 이전부터 극심한 취업난을 겪어 왔습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 보고서에서, 일자리 창출의 엔진이던 대기업들이 자본·기술 집약적 구조로 바뀌고 외주화에 기대면서 청년 채용의 통로가 좁아졌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좁은 문을 넘지 못한 청년들은 생산성 낮은 중소기업으로 향하기보다 대기업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취업 준비 기간을 늘렸고, 그사이 중소기업은 인재 부족과 경쟁력 저하의 악순환에 갇혔습니다.반도체가 남긴 재원, 어디에 쓸 것인가다행히 정부 안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면서 재정에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2026년 7월 5일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하는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공식화했습니다. 이 기금은 차세대 반도체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육성 같은 대형 사업과 함께, 20대와 30대 청년의 주거와 창업, 일자리를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기존 대기업에 대한 고용 보조를 넘어, 노동시장의 바깥에 놓인 청년 1인 사업자와 프리랜서, 창업가에게 안정적 기반과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재교육 기회, 그리고 과감한 초기 자본을 함께 지원하자는 것입니다.여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기술 역량을 갖춘 청년들이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대신 인공지능을 도구 삼아 세계 시장을 겨냥한 창업에 나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입니다. 닫힌 성벽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다면 차라리 밖에서 새로운 기술로 승부를 보라는 제언인 셈입니다.청년과 시니어를 위한 조언이 변화는 청년에게 불안한 소식이지만, 뒤집어 보면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 공채라는 단 하나의 사다리에 매달리기보다, 인공지능을 도구 삼아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는 길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쉽게 대신하기 어려운 능력, 곧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 상황을 판단하는 힘을 함께 키워 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시니어 독자에게도 이 소식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의 흐름에서 시니어의 경험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하며, 이는 자녀와 손주 세대가 마주한 벽을 이해하고 함께 넘어서려는 마음과도 이어집니다. 오랜 경험과 여유를 갖춘 시니어라면 청년의 도전에 조언과 응원을 보태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세대가 서로 등을 돌리는 대신 손을 맞잡을 때, 인공지능이 만든 격차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바뀔 수 있습니다.이 기사는 파이낸셜 타임스 미국판 2026년 7월 7일 자에 실린 고용 담당 칼럼니스트 세라 오코너(Sarah O'Connor)의 오피니언 칼럼을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통계와 사실관계는 한국은행 이슈노트 제2025-30호(한진수, 오삼일), 퓨리서치센터 조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와 국내 언론 보도를 함께 확인해 반영했습니다. 본문의 환율은 2026년 7월 8일 기준 미국 달러당 약 1,513원(인베스팅닷컴 종가 기준)을 적용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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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9] 하루 몇 분의 예술, 잘 먹고 잘 걷는 것만큼 소중합니다
건강을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대개 비슷한 답을 떠올립니다. 골고루 잘 먹고, 부지런히 걸으며, 잠을 충분히 자라는 것입니다. 모두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한다는 견해가 최근 영국 학계에서 나왔습니다. 하루 단 몇 분이라도 노래를 부르고 글을 읽으며 그림 한 점을 들여다보는 예술 활동이, 과일과 채소를 챙겨 먹거나 1만 보를 걷는 일에 못지않게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입니다.예술을 처방하는 시대이 주장을 내놓은 이는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로 꼽히는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의 데이지 팬코트(Daisy Fancourt) 교수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예술·건강 협력센터를 이끌고 유네스코의 관련 분야 석좌를 맡아 온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입니다. 팬코트 교수는 얼마 전 영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의 사상 첫 협력 과학자(Associate Scientist)로 임명되어, 예술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을 데이터로 증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공연장이 그와 손을 잡은 데에는 예술과 과학을 함께 장려한다는 155년 전 설립 취지로 돌아가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도파민은 늘리고 코르티솔은 낮추고그가 말하는 근거는 막연한 감상이 아닙니다. 규칙적으로 예술을 접하는 일은 일종의 낮은 강도의 심리 치료처럼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기분을 밝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의 분비를 늘리는 한편, 몸이 긴장할 때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cortisol)은 낮춘다는 설명입니다. 독서와 음악 감상, 미술관 관람 같은 활동이 몸의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함께 제시되었습니다. 정신 건강을 북돋우는 데서 혈압을 낮추는 데까지 그 효과가 폭넓게 나타난다고 합니다.주목할 대목은 팬코트 교수 스스로 지적한 우리 사회의 오랜 편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술을 형편이 넉넉할 때나 누리는 사치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하루 다섯 번 과일과 채소 먹기, 30분 운동, 1만 보 걷기 같은 습관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널리 퍼졌지만, 매일 15분에서 20분가량 예술을 즐기는 일이 그에 버금가는 이로움을 준다는 사실은 그만큼 조명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입니다.우리 시니어에게 주는 뜻이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시니어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거창한 준비나 큰 비용이 없어도,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짧은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그림 한 점을 오래 바라보는 작은 실천만으로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도 좋습니다. 색칠하기나 종이접기처럼 완성된 결과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에 몰두하는 취미는, 마음을 한곳에 모으면서도 긴장을 풀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가까운 공공도서관이나 주민센터의 문화 강좌를 활용하시면 부담 없이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반가움 속에 지켜야 할 균형다만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예술 활동이 아무리 이롭다 한들 그것이 질병의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건강에 특별한 우려가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의 상담을 함께 챙기셔야 합니다. 새로운 연구가 반갑다고 하여 검증된 치료를 소홀히 하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닙니다. 예술은 건강을 지키는 든든한 보탬이되, 어디까지나 정도(正道)를 걷는 관리의 한 축으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그럼에도 이 오래된 지혜가 값진 까닭은 분명합니다. 좋은 습관이란 본래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몸에 익히는 작은 정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문을 여는 첫걸음은 결국 스스로 내딛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라면 즐거움은 곱절이 됩니다. 합창단과 그림 모임, 독서 동아리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예술 활동은 창의적 자극과 사회적 연결을 동시에 선물합니다. 세대를 넘어 손주와 함께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시니어가 지닌 경험과 정서를 다음 세대에 잇는 값진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오늘 저녁,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나직이 불러 보시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작은 정성이 건강을 향한 반가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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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8] 국경을 넘어온 법, 표현의 자유를 시험하다
— 중국 민족단결진보법 7월 1일 시행, 두려움보다 무서운 것은 스스로 입을 닫는 일입니다우리는 오랜 세월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광장에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찻집에서 이웃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요즘은 손안의 작은 화면으로 생각을 세상에 띄웁니다. 표현의 자유는 우리에게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일, 국경 너머에서 시행에 들어간 법률 하나가 그 당연함에 조용히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겉은 '단결', 그 손길은 국경 밖까지문제의 법은 민족단결진보법(民族團結進步促進法)입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가 지난 3월 12일 통과시키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같은 날 서명한 뒤, 7월 1일부터 효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두 예순다섯 개 조문으로 이뤄진 이 법은, 여러 소수민족을 하나의 국가 공동체로 묶으려는 이른바 중국화 정책을 법으로 못 박은 것으로 평가됩니다.가장 큰 논란은 제63조입니다. 이 조항은 중국 밖에 있는 단체나 개인이라도 민족 단결을 해치거나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를 하면 법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서방 언론과 법률가들은 이를 자국 영토 밖의 일까지 처벌하려는 역외적용(域外適用), 곧 롱암 관할권(long-arm jurisdiction) 주장이자 초국가적 탄압(transnational repression)이라고 지적합니다. 법은 또 교육과 행정에서 표준 중국어인 보통화(普通話)의 지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종교 활동이 민족 단결에 어긋나지 않도록 요구하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국제 사회의 잇단 경고시행을 앞두고 국제 사회의 우려가 이어졌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 법이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고, 전직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 여덟 명은 지난 4월 이 법이 중국이 이미 비준한 열두 건 이상의 국제 인권 규약과 충돌할 수 있다는 서한을 냈습니다. 유럽의회도 같은 달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미국에서는 여야를 아우르는 상원의원들이 6월 법 개정을 촉구했고, 배우이자 티베트 인권운동가인 리처드 기어 씨는 한 유력 일간지 기고에서 이 법을 국경 없는 억압이라 표현하며 티베트에서 다듬어진 통제 방식을 밖으로 넓히려는 시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대만의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은 자국민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히며 중국 여행과 체류 시 신중할 것을 당부했습니다.진짜 무서운 것은 스스로 입을 닫는 일이 법이 던지는 근본 문제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단결을 해치는 행위인지 법은 또렷이 정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중국 법에서 분리주의(分裂主義)는 무장 독립운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발언과 옹호, 모금, 문화 활동, 상징적 행위까지도 당국이 위협으로 판단하면 그 범주에 들 수 있습니다.대만 둥하이대학(東海大學)의 한 연구자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입국을 거부당할까 두려워 스스로 침묵을 택하는 순간, 베이징은 단 한 명을 기소하지 않고도 법률을 무기로 삼은 이 싸움에서 이미 목적을 이룬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누려 온 사회일수록 경계해야 할 대목이 바로 이 위축 효과(chilling effect)입니다.다만, 중국의 반론도 균형 있게물론 중국의 목소리도 함께 들어야 공정합니다. 후웨이례(胡衛列) 법무부 부부장은 6월 하순 기자회견에서 제63조를 롱암 관할권이라 부르는 서방 언론의 시각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지키고 분열에 맞서는 일은 주권국가의 권리이며 국제법의 기본 원칙에도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법이 통상적인 인적 교류나 학술과 무역 활동을 가로막지 않는 방식으로 집행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법률 전문가들도 이 법만으로 중국이 다른 나라 안에서 사람을 곧바로 붙잡을 수는 없으며, 실제 집행에는 해당 국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일반 여행객을 겨냥해 이 조항이 적극 적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입니다.우리 시니어가 새겨야 할 지혜그렇다면 중국을 오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무엇을 유념해야 할까요. 티베트나 대만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발언, 신장 위구르족 인권을 겨냥한 조직적 활동, 관련 모금이나 상징적 시위는 위험이 분명히 커지는 영역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은 중국 밖에서 쓴 것이라도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그러나 지나친 두려움은 금물입니다. 평범한 관광과 사적인 대화까지 문제 삼는 경우는 드뭅니다. 핵심은, 겁에 질려 침묵하는 것과 분별 있게 처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점입니다. 권위주의의 시대를 지나 표현의 자유를 손에 넣기까지, 우리 시니어 세대는 그 자유의 값이 얼마나 무거운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질서와 안전을 존중하되, 두려움에 떠밀려 소중한 자유의 원칙마저 내어 주지는 않는 것, 무모한 도발도 위축된 침묵도 아닌 그 사이의 균형을 아는 것이야말로 세월이 준 지혜일 것입니다. 그 분별을, 중국으로 유학이나 출장을 떠나는 자녀와 손주에게도 가만히 일러 두시기 바랍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출처 및 참고: 이 칼럼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리처드 기어 씨의 기고문을 실마리로 삼아, 민족단결진보법의 조문과 국제 사회의 반응, 중국 정부의 입장을 알자지라, 타이베이타임스, 비전타임스, 국내 방송 보도,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 인용 보도, 국제티베트캠페인 등 여러 매체와 자료를 통해 교차 확인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한족 인구 비율(약 91퍼센트)과 국제 인권 규약 열두 건 관련 수치는 각 매체와 유엔 특별보고관 서한이 밝힌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법의 실제 적용 범위와 운용 방식은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아,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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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7] 몸과 연애에 갇힌 청년상, 화면 밖 진짜 현실을 묻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극장가의 영화 속에서 청년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요. 최근 스페인에서 발표된 한 조사 결과는, 화면이 빚어낸 청년의 이미지와 그들이 실제로 짊어진 삶의 무게 사이에 적지 않은 간극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는 결코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콘텐츠 산업이 젊은 세대를 다루는 방식은 어느 사회에서나 닮은 습성을 지니고 있어, 자녀와 손주 세대를 헤아리고자 하는 시니어 독자 여러분께도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라 하겠습니다.590명의 청년 캐릭터가 말해 준 것스페인 시청각 매체 다양성 관측소(ODA)가 청소년 연구소(Injuve)와 함께 내놓은 보고서는, 2024년 한 해 동안 방영되거나 상영된 영화 102편과 드라마 시리즈 78편에 등장한 청년 캐릭터 590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조사진이 내린 결론은 명료합니다. 화면 속 청년의 삶은 완벽한 몸매와 스포츠, 연애 관계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채색되는 반면, 정작 이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고용 불안정과 낮은 임금, 주거의 어려움, 정신 건강 같은 무거운 주제는 이야기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는 것입니다.수치는 이 왜곡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스페인 영화와 드라마 속 등장인물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청년으로 그려지지만, 보고서가 인용한 인구 통계에 따르면 실제 청년층은 전체 인구의 6분의 1 남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화면은 청년을 자주 불러내되, 정작 그들의 진짜 고민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셈입니다.왜 이런 화면이 반복되는가이러한 편향의 뿌리는 결국 시장의 논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앞세우는 제작 환경에서는 보기 좋고 자극적인 장면이 손쉬운 선택지가 되기 마련입니다. 반면 취업난이나 마음의 병처럼 다루기 까다롭고 무게가 실린 주제는 흥행의 위험 요소로 여겨져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납니다.보고서는 청소년을 겨냥한 인기 작품일수록 획일화된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배우들만 화면을 채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합니다. 표준적인 체형에서 벗어난 인물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으며, 이러한 반복이 젊은 시청자들에게 비현실적인 외모의 압박을 가중시킨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었습니다. 아울러 보고서는 이주 배경을 지닌 청년이나 성소수자(LGTBIQ+) 캐릭터가 양적으로는 늘었으나, 여전히 정형화된 갈등 구도 안에서만 소비되는 한계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이 대목은 조사를 수행한 기관의 시각이 담긴 분석이라는 점도 함께 헤아릴 필요가 있겠습니다.우리 화면은 다를 것인가이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국내 드라마와 예능 역시 청년층을 다룰 때 연애와 성공담, 화려한 생활상을 앞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 청년들이 매일같이 체감하는 취업의 벽과 주거비 부담, 마음의 고충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여기서 시니어 세대가 유념할 점이 있습니다. 화면이 빚어낸 청년의 이미지에만 기대어 젊은 세대를 판단한다면, 그들의 실제 삶과는 어긋난 오해를 품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세대를 잇는 진정한 소통은 잘 다듬어진 화면 속 장면이 아니라, 마주 앉은 대화와 삶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에서 비로소 이루어집니다.겉모습 너머의 본질을 지키는 일결국 중요한 것은 미디어가 만들어 낸 화려한 표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이면에 놓인 진짜 현실을 함께 헤아리려는 태도입니다. 사람의 값어치는 완벽한 외모가 아니라 성실함과 인격, 그리고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감당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오래된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오히려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그 가르침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집니다.시니어 세대가 살아오며 쌓은 삶의 경험과 균형 잡힌 시각은,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세대를 잇는 건강한 신뢰의 토대를 지켜 나가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화면 밖 현실을 함께 응시하는 지혜,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균형이라 하겠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출처 표기 본 칼럼은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 2026년 6월 30일자 사회·문화면에 보도된 시청각 매체 다양성 관측소(ODA)·청소년 연구소(Injuve) 공동 보고서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문에 인용된 통계 수치는 해당 보고서 및 원 보도에 근거한 것이며, 국내 상황에 관한 분석과 논평은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원문 기사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직접 인용을 피하고 사실관계를 재구성하여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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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6] 그라운드 위의 마흔, 시니어 시대의 증거
2026년 북중미 월드컵 개막과 함께 흥미로운 숫자 하나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번 대회 최고령 출전 선수인 스코틀랜드의 골키퍼 크레이그 고든의 나이는 만 43세 162일이며, 최연소 선수인 멕시코의 질베르토 모라는 만 17세 240일입니다. 두 선수의 나이 차이는 무려 25년에 달합니다. 손주뻘 되는 신인과 동년배 선수가 나란히 세계 최고 무대를 누비는 이 장면은, 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만듭니다.월드컵 본선 출전에는 상한 연령 규정이 없습니다. 20세 이하 선수만 참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이나, 23세 이하 선수 위주로 구성되는 올림픽 축구와 달리, 월드컵 본선에는 나이 제한이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번 대회 48개국 1,248명의 선수 명단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뚜렷합니다. 크레이그 고든에 이어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 등 40세 이상 선수만 일곱 명에 달합니다. 이는 4년 전 카타르 대회 당시 40대 선수가 단 한 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변화입니다.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지 않습니다. 포르투갈 포르탈레그레 공과대학의 루이스 브란키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축구 선수의 신체 능력은 순발력이 만 25.7세, 지구력이 만 24.8세를 전후해 정점을 찍은 뒤 서서히 하락합니다. 브란키뉴 교수는 호날두 역시 순수한 운동 능력의 저하는 피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철저히 다져진 신체 밸런스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의무위원을 지낸 은승표 코리아정형외과 원장 또한, 과거에는 스타 선수들이 무리한 출전과 부상 관리 미흡으로 선수 생명을 단축시켰지만 지금은 신체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맞춤형 관리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대론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입니다. 선수 생명이 늘어난 것은 단지 개인의 의지나 근성 때문이 아니라, 스포츠 과학과 영양학, 회복 프로그램이라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훈련과 영양, 회복 루틴을 철저히 관리하는 체계가 갖추어지면,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황선홍, 홍명보가 30대 중반에 대표팀에서 은퇴했던 것과 지금을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에는 30대 중반이 황혼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손흥민(34)과 김승규(36)가 여전히 대표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이러한 흐름은 한국 사회에도 분명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시니어를 은퇴와 소멸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은 이제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그라운드 위 마흔 살 선수들의 활약은, 나이가 들어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꾸준한 신체 활동을 통해 얼마든지 활력 있는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시니어 세대의 건강 관리와 자기계발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인프라를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걷기, 스트레칭, 근력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는 것이 근감소와 균형 감각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시거나 강도를 높이실 계획이라면 평소 지병이나 관절 상태를 고려해 전문가 상담을 먼저 받으시길 권해 드립니다.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에게는 이번 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자기관리와 스포츠 과학의 발전이 만들어낸 선수 생명 연장의 흐름 자체는,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감상적 구호보다, 철저한 관리와 경험이 만들어내는 실질적 경쟁력이라는 냉정한 기준으로 시니어 세대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이들을 짐이 아닌 자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젊음을 우선시해 온 스포츠계의 질서 안에서도, 합리적인 기준만 갖추어진다면 나이는 더 이상 배제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월드컵이 증명하고 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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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5] 핀란드, 스페인 유아교사 유치 나서... 유럽 보육 인력난의 민낯
지난 6월 말, 스페인 유아교육 현장에서는 낮은 처우에 항의하는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며 한 학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 북유럽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시 당국은 스페인 출신 유아교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가 지난 6월 30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헬싱키 시는 스페인 교사들에게 정규직(무기계약) 신분을 보장하고, 세전 기준 월 3,200유로(현재 환율 기준 약 566만원)의 급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화·스포츠·웰빙 활동을 위한 매월 550유로(약 97만원)의 바우처 보너스와 식비 보조, 그리고 시 소유 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약속까지 더해졌습니다.이러한 파격적인 조건이 등장한 배경에는 구조적인 인력 부족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헬싱키 시 프로그램 대변인 마리우스 나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인구 약 70만 명에 불과한 헬싱키에서만 2030년까지 유아교사 인력이 6,000명가량 모자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인구 560만 명의 핀란드 자국 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요라는 것이 시 당국의 판단입니다. 특히 스페인이 집중 구인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는 실무적입니다. 스페인의 대학 유아교육 과정을 이수한 인력은 프랑스나 독일 출신 교사와 달리 별도의 추가 교직 학점을 이수하지 않고도 곧바로 핀란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실제로 근무 환경의 격차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올해 1월 스페인 빌바오를 떠나 헬싱키의 한 공립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는 26세 교사 미라리 차모로의 학급은 아동 14명에 교사 3명이 배치되어 있으며,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이 포함된 경우에는 특수교사와 사회복지사가 추가로 투입되어 한때 교실에 다섯 명의 교사가 동시에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러한 인력 배치 덕분에 아이 개개인에게 맞춘 돌봄이 가능해지고, 한 교사가 한 아이에게 집중하는 동안에도 다른 동료들이 나머지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살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스페인 교육부가 지난 6월 말 새롭게 도입을 예고한 교사 대 아동 비율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입니다.반면 스페인 국내 유아교육 현장의 처우는 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스페인에서 0~3세를 담당하는 유아교사가 되려면 최소 고등 직업훈련(FP) 학위가 필요하지만, 민간 위탁이나 사립기관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인 월 세전 1,200유로(약 212만원) 안팎을 받는 경우가 많고, 공립 부문 역시 이보다 크게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인력이라 하더라도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되는 대목입니다.물론 핀란드로의 이주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우랄어족에 속하는 핀란드어는 인도유럽어족 언어와 어순·문법 체계가 완전히 달라 습득 난도가 높기로 알려져 있으며, 헬싱키 시는 이를 감안해 출국 전 무료 집중 어학 과정을 통해 최소 B1 수준까지, 현지 근무를 병행하며 B2 수준까지 도달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일조량 변화도 적응의 걸림돌입니다. 톨레도 출신의 25세 교사 알바로 페랄레스는 헬싱키 도착 초기 아침 9시에야 해가 뜨고 오후 3시면 어두워지는 겨울철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핀란드인 특유의 내성적인 문화 역시 스페인 출신 이주 교사들에게는 낯선 경험으로 다가온다고 합니다.이번 사례는 단순한 인력 이동을 넘어 유럽 보육 인프라의 구조적 불균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자랑해 온 핀란드조차 자국 인력만으로는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해외 인력 유치에 나서야 하는 현실은, 저출생과 노동력 부족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가들이 처한 공통의 딜레마를 잘 보여줍니다.우리나라 역시 보육·돌봄 인력의 수급 불균형과 처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처우 개선과 인력 배치 기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좋은 제도는 결국 좋은 인력을 붙잡는 처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이번 핀란드의 사례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참고: 위 원화 환산액은 2026년 7월 초 기준 유로-원 환율 약 1,770원을 적용한 근사치이며, 실제 환율 변동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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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4] 형제 없는 아이들의 시대, 시니어가 채워야 할 빈자리
사회현상 문제 제기세계 각국에서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외동 자녀 가정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 에디션은 2026년 7월 1일자 오피니언면에서 경제학자이자 저술가인 캐서린 루스 파카룩의 칼럼을 통해, 형제자매 없이 성장하는 세대가 급증하는 현실과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인성 교육의 기회를 조명하였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자녀를 한 명만 둔 미국 어머니의 비율은 1976년 11%에서 오늘날 약 20%로 거의 두 배 증가한 반면, 1976년 40%에 달했던 4자녀 이상 대가족 비율은 2014년 14%로 급락하였습니다. 2024년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인구 유지에 필요한 대체출산율 2.1을 크게 밑돌았고, 유럽연합 대부분 국가에서도 외동 가정이 다자녀 가정보다 더 흔해진 상황입니다.전문가 또는 해외 사례 인용파카룩은 저서 『한나의 아이들』을 집필하며 다섯 자녀 이상을 둔 어머니들을 다수 인터뷰한 결과, 종교와 배경이 서로 다른 이들이 한목소리로 동의한 지점이 있었다고 전하였습니다. 바른 품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데 있어서는 한 명을 키우는 것보다 다섯 명을 키우는 편이 오히려 수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방을 함께 쓰며 사소한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손위 형제는 자연스럽게 동생을 돌보는 책임감을 체득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특히 파카룩은 미국 동북부와 서부 해안의 다자녀 가정 사례를 소개하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던 큰아이가 갓 태어난 동생을 돌보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안정을 찾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고 밝혔습니다. 희귀 염색체 이상을 가진 일곱째 아이를 둔 서부 해안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장기간 병원에 머무는 동안 손위 형제자매들이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하고 동생의 재활 치료까지 도맡아 도왔다는 사례도 소개되었습니다.구조적 원인 분석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학적 논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녀 수를 줄이는 대신 한 아이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는 이른바 양보다 질이라는 통념이 오랫동안 정책과 문화 전반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파카룩은 이 계산법이 형제자매 관계가 제공하는 고유한 가치를 간과하였다고 지적합니다. 대가족은 별다른 비용 없이도 자연스럽게 도덕 교육의 장을 형성하지만, 소가족의 부모들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여름 캠프나 각종 방과 후 프로그램을 인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오레스테스 브라운슨의 회고를 인용하며, 형제자매 없이 성장한 이는 또래와의 놀이와 갈등 경험을 박탈당한 채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성인의 태도를 갖추게 되며, 이는 개인의 정서 발달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도덕적 기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하였습니다.한국 사회 적용 시사점이러한 분석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 역시 초저출산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외동 자녀 가정이 대세로 자리 잡았고, 형제자매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던 배려와 책임감의 학습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존재로 시니어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조부모 세대가 손주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나아가 형제자매가 담당하던 돌봄과 인성 교육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 짐으로써 세대 간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니어를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지탱하는 경험 있는 주체로 재조명하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전통적 질서와 안전 가치 수호, 그리고 합리적 기준의 균형가정은 예로부터 인간이 가장 먼저 도덕과 절제를 배우는 공동체였습니다. 형제자매 관계가 줄어드는 시대일수록, 가족 내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관계망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다만 출산과 가족 계획은 어디까지나 개인과 부부의 선택에 속하는 영역인 만큼, 특정한 가족 형태를 강요하기보다는 다자녀 가정이 겪는 현실적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어 지원하는 합리적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가정이 지녀온 도덕 교육의 기능을 되새기되, 오늘날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과 지혜가 이 균형점을 찾는 데 든든한 buttress(버팀목)가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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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3] 새로운 운동법에 현혹되기보다 기본에 집중하라
최근 온라인 공간에는 하루아침에 체형을 바꿔준다는 신비로운 운동법과 보충제 광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짧은 영상 속에서 낯선 기구와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는 인플루언서들의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며, 특히 건강 관리에 관심이 높아진 시니어 세대에게도 이러한 정보는 무분별하게 유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정작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화려함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검증되어 온 기본 원칙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최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영화 글래디에이터 2에서 배우 폴 메스칼의 근육질 체형을 완성시킨 전문 트레이너 팀 블레이클리는 25년 이상의 경력을 통해 얻은 결론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보이는 새롭고 자극적인 운동법보다, 올바른 자세로 무게를 다루고 점진적으로 부하를 늘리며 충분한 단백질과 휴식을 챙기는 기본기가 결과를 좌우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실제로 메스칼은 바쁜 연극 무대 일정 속에서도 주 5회에서 6회, 매회 45분에서 60분 정도의 훈련을 꾸준히 이어가며 3개월 만에 상당한 근육량 증가를 이루어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러한 성과에는 유전적 소인과 전문 인력의 밀착 지원이라는 배우 특유의 조건이 함께 작용했다는 점도 해당 보도는 함께 지적하고 있습니다.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정보 유통 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목을 받기 쉬운 디지털 환경에서는, 꾸준함이라는 본질보다 새로움이라는 표면이 더 쉽게 확산됩니다. 그러나 신체 변화는 생리학적으로 일정한 시간과 반복을 요구하는 과정이며, 이는 단기간의 몰입보다 장기간의 일관성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여러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결국 화려한 트렌드는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되지 못하는 셈입니다.이러한 시사점은 한국 사회의 시니어 건강 문화에도 적지 않은 함의를 던져줍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유튜브와 각종 온라인 채널을 통해 다양한 운동법과 건강 정보가 시니어 세대에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고강도 운동이나 무리한 식이요법을 성급하게 따라가는 것은 오히려 관절과 심혈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 상태에 맞는 꾸준한 근력 운동과 균형 잡힌 영양 섭취, 그리고 충분한 휴식이라는 기본을 지키는 자세입니다. 이는 오랜 사회 경험을 통해 인내와 절제의 가치를 체득한 시니어 세대가 오히려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건강 관리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온 절제와 성실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그러한 전통적 가치가 무조건적인 인내나 맹목적인 노력으로 흐르지 않도록, 자신의 체력과 건강 상태에 대한 합리적인 점검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개인별 신체 조건에 맞는 운동 계획을 세우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균형 잡힌 태도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유행을 좇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걸음이야말로, 오랜 세월 축적된 삶의 지혜를 지닌 시니어 세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건강 관리법일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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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2] 오락가락 보건복지 정책, 정부는 ‘무엇이 먼저인가’부터 답해야 합니다
청년 탈모 급여화 공론화가 토론회 닷새 앞두고 백지화됐습니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의 우선순위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다시 묻습니다정부가 청년층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며 국민 공론화에 나섰다가, 그 첫 관문인 토론회를 개최 닷새 앞두고 거두어들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6월 29일, 7월 4일로 예정됐던 모두의 토론회의 첫 의제였던 탈모 치료제 급여화 토론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충분히 제기된 만큼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토론에 부치기도 전에 정책이 먼저 흔들린 모양새여서, 시작은 요란했고 마무리는 황급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닷새 앞두고 멈춰선 토론회경위를 짚어 보겠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6월 11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올해 하반기 중점 과제의 하나로 탈모 치료 건강보험 확대를 제시했고, 적용 방식과 소요 재정에 대한 실무 검토를 이미 마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순한 구상을 넘어 상당히 진척된 사안이었던 셈입니다. 탈모 급여화는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해 12월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재검토가 지시되며 추진돼 온 정책이기도 합니다. 취업을 앞둔 청년이 탈모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 고민 자체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문제는 절차와 무게중심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에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한정된 보험 재정을 어떤 순서로 써야 하는가라는 근본 물음에 정부가 먼저 분명한 기준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그 기준 없이 발표가 앞서고 반대에 부딪혀 거두는 과정이 가벼워 보이면, 어떤 결론을 내리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의료계와 환자단체가 던진 같은 물음의료계와 환자단체의 반대는 분명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6월 18일 정례브리핑에서 탈모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건강보험은 선심성 복지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필수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과 경영 악화로 제때 진료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선순위 검토와 재정 영향 평가 없이 탈모 급여화를 논의하는 것은 재정 운용의 방향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6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환급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급여화 여부는 의학적 필요성과 임상적 유용성, 비용 대비 효과, 환자의 경제적 부담, 재정 영향, 그리고 아직 충족되지 못한 다른 의료 수요와의 우선순위를 함께 따져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고액 의료비 부담이 큰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이 2021년 84퍼센트에서 2024년 81퍼센트로, 암질환 보장률이 같은 기간 80.2퍼센트에서 75퍼센트로 낮아졌다는 점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앞서 한국중증질환연합회 역시 6월 16일 성명에서,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화는 재정을 이유로 미루면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재정을 먼저 넣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흔들림의 뿌리, 재정과 원칙이 논쟁의 밑바탕에는 건강보험 재정의 구조가 있습니다. 건강보험은 정해진 재원으로 운영되므로, 한쪽 보장을 늘리면 다른 쪽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 약 4천633억 원 흑자에서 올해 약 3천72억 원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며, 2028년에는 적자가 1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옵니다(전망치이며, 동아일보 등 보도에 따른 것입니다). 유전성 탈모, 곧 안드로겐성 탈모(androgenetic alopecia)까지 적용을 넓히면 본인부담률 설정에 따라 연간 최소 1천억 원에서 최대 1천600억 원이 더 들 것으로 추산되는데, 현재 탈모 전문의약품의 연간 진료비가 약 389억 원인 점과 견주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추산치이며, 주간경향 등 보도에 따른 것입니다). 현재 건강보험의 도움을 받는 탈모 환자가 약 25만 명, 일반적 탈모로 고민하는 인구까지 더하면 1천만 명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어, 그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가 곧 재정 부담의 크기를 좌우합니다.결국 흔들림의 뿌리는 분명합니다. 정책의 출발점이 재정 형편과 의학적 우선순위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약속에 가까웠다는 데 있습니다. 인기 있는 공약이 재정의 한계와 현장의 반대에 부딪히자 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원칙이 먼저 서 있었다면, 토론회를 열고 닫는 일이 이토록 급하게 오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우선 순위의 결정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이 사안은 언뜻 20세에서 30대 청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시니어 세대의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정된 재정을 어디에 먼저 쓰느냐는 물음은, 곧 암과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의 보장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느냐는 물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큰 병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보장성의 방향은 시니어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노화로 인한 탈모 역시 지금은 비급여 영역에 있어, 이번 논의의 향방에 따라 향후 부담이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여기서 이른바 지원과 요구(Fördern und Fordern)의 원칙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는 개인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필수 영역을 책임 있게 지원하되, 선택적 영역은 개인이 일정 부분 책임지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지속 가능한 복지의 길입니다. 청년의 유전성 탈모를 돕고자 한다면, 환자단체의 제안처럼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별도의 국고로 추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순리에 맞습니다.무엇이 먼저인가, 정부가 답할 차례입니다복지는 따뜻해야 하지만, 그 따뜻함이 오래가려면 재정의 질서와 명확한 원칙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것은 화려한 발표가 아니라 일관된 판단과 투명한 절차에서 비롯됩니다. 무엇을 먼저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차분히 설득하는 일이야말로 보건복지 당국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책무입니다. 정책을 내놓고 거두기를 되풀이하는 사이 가장 크게 흔들리는 것은, 큰 병 앞에서 국가의 보장에 기대야 하는 시니어와 우리 모두의 안심이기 때문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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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1] 혼자 사는 시니어, 고립인가 선택인가
돌봄의 짐을 내려놓는 시니어 세대, 사회 안전망이 답할 차례입니다혼자 사는 시니어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독일의 최근 통계를 보면 홀로 사는 사람은 인구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이며, 65세 이상에서는 셋 중 한 명 이상이, 85세 이상에서는 절반을 넘는 이들이 1인 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독일 연방통계청, Statistisches Bundesamt 발표 수치). 우리는 흔히 이 숫자를 ‘고독’의 지표로만 읽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된 시니어들이 스스로 독립을 선택하는 흐름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시니어의 증가는 고립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율을 향한 선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측면입니다.평생의 돌봄을 마친 세대가 보내는 신호오스트리아 빈 대학교(Universität Wien)에서 시니어의 친밀한 관계를 연구하는 이리스 바링(Iris Wahring) 박사의 분석은 이 변화의 결을 한층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50대에서 70대에 이른 여성 시니어의 상당수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자녀를 키우고 배우자를 간호하며 연로한 부모를 봉양한, 평생의 돌봄 노동(care work)을 마친 세대입니다. 이들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자유와 독립을 누리는 시기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바링 박사는 적지 않은 시니어 여성이 새로운 인연 앞에서 머뭇거리는 까닭이, 다시 누군가의 간병인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그의 연구진은 시니어가 새 동반자와 한집에서 함께 살 때 삶의 만족도가 뚜렷이 높아지는 반면, 결혼이라는 형식 자체는 만족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미국 50~95세 성인 약 2,840명을 분석한 빈 대학교 연구진의 제시 값). 형식보다 함께함의 실질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변화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첫째는 건강수명의 연장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시니어가 과거보다 길고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꾸릴 신체적·경제적 여력이 커졌습니다. 둘째는 성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다. 그동안 가족 안의 돌봄은 대체로 여성의 몫으로 미뤄져 왔습니다. 평생 그 역할을 감당해 온 세대가 이제 와서 그 굴레를 다시 짊어지기를 주저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자기 결정입니다. 셋째는 가족 구조의 변화입니다. 자녀와 떨어져 사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위급할 때 곁에서 손을 잡아 줄 가족이라는 전통적 안전망이 얇아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사회가 은연중에 기대 온 ‘가족 안의 비공식 돌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풍경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인 가구는 이미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고, 고령화의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듭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기던 전통은 분명한 미덕이었으나, 그 미덕만으로 길어진 노년의 돌봄을 모두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하여 돌봄의 일부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문제는 가족 돌봄이 줄어드는 속도를 공적 돌봄 체계가 충분히 따라잡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여기서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는 개인의 준비입니다. 길어진 노년을 홀로 건강하게 보내려면 건강과 재정에 대한 계획을 일찍부터 세우고, 필요하다면 간병과 재산 처리에 관한 사항을 법적으로 분명히 해 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만 이런 결정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구체적인 계획은 반드시 의료·법률·재무 전문가와 상의해 신중히 정하시기를 권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의 준비입니다. 개인이 아무리 성실히 대비해도, 끝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은 찾아옵니다. 그때 품위를 잃지 않도록 받쳐 주는 공적 돌봄과 사회 안전망이야말로, 독립을 택한 시니어 세대를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입니다.자율은 안전망 위에서 자유가 됩니다시니어가 돌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가꾸려는 흐름은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간 분명한 진전입니다. 그러나 안전망 없는 독립은 자칫 방치로 흐를 수 있습니다. 자율은 그것을 떠받치는 제도가 있을 때 비로소 자유가 됩니다. 가족의 정과 전통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소중히 지키되, 그것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빈자리는 합리적이고 든든한 제도로 채워야 합니다. 스스로 준비하는 시니어, 그리고 그 준비가 닿지 못하는 곳을 받쳐 주는 사회. 이 둘이 손을 맞잡을 때, 길어진 노년은 비로소 두려움이 아닌 또 하나의 떳떳한 삶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이 칼럼은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Sonntagszeitung)에 실린 시니어의 만남과 돌봄에 관한 보도를 토대로, 그 안에 담긴 통계와 연구를 한국 시니어 독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것입니다. 1인 가구 통계는 독일 연방통계청(Statistisches Bundesamt) 발표 자료, 시니어의 관계와 삶의 만족도에 관한 연구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Universität Wien) 연구진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인용한 수치는 각 기관이 제시한 값이며, 한국 관련 제도와 통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근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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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400] 미국 '효도 책임법' 퇴조가 시니어 사회에 던지는 질문
- 효(孝)는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것입니다.법이 정한 효도부모가 가난하면 자녀가 부양해야 한다는 오래된 윤리가, 한때 미국에서는 법률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효도 책임법(filial responsibility laws)입니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부모를 성인이 된 자녀가 재정적으로 책임지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더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때 미국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에 이 법이 존재했습니다. 가족의 도리를 도덕의 영역에 두지 않고 국가가 법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효를 둘러싼 동서양의 거리가 우리가 짐작하는 것만큼 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절반 안팎으로 줄어든 의무그러나 오늘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 법을 유지하고 있는 주는 스물네 곳에 못 미치며, 그나마 실제로 집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한 세대 만에 그 수가 마흔에서 절반 안팎까지 줄어든 셈입니다. 법조문은 남아 있으되 현실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이른바 '잠자는 법'이 된 것입니다. 드물게 법이 적용된 사례는 주로 부모가 머물던 요양시설의 비용을 자녀에게서 회수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효를 법으로 강제하려던 시도가 사실상 빛이 바랜 현장입니다.왜 사라지고 있는가이 변화를 단순히 효의 쇠퇴나 인심의 각박함으로만 읽는 것은 성급합니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자리합니다. 첫째, 산업화와 도시화로 가족이 흩어지면서, 부모와 자녀가 같은 생활권에서 서로를 부양하던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둘째, 자녀의 형편이 부모를 부양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늘면서, 빈곤한 부모를 빈곤한 자녀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셋째, 무엇보다 공공 의료부조와 사회보장 제도가 확충되면서, 가족 대신 사회가 돌봄의 비용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효도 책임법의 퇴조는 곧 가족 부양에서 사회적 부양으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지표인 셈입니다.한국 사회라는 거울이 대목에서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민법 또한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사이에 서로 부양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흐름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폭 완화되었고,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던 시니어를 국가가 직접 보듬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동해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는 사회에서, 부양의 책임을 오롯이 가족에게만 지우는 방식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미국의 잠자는 법은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길의 한 풍경인 것입니다.효와 안전망 사이에서다만 법의 퇴조를 효의 종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강제할 수 없다고 하여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살피는 마음은 법조문이 사라진 뒤에도 가정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토대로 남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한 가정의 어깨만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시대가 되었기에, 사회가 든든한 안전망으로 가족의 곁을 받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의 정성과 사회의 책임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신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시니어의 노후를 떠받치는 두 기둥입니다. 효를 법의 강제에서 풀어 주되 그 빈자리를 각박함이 아니라 더 성숙한 연대로 채우는 것, 미국의 한 낡은 법이 퇴장하며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및 부기: 본 칼럼은 더 뉴욕 타임스 2026년 6월 28일자 '흥미로운 사실들(Facts of Interest)' 지면에 실린 효도 책임법 관련 요약 보도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인용하고 편집장의 견해를 더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시행 주(州)의 수와 집행 실태에 관한 수치는 해당 보도가 제시한 내용이며, 적용 주의 정확한 수는 보도가 밝힌 '24개 미만'에 근거합니다. 한국의 제도 관련 서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책 동향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구체적 적용 기준은 관계 기관의 최신 고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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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9] 인공지능에게 우리가 정말로 바라야 할 일
2천 년 침묵하던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두루마리를 깨운 기술, 그 진짜 쓸모가 일상에 닿지 않는 까닭을 생각합니다요즈음 인공지능(AI)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을 처음 마주하는 자리는 대개 가벼운 놀이의 형태입니다. 내 사진을 유명 만화가의 그림체로 바꾸어 주고, 몇 마디 말로 그럴듯한 그림 한 장을 만들어 냅니다.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수많은 인재와 천문학적인 자본이 쏟아져 들어간 이 기술이 겨우 사진을 만화풍으로 바꾸는 일에 머문다면, 그것은 너무도 아쉬운 투자가 아니겠습니까. 마침 그 물음에 조용히 답을 건네는 사건이 멀리 이탈리아에서 전해졌습니다.지난 6월 25일, 베수비오 화산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도서관에서 놀라운 발표가 있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고대 도시 헤르쿨라네움을 잿더미 아래 묻었을 때, 한 도서관의 두루마리들도 새카맣게 타버린 채 함께 봉인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PHerc 1667’이라 불리는 파피루스는 손으로 펼치는 순간 바스러질 만큼 약했습니다. 실제로 과거 두 차례에 걸쳐 직접 펼쳐 보려던 시도는 두루마리를 부수고 동강내는 상처만 남겼습니다.이번에는 누구도 그것을 펴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영국과 프랑스의 대형 방사광 가속기로 두루마리 속을 고해상도 엑스선으로 입체 촬영한 뒤, 그 영상을 컴퓨터로 한 겹씩 가상으로 펼쳤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파피루스 섬유의 미세한 결 차이를 짚어 어디에 잉크가 묻어 있는지를 가려냈습니다. 그렇게 2천 년 만에 약 스무 단에 이르는 글자가 되살아났고, 학자들은 그것이 윤리와 인간의 행동을 논한 스토아 철학 계열의 오래된 저작임을 확인하였습니다.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만합니다. 인공지능이 혼자 글을 읽어 준 것이 아닙니다. 거의 사라진 잉크의 흔적을 또렷이 드러낸 것은 기계였지만, 그 희미한 글자를 옮겨 적고 뜻을 풀어낸 것은 평생을 파피루스 연구에 바친 학자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탄화된 두루마리를 읽어내기 위해 2023년 시작된 국제 공모전 베수비오 챌린지(Vesuvius Challenge)의 결실입니다. 주최 측은 앞으로 1년 안에 또 다른 두루마리를 통째로 읽어낼 팀에게 100만 달러(약 15억 4천만 원, 환율은 6월 26일 무렵 미화 1달러당 약 1,540원 적용)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풀 수 없던 오랜 수수께끼를 풀어낸다는 이 놀라운 소식이, 어찌하여 우리 일반인의 가슴에는 그리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일까요. 까닭은 몇 가지로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먼저, 진정으로 값진 일은 느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두루마리 하나를 읽어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기다림과 거대한 실험 장비, 그리고 고전을 평생 연구한 학자들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사진을 만화로 바꾸는 일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누구나 손쉽게 나누어 볼 수 있는 형태로 펼쳐집니다. 애초에 사람의 눈길을 끌고 빠르게 퍼지도록 설계된 것입니다.다음으로, 시장의 셈법이 작용합니다. 당장 돈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쪽으로 빛이 모이는 반면, 깊은 지식의 영역은 좀처럼 화제에 오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혜택이 시간으로도 분야로도 우리 일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2천 년 전의 철학서를 되살리는 일이, 오늘 아침 장바구니를 든 우리의 살림살이에 곧바로 닿지는 않습니다. 미제를 풀어내는 인공지능의 약속이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보람이 조용하고 더디며 일상에서 비켜서 있기 때문입니다.우리 사회에서 인공지능은 흔히 두 얼굴로 그려집니다. 한쪽에서는 한낱 장난감처럼,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처럼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두 시선 모두 정작 중요한 가운데를 놓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참된 쓸모는, 사라진 지식을 되살리고 질병을 진단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자리에 있습니다.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이 점은 각별합니다. 2천 년 전 두루마리를 읽어낸 그 기술은, 알아보기 힘든 약 봉투의 깨알 글씨를 소리 내어 읽어 주고 낯선 외국어를 옮겨 주며 멀리 있는 자녀와 영상으로 잇대어 주는 일에도 똑같이 쓰일 수 있습니다.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쓸모로부터 누군가가 밀려나는 디지털 격차입니다. 인공지능이 낯설게 느껴지신다면, 한 박자 멈추어 배움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두루마리가 기술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렸듯,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익히는 일에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이번 이야기가 우리에게 일러 주는 것은, 인공지능은 요술 방망이도 아니고 한낱 장난감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침묵하던 두루마리는 기계와 학자가 손을 맞잡았을 때 비로소 입을 열었습니다. 기술은 사람의 안목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넓혀 주는 것입니다. 빠른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며, 화려한 것이 늘 값진 것도 아닙니다. 오래 남을 것을 묵묵히 쌓아 온 시니어 세대의 살아온 이치가, 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부려야 할지를 가만히 일러 줍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강력한 도구를 향해 지원과 요구를 함께 건네야 합니다. 사람의 오랜 문제를 푸는 데 쓰이도록 든든히 뒷받침하되, 한낱 눈요기에 머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요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물어야 할 것은 “오늘 우리를 무엇으로 즐겁게 해 줄 것인가”가 아니라, “오래 침묵해 온 어떤 문제를 이제야 비로소 함께 풀어낼 수 있는가”입니다. 2천 년 만에 다시 입을 연 두루마리가, 그 물음을 우리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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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8] 정부가 먼저 찾아주는 복지, 그 손길은 디지털 바깥에도 닿습니까?
받을 자격이 있는데도 제도를 몰라 혜택을 놓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복지서비스의 종류가 워낙 많고 신청 절차도 가구마다 제각각이다 보니, 정작 도움이 절실한 분들이 빈손으로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정부가 새로운 안내 방식을 내놓았습니다. 방향은 분명 반길 만합니다. 다만 그 손길이 어디까지 닿는지는 한 번 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한 번 가입하면 정부가 먼저 알려주는 제도보건복지부는 맞춤형 급여 안내, 이른바 복지멤버십 가입자에게 받을 가능성이 있는 복지서비스를 주기적으로 찾아 알려주는 정기안내를 올해 상반기에 처음 시행한다고 지난 6월 24일 밝혔습니다. 복지멤버십은 한 번 가입해 두면 가입자의 소득과 재산, 가구 구성 정보를 토대로 받을 만한 복지급여를 찾아 안내해 주는 제도로, 2021년 9월 도입돼 이듬해 전 국민으로 대상이 넓혀졌습니다. 이번 정기안내는 한 해 두 차례, 가장 최신 소득·재산 정보를 반영해 받을 가능성을 다시 판정한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보다 한 걸음 나아간 조치입니다. 정부는 이번에 134만 명을 대상으로 모의 판정을 거쳐, 가능성이 확인된 53만 가구에 약 79만 건의 복지서비스를 카카오톡과 전자우편 등으로 안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안내를 받지 못하던 가구가 처음으로 통지를 받은 사례도 여럿 확인됐습니다(사례 보도: 이데일리·디지털타임스). 국민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던 관행에서, 정부가 먼저 살펴 알려주는 방식으로 옮겨가려는 노력 자체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합니다.그러나 '가입한 사람'에게만 닿습니다문제는 이 안내가 복지멤버십에 가입한 분에게만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가입하지 않은 가구는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번 정기안내의 대상에서 비켜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입 절차를 스스로 챙길 여력이 있는 분과, 정작 복지의 손길이 가장 절실한 분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알아도 가입을 엄두 내지 못하는 취약계층일수록 이 첫 관문에서 걸러지기 쉽습니다. 정부가 행정복지센터 방문 가입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을 병행하고 있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입자에게 더 잘 안내한다'는 이번 정책의 본질은, 미가입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과는 결이 다릅니다. 가장 깊은 사각지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디지털의 문턱 앞에 멈춰 선 시니어전달 수단 또한 곱씹어볼 대목입니다. 안내가 카카오톡과 전자우편으로 발송된다는 것은, 그 통로 바깥에 계신 분께는 안내가 도착하더라도 열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복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들이야말로 바로 그 통로 바깥에 가장 많이 계십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4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를 보면,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을 기준으로 할 때 71.4%로,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을 포함한 정보취약계층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격차는 한층 또렷합니다. 70대 이상의 디지털 활용 수준은 일반 국민의 20.8%에 그쳐,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홀로 지내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니어가, 동시에 스마트폰 알림을 가장 확인하기 어려운 분이라는 현실을 통계가 그대로 보여줍니다. 정부는 '먼저 찾아 안내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스스로 가입한 사람에게 디지털로 알려주는 데 가까운 셈입니다. 손길이 가장 닿아야 할 곳에 손길이 가장 닿지 않는 구조라면, 그 안내는 화면 안에서만 분주할 뿐입니다.진짜 '찾아가는 복지'를 위하여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이 제도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정 자원을 아껴 꼭 필요한 곳에 닿게 하는 일, 그리고 기술이 사람의 손길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돕도록 만드는 일은 본래 보수적 가치가 가장 중시해온 원칙입니다. 사회안전망의 존재 이유는, 스스로의 힘으로 제도에 닿기 어려운 분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가입과 디지털 접속이라는 최소한의 노력을 요구하되, 그조차 어려운 분께는 정부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지원과 요구의 균형입니다.가입 절차 자체를 행정이 대신하거나 자동으로 등록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카카오톡과 전자우편만이 아니라 우편과 전화, 무엇보다 행정복지센터와 지역 돌봄망을 통한 사람의 방문 안내를 함께 가동해야 합니다. 가장 약한 분에게 디지털 문턱을 먼저 넘으라 요구하는 제도는, 안전망이라는 말의 뜻을 거꾸로 세우는 일입니다. 제도의 방향은 옳습니다. 다만 '먼저 찾는다'는 약속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화면 너머와 미가입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사람의 손길이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26년 6월 24일). 정기안내 사례는 이데일리·디지털타임스 보도(2026년 6월 24일) 참조. 시니어 디지털 격차 수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4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국가승인통계, 2025년 발표)에 따른 것으로, 정부 공식 통계와 언론 보도를 구분해 인용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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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7] 효(孝)를 가장한 욕심, 법정은 끝내 외면했습니다
영국에서 한 60대 남성이 부모가 남긴 집을 혼자 차지하려고 형제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살던 집에서 나가라는 명령과 함께 우리 돈으로 5억 원이 넘는 소송 비용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법원은 그의 주장을 사실과 다른 거짓으로 규정했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힌 행위라고까지 질책했습니다.영국 일간지 보도와 런던의 한 법원 심리 내용을 종합하면, 사연의 주인공은 올해 62세인 로버트 정 씨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연로한 부모를 돌보기 위해 본가로 돌아왔고, 그 대가로 부모가 집을 자신에게만 물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는 1998년, 어머니는 2016년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가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탓에 약 60만 파운드(약 12억 1천만 원)로 평가되는 재산은 세 남매가 똑같이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나는 해외에서 활동한 선임 회계사, 남동생은 정보기술 분야 관리자로, 두 사람 모두 사회적으로 자기 자리를 잡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씨가 집 전체를 자신이 가져가겠다며 소송을 내면서, 형제들에게 돌아갈 몫은 사실상 남지 않을 형편이 되었습니다.형제들의 반박은 거셌습니다. 어머니가 요리와 청소를 도맡는 동안 그는 거실에서 온종일 영화만 보며 지냈고 집안의 재정을 갉아먹었다는 것이 이들의 증언이었습니다. 누나는 2016년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어머니와 집의 상태를 보고 크게 놀랐다고도 밝혔습니다. 로버트 씨는 영화 관련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부모를 돌봤다고 항변했지만, 본가로 돌아온 뒤에는 공공 고용 지원 기관에 취직해 일했다는 사실 등이 함께 드러났습니다. 심리를 맡은 판사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증언이 일관되지 않고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부모 가운데 누구도 집을 혼자 물려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는 것이 판단의 요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공과금 명목으로 일주일에 50파운드(약 10만 원)가량을 보태고 가끔 저녁을 차린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돌봄으로 볼 수는 없다고도 선을 그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28일 안에 집을 비우라고 명령했으며, 26만 5,000파운드(약 5억 3천만 원)에 이르는 소송 비용도 그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이번 일은 먼 나라의 낯선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다 큰 자녀가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 곁에 머무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은둔형 외톨이라 불려 왔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집이나 방에 틀어박혀 사회와 거의 교류하지 않는 이들을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라고 부릅니다. 주목할 점은 이 현상이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본 내각부의 2019년 조사에서 40세에서 64세 중장년 히키코모리는 약 61만 명으로 추산돼, 청년층(15세에서 39세) 추정치인 약 54만 명을 웃돌았습니다. 자녀가 나이 드는 동안 부모도 함께 늙어,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상황을 일본에서는 '8050 문제'라고 부릅니다.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부가 2023년 처음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국내 고립·은둔 청년이 약 54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치가 나왔습니다(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다만 이는 19세에서 39세만을 대상으로 한 추정치인 만큼, 중장년층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여기서 한 가지,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합니다. 부모 곁에 머무는 자녀가 모두 '기생형 자녀'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모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자녀도 많고, 길어진 취업난과 높은 주거 비용 탓에 마음과 달리 독립이 늦어지는 청년도 적지 않습니다. 은둔의 배경에 우울이나 불안 같은 마음의 어려움이 깔린 경우도 흔합니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함께 사는 자녀를 향한 손가락질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명분 뒤에서 정작 연로한 부모가 모든 짐을 홀로 떠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돌봄을 받아야 할 시니어 부모가 오히려 다 자란 자녀의 끼니와 살림을 책임지는 구조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안에서는 한쪽이 조용히 소진되는 관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시니어와 청년을 위한 조언시니어 부모님께 먼저 권해 드립니다. 자녀와 한집에 살고 있다면, 살림과 생활비의 부담이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솔직하게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돕는 일과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어지는 일은 분명히 다릅니다. 재산과 상속에 관해서도 막연한 구두 약속에 기대기보다, 평소의 뜻을 분명한 형태로 정리해 두시는 편이 가족 간 다툼을 줄이는 길입니다. 다만 유언과 상속은 사안마다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결정에 앞서 변호사 등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길 권해 드립니다.자녀가 오랜 기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고립돼 있다면, 그것을 게으름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너른 시선이 먼저입니다. 마음의 어려움이 원인일 수 있는 만큼, 전문 상담 창구의 도움을 받아 회복의 실마리를 함께 찾는 편이 좋습니다. 끝으로 청년 독자께도 한 말씀 드립니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것 자체는 결코 흠이 아닙니다. 다만 그 관계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서지 않도록, 집안일과 생활비를 형편이 닿는 만큼이라도 나누어 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작은 몫이라도 함께 짊어지는 마음이, 부모와 자녀 모두의 노후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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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6] 풍요가 바꾼 중국의 식탁, 식량 걱정에서 허리둘레 걱정으로
한 세대 전만 해도 중국인들은 쌀과 국수를 넉넉히 먹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채 40년이 지나지 않아 그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식량을 배급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성인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거나 비만으로 분류되는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충분히 먹을 수 있을지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더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습니다.그 배경에는 두터워진 중산층이 자리합니다. 연간 가처분 소득이 1만 5,000달러(약 2,300만 원)를 넘는 중국의 중산층은 어림잡아 5억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의 장바구니가 달라지자, 농장과 식료품점과 식당으로 이어지는 식품 공급망 전체가 새로운 입맛을 따라잡느라 분주합니다. 더 건강하게, 더 안전하게, 더 단순하게 먹고자 하는 바람이 식탁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캘리포니아를 닮아 가는 식탁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신선하고 깨끗하며 채소와 생선을 앞세우는 이 흐름을 가리켜 식단의 '캘리포니아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연어와 블루베리, 아보카도가 그 상징입니다. 2022년 중국 정부가 연어를 건강한 오메가3 공급원으로 권장한 뒤, 한때 최상류층의 음식이던 이 생선은 전국적인 인기 식품으로 올라섰습니다.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Norwegian Seafood Council)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국은 노르웨이산 연어의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 되었습니다.값비싸던 먹거리의 문턱도 크게 낮아졌습니다. 부드러운 아보카도 한 개와 125그램들이 블루베리 한 팩이 어느새 1달러(약 1,500원) 안팎까지 내렸습니다. 지난해 중국의 블루베리 생산량은 80만 톤을 넘어서며 세계 1위 규모를 기록하였습니다. 기르는 방식도 달라져, 유기농 매출은 10년 사이 세 배 넘게 늘어 2024년 167억 달러(약 25조 6,50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변화의 뿌리에 자리한 불안이 변화의 바탕에는 풍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식품 안전을 둘러싼 뼈아픈 기억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2008년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로 30만 명이 넘는 영유아가 건강을 해친 사건은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고, 그때 생긴 불신은 지금도 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상하이자오퉁대학(上海交通大學)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식품 안전 문제에 여전히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책임을 지방보다 중앙 정부에 묻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정부가 늘어나는 비만을 중대한 공중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그저 배불리 먹는 단계인 츠더바오(吃得飽)에서 잘 먹는 단계인 츠더하오(吃得好)로 나아가기를 독려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과거의 토양과 수질 오염을 떠올리며 국내산 농산물을 정말 유기농이라 믿어도 좋은지 의문을 품는 시선이 있고, 14억 인구의 약 40퍼센트가 음식 배달에 기대는 현실에서 손수 좋은 식재료를 챙기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풍요가 곧 건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 거대한 나라의 식탁이 우리에게 일러 줍니다.먹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은 시니어를 위하여바다 건너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식탁이 풍요로워질수록 '얼마나'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해지는 흐름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음식을 먹어도 몸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거창한 식단을 새로 짜기보다 평소 익숙한 밥상을 조금씩 다듬는 편이 오래갑니다. 기름지고 짠 음식을 한꺼번에 끊으려 무리하기보다, 등 푸른 생선이나 제철 채소를 한 가지씩 곁들이는 작은 변화가 한결 부담이 적습니다.값이 부담스럽다면 굳이 수입 연어나 블루베리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까운 바다에서 나는 고등어와 삼치, 시장에서 만나는 제철 나물에도 같은 영양이 넉넉히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고르든 출처가 분명한 먹거리를 택하고, 유통기한과 보관 상태를 한 번 더 살피는 습관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됩니다.풍요는 더 많이 먹을 자유와 함께, 무엇을 먹지 않을지를 가려낼 책임도 함께 안겨 줍니다. 절제와 분별이라는 오래된 지혜야말로, 풍요의 시대에 시니어가 식탁 앞에서 지켜 낼 가장 값진 미덕일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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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5] 무임승차 '65세' 논쟁, 폐지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입니다
대구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만 75세 이상 시니어에게 시내버스를 무료로 연 지 2년 반, 대구정책연구원의 사후 분석에 따르면 무임 카드 제작과 운임 손실로 들어간 920억 원보다 이동권 확대와 혼잡 완화로 생긴 편익이 1,531억 원으로 더 컸고, 그 차이인 순효과가 611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 서울시는 정반대로, 65세인 지하철 무임 연령을 70세로 올리고 그 절감분으로 70세 이상의 버스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공청회에 부쳤습니다. 한쪽은 무임을 넓히고 다른 쪽은 좁히는 두 도시의 엇갈린 실험은 결국 한 가지 물음으로 모입니다. 초고령사회에서 시니어 무임승차는 지킬 약속인가, 다시 설계할 제도인가 하는 것입니다.세계 어디에도 '완전 무료'는 흔치 않습니다해외를 보면 일정 연령부터 요금을 전액 면제하는 나라는 의외로 드뭅니다(환율은 2026년 6월 기준). 한국과 가장 닮은 영국조차 무임을 버스로 한정하고 평일 비혼잡 시간대에만 허용하며, 기준 연령을 국가연금 수령 나이에 맞춰 자동으로 올립니다. 지금은 66세, 2028년에는 67세입니다. 미국은 전국 무임 제도가 아예 없이 비혼잡 시간대 절반 요금만 의무화해, 뉴욕은 정상 3달러(약 4,590원)의 절반인 1.50달러(약 2,300원)를 받습니다. 프랑스·독일·북유럽은 소득과 거주지로 대상을 거르거나 '무료' 대신 '감면'을 택했습니다. 일본 도쿄의 실버패스(シルバーパス)는 70세 이상에게 소득에 따라 연 1,000엔(약 1만 200원)에서 1만 2,000엔(약 12만 2,000원)을 본인 부담으로 지웁니다. 가장 극적인 곳은 중국 상하이입니다. 2016년 무료 승차를 폐지하고 현금 수당으로 바꾸자,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행 첫 근무일에 시니어 승객이 80퍼센트 넘게 급감했습니다. 공짜가 유료로 바뀌자 외출 자체가 줄어든 것입니다.무너진 전제, 그리고 재정의 무게우리 무임승차는 1984년 만 65세 이상 전액 무료로 굳어진 뒤 40년 넘게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당시 60대 중반이던 기대수명은 이제 83세를 넘었고,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시니어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의 나이는 평균 71.6세였습니다. 65세를 '돌봄이 필요한 노년의 시작'으로 보던 시선이 현실과 어긋난 것입니다. 재정의 무게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울교통공사의 무임수송 손실은 연 4,000억 원대, 누적 적자는 17조 원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책임 소재가 모호합니다. 전국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은 공익서비스비용(PSO)을 연 3,800억 원가량 정부에서 보전받지만, 서울교통공사 같은 도시철도 기관은 같은 손실을 보전받지 못합니다. 이 형평성 문제가 해묵은 갈등의 뿌리입니다. 다만 출퇴근 시간대 시니어 무임 비중은 8.3퍼센트에 그쳐, 무임을 혼잡과 적자의 유일한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새겨 둘 만합니다. 연령 상향론이 정부와 학계는 물론 시니어 단체에서도 제기되어 온 화두라는 점도 함께 기억할 일입니다.숫자에 잡히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값'무임승차를 거두는 일은 단지 요금 수입을 되찾는 일이 아닙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이 고령자를 장기 추적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로 버스 패스를 가진 시니어는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고 우울 증상이 적었으며, 신체 활동이 많고 사회적 고립도 덜했습니다. 버스를 한 번 탈 때마다 평균 16분의 신체 활동이 따라온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류장까지 걷고 갈아타는 과정 자체가 곧 운동인 셈입니다. 대구에서도 혼자 외출하는 시니어가 32.5퍼센트에서 65.0퍼센트로 거의 두 배가 되었고,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택하는 이가 늘어 사고와 혼잡, 환경 부담까지 줄었습니다. 상하이의 80퍼센트 급감은 이 보이지 않는 값이 결코 작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더 많은 외출과 걸음, 덜한 외로움이라는, 요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값이 무임승차에는 분명히 깃들어 있습니다.한국이 걸어야 할 길 — 폐지가 아닌 정교한 설계그렇다면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전문가들이 꼽는 선택지는 여럿입니다. 연금 연령과 맞물린 단계적 연령 상향, 출퇴근 시간대 이용 제한, 소득 상위 계층 차등 부과, 현금 보조와 교통 바우처, 그리고 도시철도에 대한 공익서비스비용 국비 보전이 그것입니다. 다만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는 정답이 아닙니다. 서울연구원은 2021년 보고서에서 무임 연령을 70세로 올리면 연간 손실의 25~34퍼센트가량을 줄일 수 있다고 보았지만, 우리 시니어 빈곤율이 2020년 기준 38.9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에 가깝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졸속한 연령 상향은 가장 가난한 시니어부터 길에서 내몰 수 있기 때문입니다.무릇 책임 있는 사회라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다음 세대에 무한정 떠넘기는 것은 어른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검증된 편익을 지닌 제도를 적자라는 숫자 하나로 졸속 폐기하는 것 또한 경솔한 일입니다. 정답은 이념의 양극단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에 있습니다. 평생 사회를 떠받쳐 온 시니어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떳떳한 주체로 존중하되, 여유 있는 계층은 합당한 몫을 나누는 균형, 곧 도움과 책임이 함께 가는 길입니다. 무임승차 논쟁이 세대를 가르는 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청년의 부담과 시니어의 복지가 만나는 자리를 사회적 대화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질서와 안전, 그리고 상식을 지키는 길이라 믿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저작권자 © 캐어유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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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4] 후회는 정책이 아닙니다, 금융 수장의 고백, 그 무게
지난 6월 22일, 우리나라 금융 감독을 총괄하는 금융감독원장이 기자들 앞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인허가 권한을 사실상 쥐고 있던 한 금융상품을 두고,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후회한다고 토로한 것입니다. 출시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품에서 각종 부작용이 쏟아지자, 정책의 책임자가 스스로 실패를 자인한 셈입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상품 출시를 두고 당시에도 고민이 많았다며,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한 데 대해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저는 이 고백을 인간적인 솔직함으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공직의 자리는 사후의 반성을 고백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미리 가려내고 선량한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하루 등락의 두 배, 그 위험의 실체문제가 된 상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개별 종목의 하루 등락폭을 두 배로 키워 베팅하도록 설계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입니다. 해당 종목이 하루에 5퍼센트 오르면 두 배인 10퍼센트의 수익이 나지만, 반대로 5퍼센트 떨어지면 손실도 두 배인 10퍼센트로 불어납니다. 이익이 크게 보이는 만큼 손실도 그대로 두 배가 되는 구조입니다.지난달 27일 첫 상장된 이 상품의 매수자는 약 92퍼센트가 개인투자자로 파악됩니다. 금감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연속 하락장에서는 수익률이 마이너스 37퍼센트까지 내려간 사례가 있었고, 앞서 6월 18일 금융감독원은 손실 위험을 경고하며 소비자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한 바 있습니다.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금융산업규제청(FINRA)은 오래전부터 레버리지 상품의 장기 보유 부적합성을 경고해 왔습니다. 이런 상품은 매일 손익이 다시 계산되는 구조라, 등락이 반복되면 원래 종목이 제자리로 돌아와도 투자자의 손실만 쌓이는 변동성 손실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전문가들이 이를 두고 단기 전문 투기 수단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누가 이익을 보는가더 뼈아픈 대목은 이 상품으로 누가 돈을 버는가 하는 점입니다. 금감원장 스스로 도박판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쪽이 결국 가장 많이 번다는 취지로 비유했습니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이 상품에서 발생하는 매매 수수료만 5조 원, 많게는 1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추정치는 금감원장의 간담회 발언에 근거합니다). 투자자가 변동성에 짓눌려 손실을 보는 동안, 상품을 운용하고 중개하는 쪽은 거래가 일어날수록 안정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구조라는 것입니다.본래 이 상품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 환율을 안정시키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환율 안정 효과는 미미했고 부작용만 커졌다는 것이 감독 당국의 자체 평가입니다. 명분은 거창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던 셈입니다.주니어보다 시니어에게 더 가혹한 변동성이 문제를 시니어의 자리에서 다시 보아야 합니다. 한창 일하는 세대는 큰 손실을 보더라도 다시 벌어 메울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 모은 자금으로 노후를 꾸려야 하는 시니어에게는 사정이 다릅니다. 하루아침에 자산이 두 배의 속도로 줄어드는 상품은, 회복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분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작동합니다.은퇴 자산은 빠르게 불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화려한 수익률 광고 뒤에 숨은 두 배의 손실 가능성을 냉정하게 읽어내는 분별이, 지금 시니어 세대에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혜입니다.후회가 아니라 대책이 필요합니다저는 책임 있는 공직자의 솔직한 고백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기초적인 위험조차 사후에야 깨달았다면, 애초에 그 판단이 어디서 어긋났는지부터 냉정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전문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손에 시민의 자산을 좌우할 권한이 주어진 것은 아닌지, 제도 전체가 함께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그러나 책임을 가리는 일과 사태를 수습하는 일은 별개입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음을 깨달았다면, 후회를 거듭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입니다. 위험한 상품에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더 촘촘히 두고, 한번 내준 인허가라도 부작용이 분명하다면 보완하거나 제한하는 결단이 따라야 합니다. 시장의 자율은 존중하되, 시민의 자산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것이 감독이라는 두 글자의 본뜻입니다.후회는 정책이 아닙니다. 시민이 공직자에게 바라는 것은 뒤늦은 반성문이 아니라, 위험을 미리 막아 주는 든든한 울타리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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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3] 방치된 빈집, 세금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일본의 '빈집세' 실험과, 시니어가 미리 챙겨야 할 상속의 지혜이웃 나라 일본의 도시 지자체들이 이른바 빈집세(空き家税)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오래 비워 둔 집에 세금을 더 무겁게 매겨, 소유자가 매각이나 임대에 나서도록 유도하려는 발상입니다. 오사카부 네야가와시(寝屋川市)는 지난 6월 11일, 시 전역을 대상으로 빈집에 과세하는 조례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 전체를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로, 2029년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교토시(京都市)는 2022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관련 조례를 통과시켰으며, 과세 시스템 정비를 거쳐 2030년도부터 실제 부과에 들어갈 예정입니다.세금의 크기는 집의 위치와 지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교토시는 우리의 재산세에 해당하는 고정자산세(固定資産税) 납부액의 절반가량이 매겨지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봅니다. 지은 지 40년 된 분양 아파트의 빈 가구를 예로 들면, 고정자산세가 연 5만 엔(약 47만 원)일 때 빈집세는 2만 5천 엔(약 23만 5천 원) 수준입니다. 반면 네야가와시는 고정자산세액의 35퍼센트를 세율로 정해 교토시보다 부담을 낮췄습니다. 네야가와시에는 시내 주택의 13퍼센트가 넘는 약 1만 5천 호의 빈집이 있고, 이 가운데 임대나 매각 계획이 없어 실제 과세 대상이 될 만한 집이 약 6,400호로 파악됩니다.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빈집이 방치되는 까닭입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빈집의 약 60퍼센트는 상속으로 물려받은 집이며, 여러 친족이 함께 소유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집을 팔려면 공동 소유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해 절차가 번거롭고, 소유자마저 나이가 들면서 정리에 손을 대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빈집을 그대로 두어도 고정자산세는 물론 전기·수도 요금과 화재보험료, 아파트라면 관리비까지 꾸준히 빠져나갑니다. 그렇다고 전기와 수도를 끊으면 집을 치우는 일조차 힘들어지고 화재보험을 해지하기도 부담스러워, 비용을 줄이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현지의 설명입니다.관건은 세금이 실제로 사람을 움직일 것인가입니다. 일본종합연구소는 주택 수요가 있는 시가지에서는 매각과 임대가 어느 정도 촉진되겠지만, 수요가 적은 지역에서는 넘겨받을 사람 자체가 드물어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빈집을 걷어 들이는 행정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토시는 빈집세로 안정기에 연 9억 5천만 엔(약 89억 원)의 세수를 기대하지만, 거주 실태를 확인하는 현장 조사 등에 드는 비용도 첫해에만 6억 엔(약 57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빈집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일본 전국의 빈집은 약 900만 호이며, 임대·별장용 등을 뺀 이른바 '기타 빈집'만 386만 호에 이르는데, 1993년과 견주면 2.6배로 불어난 규모입니다. 같은 연구소는 이 기타 빈집이 2043년에는 지금의 1.5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으며, 특히 오사카부와 도쿄도 같은 대도시권의 증가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철거 비용 상승까지 겹치면서, 빈집세를 검토하는 지자체가 더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빈집 문제는 빠르게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5년 '범정부 빈집 관리 종합계획'을 통해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를 갖추기로 했고, 한국부동산원이 운영하는 '빈집애(愛)' 플랫폼에서 전국의 빈집 현황과 매물 정보를 살필 수 있게 했습니다. 빈집을 철거하면 오히려 세 부담이 늘어나던 불합리를 손질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으며,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장기적으로 빈집세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빈집은 단지 비어 있는 건물이 아니라, 화재와 붕괴, 범죄의 우려가 깃든 우리 동네의 안전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거운 세금 하나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실험이 일러 주는 교훈은, 끝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강제에만 있지 않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가정의 지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한 채의 집을 두고도 가족이 마음을 모아 질서 있게 정리해 두는 일, 그리고 그 위에 합리적인 제도가 더해지는 일이 나란히 갈 때 비로소 빈집 문제는 풀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만 세금과 재산 정리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므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계시다면 세무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신 뒤 진행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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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2] 시니어 의료 안전을 되묻습니다
지난 6월 10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생활자원 회수센터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하던 직원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붕대에 감긴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마네킹으로 여겼지만, 붕대에 핏자국이 보여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확인 결과 길이 41센티미터, 발 크기 210밀리미터의 사람 왼쪽 다리, 무릎 아래 부위였습니다.경찰은 강력 범죄 가능성을 의심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발 크기를 근거로 피해자를 학생으로 추정하고 인천 지역 학교의 장기 결석자를 확인했으나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사이 소셜미디어에는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식의 근거 없는 괴담이 빠르게 번졌고, 투입된 수사 인력은 한때 102명까지 늘었습니다. 한 사회가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 준 일주일이기도 했습니다.반전은 최초 신고 일주일 만에 찾아왔습니다. 인천 중구의 한 요양병원이 경찰에 자진 신고를 한 것입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이 병원에 입원 중이던 89세 여성 환자의 다리로 확인되었습니다. 병원 측은 심장 질환을 앓던 이 환자의 괴사한 다리를 절단한 뒤 의료폐기물 용기에 버렸으나, 청소를 맡은 자원봉사자가 붕대 감긴 다리를 깁스(석고 붕대) 쓰레기로 착각해 재활용품과 함께 내보낸 것으로 진술했습니다.일반 병실에서 이뤄진 다리 절단이 사건에서 시니어 독자께서 특히 주목하실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절단 수술이 수술실이 아닌 일반 병실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현행 의료법은 전신 마취가 필요한 수술은 반드시 수술실에서 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런데 해당 요양병원에는 수술실 자체가 없었습니다. 병원 측은 환자의 심장 기능이 약해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괴사가 심해 신경이 모두 손상된 까닭에 마취가 필요 없는 상태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무릎 부위가 이미 분리되어 다리 뒷부분을 가위로 잘랐을 뿐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보건복지부의 판단은 다릅니다. 마취 여부를 떠나 절단 수술은 무균 환경에서 이뤄져야 하며, 감염을 막을 의무를 소홀히 했다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의료계 역시 감염과 출혈 위험이 큰 절단 수술을 요양병원이 직접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합니다. 인근 대형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입원 병실에서 수술한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반복되는 의료폐기물 관리 부실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번 일은 한 병원의 돌발 사고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감염 우려가 있는 의료폐기물은 전용 용기에 담아 생활폐기물과 분리해 처리하도록 폐기물관리법이 정하고 있습니다. 혈액으로 오염된 석고 붕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기준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끊이지 않았습니다.2021년 대구에서는 100병상 이상 대형병원 다섯 곳이 의료폐기물 배출 기준을 어긴 사실이 적발되었습니다. 한 병원은 의료폐기물 스무 상자 이상을 창고에 방치했고, 다른 병원은 사용한 주삿바늘을 일반 폐기물과 섞어 배출했습니다. 배출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인력이 부족했거나, 처리 비용을 아끼려 한 것이 공통된 원인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비용과 손이 모자란다는 이유가 기준을 건너뛰는 변명으로 굳어진 셈입니다.신뢰는 규칙을 지키는 데서 나옵니다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요양병원에 몸을 의탁하는 시니어와 그 가족도 늘고 있습니다. 요양병원은 시니어가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을 의지하는 가장 가까운 의료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기본적인 안전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것은 한 병원의 평판이 아니라 의료 체계 전체에 대한 신뢰입니다.물론 전국의 수많은 요양병원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건을 빌미로 요양병원 전체를 불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비용과 인력을 이유로 마땅히 지켜야 할 기준을 건너뛰는 관행만큼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차분한 진상 규명과 함께, 요양병원의 수술 관행과 폐기물 관리 실태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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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1] 이윤과 공익은 함께 갈 수 있는가 — 영국발 '진보적 자본주의' 논쟁이 던지는 물음
공공 연구에서 출발한 민간 혁신이 암 조기 진단 기술로 이어지기까지, 시장의 활력과 사회적 가치를 잇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둘러싼 논의를 짚어 봅니다시장의 경쟁과 이윤 추구는 흔히 공공의 이익과 부딪치는 가치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국에서는 이 둘이 서로 등을 돌리는 관계가 아니라 손을 맞잡을 때 더 큰 사회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영국 노동당의 웨스 스트리팅(Wes Streeting) 의원이 내세운 이른바 '진보적 자본주의(progressive capitalism)' 구상이 있습니다. 스트리팅 의원은 2024년 7월부터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을 맡았다가 2026년 5월 그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는 평의원 신분이며, 노동당의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입니다.그가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며 든 사례는 영국의 공학자이자 창업가인 빌리 보일(Billy Boyle)의 이야기였습니다. 보일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익힌 초소형 화학물질 감지 센서 기술을 바탕으로 2004년 동료들과 함께 아울스톤(Owlstone)을 세웠습니다. 본래 군사와 산업, 보안 분야에서 미세한 화학 성분을 잡아내려고 개발된 기술이었으니, 대학의 기초 연구라는 공공의 씨앗이 민간 기업의 혁신으로 자라난 셈입니다. 그의 행보가 크게 바뀐 것은 2014년 아내를 대장암으로 떠나보낸 개인적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더 일찍 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같은 센서 기술을 암 조기 진단에 적용하기로 결심하고 2016년 아울스톤 메디컬(Owlstone Medical)을 따로 분리해 세웠습니다.이 회사가 개발한 호흡 생검(breath biopsy) 기술은 사람이 내쉬는 숨에 섞인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분석해 질병의 신호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날숨만으로 폐암이나 대장암 같은 질환을 비교적 간편하고 몸에 부담이 적게 조기에 가려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회사는 10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의료비 15억 달러(약 2조 2,650억 원)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으며, 2023년까지 누적 1억 5천만 달러(약 2,265억 원)가 넘는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호흡 분석을 통한 진단 기술은 아직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인 단계로, 그 효과와 적용 범위는 앞으로 더 검증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스트리팅 의원은 이 사례를 통해 이윤과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의 동력이 공공의 선과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초기 단계의 혁신 기업이 그 성과를 키워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려면 민간의 모험 자본과 영리적 활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수십 년의 시간을 그저 신자유주의의 실패로만 규정하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으며, 시장 경제의 진짜 문제는 지나친 경쟁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전자의 진입을 가로막는 경쟁의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물론 이러한 구상이 영국 정치권에서 곧바로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같은 노동당 안에서도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 앤디 번햄(Andy Burnham) 등은 핵심 산업과 공공 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간의 혁신을 앞세울 것인가, 공적 소유를 넓힐 것인가 하는 물음은 복지와 성장의 조화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으로,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다만 스트리팅 의원이 함께 짚은 재정 건전성의 무게만큼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는 나라 살림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복지 국가를 떠받치는 양보할 수 없는 전제라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영국 통계청(ONS) 자료 기준 2026년 4월 말 영국의 공공부문 순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94퍼센트로 196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른 현실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이 논쟁은 멀리 떨어진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시장의 활력과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함께 살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무엇보다 보일의 기업이 매달린 화두인 조기 발견은 첨단 기술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미 누릴 수 있는 제도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암검진을 통해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폐암 등 여섯 가지 주요 암을 지원하며,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대부분 무료이거나 적은 본인부담으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검진 대상과 주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전화 1577-1000)에, 암 관련 정보나 상담은 국가암정보센터(전화 1577-8899)에 문의하시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윤과 공익을 함께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은 청년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전문성을 살리려는 시니어에게도 충분히 열려 있는 영역으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누리집 www.socialenterprise.or.kr)에서 분야별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결국 핵심은 균형에 있습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직접 떠안는 방식도,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 두는 방식도 아닌, 재정의 토대를 든든히 지키면서 민간의 활력이 공공의 선으로 흘러가도록 길을 터 주는 분별이 필요합니다.우리 시니어 세대께서는 절약과 자조의 미덕, 그리고 한 사회를 지탱해 온 질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오랜 경험과 신중함이야말로 성장과 복지 사이에서 합리적 기준을 찾아가는 우리 사회의 든든한 자산이 되리라 믿습니다.출처 이 글은 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에 실린 존 렌툴(John Rentoul)의 정치 칼럼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주요 사실관계는 영국 정부 및 의회 자료와 주요 외신 보도, 아울스톤 메디컬 공식 자료, 영국 통계청(ONS) 2026년 자료를 통해 별도로 확인하였습니다. 환율은 2026년 6월 중순 기준 1달러당 약 1,510원을 적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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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90] 화면 속 '명의(名醫)'를 의심하십시오 — 시니어에게 꼭 필요한 광고 문해력
영국에선 인공지능을 악용한 투자 사기가 한 해 40퍼센트 급증했습니다. 국내에선 가짜 의사 영상으로 평범한 식품을 불로초처럼 포장하고, '2~3만 원쯤이야' 하는 마음이 바로 그 노림수입니다.요즘은 화면에 비친 얼굴과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아무리 진짜처럼 보여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사람의 글과 영상, 음성을 전문가 수준으로 똑같이 흉내 낼 수 있게 되면서, 이를 악용한 사기와 과장 광고가 시니어의 노후 자금과 건강을 한꺼번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영국에서 벌어진 일영국 금융연합회(UK Finance)가 최근 펴낸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 투자 사기로 빠져나간 돈만 2억 2,150만 파운드(약 4,534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한 해 전보다 무려 40퍼센트가 늘어난 규모입니다. 가짜 투자처를 내세워 피해자가 스스로 돈을 보내도록 속이는 이 수법은 한 번에 가로채는 금액이 커서, 여러 금융 사기 가운데 피해액이 가장 컸습니다.이 단체에서 경제범죄를 총괄하는 임원은 인공지능의 등장이 범행을 한층 손쉽게 만들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유명인은 물론 피해자의 실제 가족이나 친구 목소리까지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어, 믿을 만한 상대와 거래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6월 초에는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총재가 한 정치인과 방송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듯한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 퍼졌고, 이 가짜 영상은 250파운드(약 51만 원)를 11주 만에 100만 파운드(약 20억 원)로 불려 준다는 황당한 광고로 이어졌습니다. 영란은행은 이런 영상에 절대 속지 말라고 강하게 당부했습니다.바다 건너 이야기가 아닙니다이 같은 수법은 우리에게도 이미 현실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말, 인공지능으로 만든 '가짜 의사' 영상을 내세우거나 평범한 일반 식품을 의약품처럼 오인하게 만든 부당 광고를 적발해 위반 업체 16곳을 행정처분 요청·수사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업체는 의약품을 모방한 식품으로만 약 30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방광염 완치', '전립선 비대증 회복', '세포 회복 능력을 올려 준다'는 식의 표현이 동원됐는데, 식약처는 이들 제품이 허가받은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만큼 광고가 내세우는 효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습니다.문제는 이런 적발이 결코 한두 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건강기능식품인 양 둔갑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반 식품의 허위·과대 광고는 지난해에만 5천 건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단속의 그물을 빠져나간 광고는 오늘도 짧은 동영상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마치 한 알이면 젊음을 되돌려 줄 불로초인 것처럼 시니어를 유혹하고 있습니다.'2~3만 원쯤이야'라는 마음의 빈틈투자 사기가 한 번에 큰돈을 노린다면, 식품 과장 광고는 오히려 작은 금액을 무기로 삼습니다. 값이 2~3만 원 남짓이다 보니 '설마 손해 봐야 얼마나 보겠나, 한 번쯤 속아도 그만'이라는 마음이 들기 쉽습니다. 바로 이 방심이 빈틈입니다. 적발돼도 끊임없이 같은 광고가 되살아나는 까닭은, 속는 사람의 어리석음 탓이라기보다 이 작은 금액의 심리를 정확히 계산한 노림수가 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게다가 짧은 동영상에 머무는 시청 시간이 늘어난 시니어일수록 이런 광고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아집니다. 영국 금융연합회는 거대 기술기업들이 자사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사기를 걸러낼 역량을 갖추고도 정작 그 투자에는 인색하다고 비판하며, 이들에게 더 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우리 식약처도 올해부터 인공지능 기반 광고 단속 체계를 본격 가동하기로 했습니다. 플랫폼과 당국이 제 몫의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하는 일은 분명 필요합니다.광고 문해력, 시니어의 새로운 생존 기술그러나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결국 마지막 방패는 시청자 스스로의 분별력, 곧 광고 문해력입니다. 몇 가지만 기억해 두시면 충동을 한 박자 늦추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첫째, '완치', '단기간 고수익', '이번이 마지막 기회' 같은 말이 나오면 일단 의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화면 속 의사나 전문가, 심지어 가족과 지인의 영상·음성까지도 인공지능으로 얼마든지 꾸며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십시오. 돈을 보내거나 결제하기 전에 전화나 직접 만남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안전합니다. 셋째, 식품이 질병의 치료나 완치를 내세운다면 그 자체가 법을 어긴 광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넷째, 권유받은 금융회사가 미심쩍다면 금융소비자 정보포털 파인(FINE)에서 제도권 회사인지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경험과 지혜라는 가장 든든한 자산시니어 세대는 한평생 숱한 거래와 사람을 겪으며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안목을 길러 오신 분들입니다. 다만 그 무대가 종이와 대면에서 화면 속으로 옮겨 갔을 뿐입니다. 새로운 속임수의 문법만 익히시면, 오랜 세월 쌓아 온 분별력은 어떤 기술도 흉내 내지 못하는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됩니다. 혹시 이미 속으셨더라도 부끄러워 망설일 일이 결코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알리는 용기가 내 피해를 줄이고, 다음 누군가를 지키는 길이 됩니다. 의심스러운 권유 앞에서는 혼자 결정하지 마시고, 가까운 가족이나 거래 은행,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 먼저 상의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도움받을 수 있는 곳▶ 경찰청 보이스피싱 및 금융사기 신고·지급정지: 112 ▶ 금융감독원 금융사기 신고·상담, 불법사금융신고센터: 1332 ▶ 식품·건강기능식품 부당광고 및 부정·불량식품 신고: 1399 ▶ 금융소비자 정보포털 파인(FINE): fine.fss.or.kr ▶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 본인 계좌 일괄 지급정지: payinfo.or.kr ▶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상담: 1372출처: 이 칼럼은 영국 일간 가디언(The Guardian) 2026년 6월 15일자 보도와 영국 금융연합회(UK Finance) 연례 사기 보고서 2026, 영란은행(Bank of England) 2026년 6월 9일 발표를 바탕으로 한 캐어유 뉴스 보도를 토대로 하고, 국내 사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25년 12월 온라인 식품 부당광고 적발 발표와 2025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허위·과대광고 통계 등을 교차 확인해 재구성했습니다. 환율은 1파운드 약 2,046.85원(2026년 6월 16일 조회)을 적용했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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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9] '살던 집에서 나이 들기(Aging-In-Place)'가 우리에게 남기는 과제
정든 집을 지키려는 마음, 그러나 큰 비용과 '플랜 B' 준비는 함께 따져야 합니다나이가 들수록 어디서, 어떻게 노후를 보낼 것인가 하는 물음은 누구에게나 무겁게 다가옵니다.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교외에 사는 80대 초반의 한 부부는 방 네 개짜리 큰 집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대신, 살던 집을 고쳐 그대로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 대안을 두루 견주어 본 끝에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이처럼 살던 집에서 노후를 맞이하는 흐름, 곧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택하는 시니어가 미국에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살고 싶은 마음과 집의 현실 사이미국은퇴자협회(AARP)가 202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미국인의 약 75퍼센트가 지금 사는 집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문제는 정작 그 집들이 노후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2020년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계단 없는 현관과 1층 침실·욕실, 욕실 안전손잡이를 두루 갖춰 이른바 고령화 준비가 된 집은 열 채 가운데 한 채 남짓에 그쳤습니다. 계단과 욕조, 좁은 출입구, 미끄러운 바닥은 나이가 들수록 낙상의 위험 요인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산업이 된 자택 노후, 그리고 만만치 않은 비용그럼에도 오늘의 시니어에게는 과거 세대와 다른 이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역사상 가장 자산이 넉넉한 시니어 세대로 꼽히며, 살던 집에서 나이 들고자 하는 이들을 돕는 서비스도 한층 다양해졌습니다. 공인 전문가와 리모델링 업체, 컨설턴트가 늘면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었고, 차량 호출 서비스가 운전대를 놓은 시니어의 이동을 돕고, 낙상 감지 센서와 보안 초인종 같은 스마트홈 기술이 안전을 보강합니다.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젠워스(Genworth)와 케어스카우트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로체스터 지역 생활 지원 시설의 1인당 평균 연간 비용은 약 8만 4000달러(약 1억 2700만 원, 1달러 약 1513원·2026년 6월 16일 종가 기준)에 달했습니다. 앞서 그 부부 역시 시설 입주와 신축, 자녀 상속 등을 두루 검토했으나 길이 마땅치 않자,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던 남편이 직접 설계 소프트웨어로 1층 증축안을 그렸고, 이를 위해 약 30만 달러(약 4억 5400만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욕실 한 곳을 고치는 데에도 4만 5000달러(약 6800만 원) 이상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나라 역시 정든 집, 익숙한 동네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시니어가 많지만, 정작 집은 그 바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다행히 미국처럼 수억 원을 들이지 않더라도 안전을 보강할 길은 열려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복지용구 급여를 활용하면 안전손잡이와 미끄럼방지 매트, 실내용 경사로 같은 용품을 연간 160만 원 한도 안에서 구입하거나 빌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니어와 주거 약자를 위한 주택 개조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니, 거주지 행정복지센터에 확인해 두면 도움이 됩니다.지금의 건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끝으로 되새겨 볼 것은 플랜 B의 지혜입니다. 거주지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라이언 프레더릭(Ryan Frederick)은, 오늘 통하던 방식이 내일은 통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차선의 계획을 함께 마련해 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주일에 여러 차례 운동을 하며 제 나이보다 열 살은 젊게 느낀다는 그 부부의 아내조차, 문득 큰돈을 들인 증축을 충분히 누릴 만큼 건강이 이어질지 스스로 묻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돌봄 도우미를 위한 방과 의료용 침대를 들일 공간까지 미리 비워 두었습니다.집을 고치고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한 번의 결정으로 오랜 세월을 좌우합니다. 정든 집을 지키려는 마음은 더없이 소중하지만, 그 마음이 무리한 지출이나 막연한 낙관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앞으로의 생활 변화와 비용을 넉넉히 헤아리는 냉정함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건강이 영원하리라 단정하지 말고, 큰 결정일수록 혼자 판단하기보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살던 집에서 존엄하게 나이 들고자 하는 바람은, 따뜻한 의지와 현실적인 준비가 함께할 때 비로소 든든한 계획이 됩니다.※ 이 칼럼은 미국 현지 보도와 미국은퇴자협회(AARP) 2024년 주거 선호 조사, 미국 인구조사국 2020년 보고서, 젠워스·케어스카우트 2025년 요양비용 조사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환산액은 2026년 6월 16일 종가 기준 1달러 약 1513원을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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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8] 스위스가 거부한 ‘인구 빗장’, 초고령 한국에 남긴 숙제
세계 첫 ‘인구 상한’ 국민투표가 부결된 배경에는 ‘시니어를 돌볼 손’에 대한 걱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스위스 유권자들이 자국 인구를 일정 수준에서 묶어 두자는 제안을 국민투표로 부결시켰습니다. 한 나라가 스스로 인구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할지를 묻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투표였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6월 15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 사안은 ‘스위스판 브렉시트’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사회를 깊게 갈라놓았습니다. 부유하고 질서정연한 나라가 왜 이런 고민에 빠졌는지, 그리고 그 결말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차분히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세계 첫 ‘인구 상한’ 국민투표이번 법안을 발의한 곳은 스위스 하원 제1당이자 우파 성향의 스위스 국민당(SVP)입니다. 가디언 보도를 정리하면, 투표 결과 반대가 54.79%, 찬성이 45.21%로 집계되었고 투표율은 58.86%였습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스위스 정부는 현재 약 910만 명인 인구를 2050년까지 1,000만 명 안쪽으로 묶어야 했고, 인구가 950만 명에 이르는 순간 가족 결합과 거주 허가, 망명 승인 등을 즉시 제한해야 했습니다. 나아가 정해진 임계치를 넘기면 유럽연합(EU)과 맺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협정을 파기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유럽 단일 시장 접근권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찬성의 논리와 부결의 배경찬성 측의 주장에도 새겨들을 대목은 있었습니다. SVP는 빠른 인구 증가가 공공 기반시설과 주택 시장, 사회 복지 제도와 천연자원, 그리고 오랜 ‘전통적 생활 방식’에 부담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 제기입니다.다만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디언이 인용한 스위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자유이동협정 발효 이후 인구가 23%가량 늘어나는 동안 전체 경제 생산(GDP)도 약 24% 함께 증가했습니다. 인구 유입이 곧 부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현재 스위스 거주자 가운데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비율은 약 27%입니다.여론조사 기관 GFS 베른(GFS Bern)의 우르스 비에리 연구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유럽연합과의 외교 관계가 깨지고 노동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유권자들이 우려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 시니어를 돌볼 요양·보건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사람들이 가장 깊이 걱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고령화가 드러낸 ‘돌봄의 산수’바로 이 지점이 핵심입니다. 인구가 고령화되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는데, 그 돌봄을 감당할 일손은 자국 안에서만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스위스의 4대 주요 정당 장관들로 구성된 7인 연방 내각이 일찌감치 한목소리로 반대했고, 경제계와 중소기업 단체들 또한 외국인 전문 인력의 공급 통로가 막힐 것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발의 정당 소속 장관들까지 포함된 내각이 반대했다는 사실은, 이 사안이 좌우의 대립이라기보다 국가 존립의 실리에 관한 문제였음을 보여 줍니다. 결국 스위스 사회는 ‘국경을 닫는 명분’보다 ‘돌봄을 지키는 실리’를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초고령사회 한국이 마주한 같은 물음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돌봄을 받아야 할 시니어는 빠르게 늘지만, 요양보호사와 간병 인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외국 인력을 가사·돌봄 분야에 활용하려는 시범사업을 추진해 온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구체적 도입 규모와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기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고령화 시대의 돌봄 인력 문제는 ‘개방이냐 폐쇄냐’라는 구호로 풀리지 않으며, 감정이 아니라 산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빗장과 개방 사이, 합리적 기준의 자리오해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무분별한 개방을 옹호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인구와 이민의 문제에서 질서와 안전, 공동체의 결속을 지키려는 가치는 여전히 소중합니다. 핵심은 빗장을 걸 것인가 활짝 열 것인가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검증을 갖추는 일입니다. 들여올 인력의 자격과 처우, 사회 통합의 방안을 꼼꼼히 설계하는 지원(Fördern)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관리 기준을 함께 요구하는 자세(Fordern), 이 둘의 균형이 답에 가깝습니다.무엇보다 시니어를 ‘돌봄을 받기만 하는 약자’로만 바라보는 시선부터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시니어는 평생 사회를 떠받쳐 온 경험의 자산이며, 다음 세대가 어떤 돌봄 체계를 세워야 하는지를 가장 잘 일러 줄 수 있는 세대입니다. 스위스 유권자들이 보여 준 냉정한 현실 감각, 곧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과 결과를 따져 묻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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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7] 빚의 수렁을 건넌 스웨덴, 재정 건전성이라는 오래된 지혜
하루 1조 원씩 불어나는 빚,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영국의 국가 부채가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지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가 지난 6월 14일자로 전한 바에 따르면, 영국의 부채는 하루 6억 5천만 파운드(약 1조 3,260억 원)씩 늘어 오는 9월이면 1조 파운드(약 2,0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좀처럼 풀 수 없는 난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위기를 먼저 겪고도 끝내 이를 극복해 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입니다.500%의 금리를 견디고 빚을 절반 이하로 줄이다1990년대 초 스웨덴은 외환위기와 은행위기, 재정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경제 붕괴를 겪었습니다. 2021년까지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스테판 잉베스는 모든 문제가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터졌다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한때 500%까지 끌어올려야 했고, 실업률은 11.2%까지 치솟았습니다. 1995년 스웨덴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8.9%에 달했습니다.그러나 2024년에 이르러 이 비율은 35.9%까지 떨어졌습니다(이상 텔레그래프 보도 인용). 같은 기간 영국이 부채를 GDP의 43.5%에서 102.3%로 키운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입니다. 한때 재무장관이 국채를 사 달라며 뉴욕 월가의 젊은 투자자들을 직접 설득하러 다녀야 했던 나라가, 어떻게 이토록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 냈을까요.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거품은 걷어 낸 구조 개혁핵심은 과감한 구조 개혁이었습니다. 스웨덴은 먼저 예산을 짜는 방식부터 바꿨습니다. 종전에는 부처별 지출을 따로 정한 뒤 그것을 모두 더해 예산을 만들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의회가 전체 지출의 총액 한도를 먼저 정하는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1997년에는 경기 순환 주기 동안 공공 예산이 평균 2%의 흑자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강력한 재정준칙도 세웠습니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정리하고, 연금 제도 역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전면 개편했습니다.주목할 대목은 그 방식입니다. 스웨덴은 복지의 근간인 보편적 공공서비스 자체에는 함부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택 보조금처럼 현금을 나눠 주던 선심성 급여를 정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도움이 절실한 곳은 끝까지 지키되, 스스로 설 수 있는 영역에는 책임을 요구한 것입니다. 독일식 표현을 빌리면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이라 하겠습니다.세제 개혁도 단호했습니다. 1992년 자국 통화 가치를 시장에 맡기자 통화 가치는 크게 떨어졌지만, 그만큼 수출에 날개를 달아 GDP 대비 수출 비중이 약 30%에서 50%대로 뛰어올랐습니다. 2004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2007년에는 부유세를 폐지했습니다.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돌아오도록 길을 연 것입니다. 한 스웨덴 경제학자는 자국을 단순한 고복지 국가가 아니라 자본과 투자가 모여드는 나라로 만든 것이 회생의 비결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 결과 1995년 GDP의 10.9%에 이르던 부채 이자 부담은 오늘날 0.7%까지 낮아졌습니다. 빚을 갚는 데 쏟아붓던 돈을, 이제는 국민을 위한 곳에 쓸 수 있게 된 셈입니다.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스웨덴의 사례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빠른 고령화 속에서 복지와 연금 지출이 가파르게 늘고, 국가 부채 또한 함께 불어나고 있습니다. 재정준칙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수년째 공전하는 사이, 미래 세대가 짊어질 짐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영국조차 재정 준칙을 1997년 이후 열 차례나 바꿨다는 사실은, 규칙을 세우는 일보다 그것을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특히 스웨덴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확보한 대목은, 국민연금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무엇보다 시니어 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 낸 분들입니다. 나라 곳간이 비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의 힘에 떠밀려 강제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얼마나 쓰라린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스웨덴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시장이나 국제기구가 개혁을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손보는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물론 복지를 무작정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켜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되, 감당할 수 없는 빚만큼은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는 것, 그 균형이야말로 절약과 책임이라는 오래된 미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나는 이유입니다. 곳간을 살피며 살림을 꾸려 온 지혜는, 한 시대를 견뎌 온 시니어가 가장 깊이 아는 덕목이기도 합니다.참고 자료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2026년 6월 14일자 비즈니스 섹션, '스웨덴의 청사진이 빚에 잠긴 영국을 구할 수 있다(Swedish blueprint can save Britain from being sunk by debt)', 멜리사 로포드 기자. 본문은 원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재구성·요약하였습니다. 환율은 2026년 6월 기준 1파운드 = 약 2,040원을 적용하였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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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6] 기계가 모든 것을 더 잘하는 시대,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두 가지
스페인 철학자의 칼럼이 던진 물음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복잡한 계산과 단백질 합성까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시(詩)를 짓고 논문을 작성하는 영역마저 기계가 넘보는 지금, 많은 시니어 독자께서는 자연스레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두려움이 섞인 이 질문에, 최근 한 편의 철학 칼럼이 뜻밖의 차분한 답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습니다.지난 6월 11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에 실린 철학자 산티아고 알바 리코(Santiago Alba Rico)의 칼럼이 그것입니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18개월 된 아기 '안토넬라'와 함께한 일화로 글을 시작합니다. 곱슬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이 어린 승객은 비행 내내 안전벨트를 풀었다 끼웠다 하며 옹알이로 말을 걸어 왔고, 저자는 그 무방비한 사랑스러움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저자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능력의 경쟁이라면 인류는 이미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계산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일에서 AI는 사람을 앞질렀거나 곧 앞지를 것이라고 그는 인정합니다. 사람이 가르친 모든 것을, 한계가 없는 자원으로 더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만이 여전히 할 수 있고 기계는 하지 못하는 두 가지가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일'과 '죽음을 맞이하는 일'입니다.먼저 어린 시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그것을 밤의 두려움과 낮의 어른들 사이에서 기쁘고도 수고롭게 '인간의 몸'을 얻어 가는 과정이라 풀이합니다. 지능은 신체와 분리될 수 있어도, 어린아이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은 누군가의 손끝에 만져지고 보살핌을 받는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연약함의 생생한 현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한계와 취약함이란 고쳐 없애야 할 '오류'가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온전히 피어나기 위한 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죽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비로소 사람이 세 가지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유와 사랑, 그리고 웃음입니다. 언젠가 끝이 있음을 알기에 깊이 생각하고, 남의 존재를 아프게 마음에 두기에 사랑하며,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약한 이도 강한 이와 동등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계가 없는 지능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자질이라 하겠습니다.이 통찰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핵심은 '돌봄'입니다. 저자는 여가를 벌어 주는 똑똑한 세탁기는 반길 일이지만, 어떤 사람도 기계도 우리를 대신해 우리 아이를 길러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단언합니다. 어머니를 로봇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거나 자유로워지지는 않으며, 다만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잊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이 대목은 돌봄 인력의 부족과 기술 도입을 동시에 마주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자리를 기계에 통째로 넘기는 것이 과연 진보인가를 되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걸쳐 가족을 돌보고 마을과 공동체를 지탱해 온 시니어 세대야말로, 돌봄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일의 경험과 지혜를 가장 깊이 간직한 분들입니다. 그 경험은 어떤 기계도 단숨에 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자산입니다.저자가 내놓는 결론은 명료합니다. 증기 기관차가 사람보다 빨리 달리게 된 지 두 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인류는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조깅을 하고 마라톤을 뜁니다. 마찬가지로 AI가 글을 더 잘 쓰게 되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문장을 써 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여느 동물과 구별 짓는 능력, 곧 '말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기계의 편리함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상의 수고 가운데 일부를 기술에 맡기는 것은 분별 있는 선택입니다. 다만 돌봄과 글쓰기와 말하기처럼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몸짓만큼은 끝내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 ― 이것이 오랜 삶의 질서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 온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분별이라 하겠습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도, 무비판적 환호도 아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맡길지를 가려내는 차분한 지혜일 것입니다.[출처] 이 칼럼은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 2026년 6월 11일 자 오피니언 면에 게재된 철학자 산티아고 알바 리코의 기고문 'La niña y la IA(소녀와 인공지능)'의 논지를 바탕으로, 캐어유 뉴스의 편집 방향에 맞추어 재구성·해설한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핵심 논지만을 정리하였습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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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5] 나누어주는 삶으로, 다시 품을 선한 ‘이타주의 야망’
오늘날 가장 명석하고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자신의 삶을 어디에 쓰고 있을까요. 이름난 대학을 나온 인재들은 사람들이 광고를 한 번이라도 더 누르게 할 방법을 궁리하고, 가장 영민한 두뇌들은 복잡한 금융 상품을 설계하는 데 젊음을 바칩니다. 정작 기후와 빈곤, 불평등처럼 우리 모두의 삶을 좌우하는 문제 앞에서는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새 책을 통해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시간과 재능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헛되이 흘려보내는 자원이 아니냐는 물음입니다.그는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과, 인간 본성의 선함을 재조명한 《휴먼카인드》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입니다.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는 그를 두고 한층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의 대중 지식인이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신간에서 내놓는 화두는 《모럴 앰비션(Moral Ambition, 선한 야망)》입니다. 더 높은 연봉과 안정된 자리를 좇는 대신,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가장 시급하면서도 방치된 문제를 푸는 데 쏟겠다는 의지를 가리킵니다.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구호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폐지에 일생을 바친 한 영국인은 본래 라틴어 논문 공모전의 영예를 노리다 노예무역의 참상에 눈을 떴고, 그 참상을 끝낼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을 계기로 세계적 규모의 말라리아 퇴치 단체를 일군 평범한 회사원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소비자 운동가는 젊은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2,500주, 길어야 3,000주에 지나지 않는다며 재능을 헐값에 팔지 말라고 일갈합니다. 저자는 선한 야망이 마치 전염되듯 번진다고 말합니다. 책에 인용된 한 사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어느 마을에서 공동체가 존경하던 인물이 도움을 청하자 요청받은 이의 96퍼센트가 행동에 나섰다고 합니다(책에 소개된 일화로, 별도의 확인은 필요합니다).그렇다면 재능 있는 이들은 어찌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에는 좀처럼 뛰어들지 않을까요. 저자는 그 원인을 더 높은 보상과 안정된 경로가 주는 강력한 끌림에서 찾습니다. 동시에 선함을 맹목적 희생이나 소극적 자선쯤으로 여기는 오랜 통념도 한몫합니다. 브레흐만은 이 통념을 뒤집습니다. 명석하고 재능 있는 사람일수록 그 능력을 이타적 목적에 연결할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참된 성공은 무엇을 쌓아 올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세상에 보탰느냐로 가늠된다는 명제가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참된 성공은 '무엇을 세상에 보탰느냐?'이 화두는 한 가지 점에서 시니어 독자께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인생의 적지 않은 길을 이미 걸어오신 분들에게,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물음은 한결 더 무겁게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경험, 사람과의 인연, 더러는 모아 온 재산까지, 평생에 걸쳐 쌓아 오신 것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의 시선을 빌리면, 인생의 후반은 기력이 저무는 내리막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것을 비로소 세상에 돌려주는, 기여가 가장 환하게 빛나는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동체가 우러르는 어른의 한마디는 그 어떤 호소보다 멀리, 그리고 깊이 번집니다. 세월이 쌓아 준 신망과 분별을 지닌 시니어야말로 선한 야망을 가장 넓게 퍼뜨릴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 까닭입니다.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일러두고자 합니다. 이 책이 본래 겨냥한 독자는 평생의 직업적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는, 이제 막 진로를 설계하는 세대입니다. 소개되는 사례도 대개 미국과 유럽의 인물들입니다. 그러니 시니어 독자께서는 ‘하던 일을 바꾸라’는 권유를, ‘내게 남은 시간과 지혜와 자원을 이제 어디에 다시 쓸 것인가’라는 자신의 물음으로 바꾸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한 번의 옮겨 읽기만 더하신다면, 단 한 번뿐인 삶을 무엇에 바칠 것인가라는 이 책의 질문은 어느 세대보다 지금 이 시기에 절실하게 울립니다.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선의에도 효율과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균형 감각입니다. 재능과 야망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핵심이라는 지적은 냉정하고 또 옳습니다.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며, 한정된 시간과 힘을 가장 절실한 곳에 합리적으로 배분할 때 비로소 선한 야망은 결실을 맺습니다. 이는 오랜 질서와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 온 시니어 세대의 분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 중한지를 가려내는 안목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일 것입니다. 안목을 넘어 실천하는 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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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4] 비영리법인의 미래를 묻다 — '허가주의' 한 문장, 60여 년 만에 헌법의 시험대에 오르다
한국 7개월 대 아시아 평균 4개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북유럽·일본이 걸어온 길을 함께 살핍니다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작 그 일을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가장 높은 문턱을 마주합니다. 시민단체 하나를 법인으로 세우는 데 한국은 약 일곱 달이 걸리는데, 이는 아시아 17개국 평균인 넉 달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비영리 종사자들은 관련 법과 제도를 이해하고 따르기가 어렵다고 답한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이 문턱의 뿌리는 1958년 제정된 우리 민법 제32조에 있습니다.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법인이 될 수 있다고 정한 이 한 문장이, 60여 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채 2026년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단대에 올랐습니다. 마침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오는 6월 17일 서울 성수동에서 비영리 법인 설립의 미래를 주제로 공개 포럼을 엽니다. 아시아 17개국의 공익활동 환경을 비교한 국제 연구 두잉 굿 인덱스(Doing Good Index) 2026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제도가 서 있는 자리를 짚는 자리입니다.먼저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단체가 법적 인격을 얻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른데,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행정청의 재량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주의(許可主義), 법이 정한 요건만 갖추면 등기로 자동 인정되는 준칙주의(準則主義), 그리고 등기조차 필요 없는 자유설립주의(自由設立主義)입니다. 여기에 요건을 갖추면 행정청이 반드시 승인해야 하는 인가주의(認可主義)가 중간에 자리합니다.한국 제도의 핵심은 바로 그 허가라는 두 글자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대법원은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행정청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재량행위로 보아 왔습니다. 어떤 요건을 갖추면 허가를 내주어야 하는지 법이 명확히 정해 두지 않은 탓에, 법인이 될 수 있는지가 사실상 담당 공무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청소년의 사회 참여를 목표로 활동해 온 한 단체가 2024년 설립 허가를 거부당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25년 12월 민법 제32조 자체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대형 법무법인 열두 곳의 변호사 예순여섯 명이 공익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한 법학자는 비영리법인 설립에 허가주의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가장 자유로운 쪽에는 북유럽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비영리 결사는 법인격을 얻기 위해 정부에 등록할 의무 자체가 없으며, 세 사람 이상이 모여 정관을 채택하고 이사회를 꾸리는 순간 결사로 인정됩니다. 프랑스는 1901년 결사법에 따라,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관청에 신고하기만 하면 법인격을 가진 결사가 됩니다.미국, 영국, 독일, 일본은 또 다른 공통점을 보입니다. 법인이 되는 일과 공익성을 인정받는 일을 분리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비영리단체를 세우는 일은 영리회사 설립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간단하지만, 기부금 세제 혜택을 받는 501(c)(3) 자격은 연방 국세청의 까다로운 심사를 따로 거쳐야 합니다. 신청 수수료만 600달러(약 89만 원)에 이르고 심사에도 수개월이 걸립니다. 진입 문턱을 낮춘 미국에는 약 180만 곳의 비영리단체가 활동하며, 이 부문이 고용하는 인원만 1,280만 명으로 제조업에 맞먹습니다. 독일 역시 관할 지방법원 등기소에 등기하면 법인격이 생기되, 세제 혜택과 직결되는 공익성은 세무서가 별도로 판단합니다. 등록 비용은 75유로(약 13만 원)에 불과합니다. 영국은 자선위원회라는 독립 기구가 등록과 감독을 한곳에서 맡아 비영리 부문을 일관되게 관할합니다.특히 눈여겨볼 나라는 일본입니다. 같은 대륙법 전통에서 비슷한 민법으로 출발했지만, 일본은 2008년 공익법인 제도를 개혁하며 주무관청의 설립 허가주의를 폐지하고 준칙주의로 전환했습니다. 동시에 공익성 인정은 부처 공무원이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가 맡도록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설립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재단에 평의원회를 의무화하는 등 운영의 책임성은 오히려 강화했다는 사실입니다.이렇게 줄을 세워 보면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설립의 문은 객관적 요건만으로 폭넓게 열어 두되 공익성과 세제 혜택은 별도의 단계에서 엄격히 심사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고, 한국만이 설립 단계에서부터 행정청의 재량이 작동하는 허가주의의 한쪽 끝에 홀로 가까이 서 있습니다.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허가주의의 문제는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해서가 아니라, 그 판단이 예측하기 어려운 행정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명확한 법적 기준 없이 행사되는 재량은 법치의 본령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설립의 문턱을 객관적 기준으로 바꾸는 일은 규제를 푸는 것이라기보다, 자의적 권한을 법의 틀 안으로 되돌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그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는 만큼, 개정의 폭과 시기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러면서도 한 가지 원칙은 굽힐 수 없습니다. 문을 넓힌다고 해서 책임까지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설립은 자유롭게 열되 평의원회와 재무 기준으로 운영의 건전성을 다잡은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도 설립은 더 자유롭게, 운영은 더 책임 있게라는 두 축의 균형입니다. 자유로운 진입과 투명한 감독은 맞바꿀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짝입니다. 무엇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일수록 돌봄과 복지, 지역 공동체를 떠받치는 비영리의 역할은 더욱 커집니다. 비영리법인이 더 쉽게 태어나고 더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제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시니어 세대를 비롯한 이웃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끝으로 시니어 독자께 실용적인 당부를 덧붙입니다. 은퇴 이후 동호회나 봉사 모임, 작은 단체를 꾸리려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단체를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비영리법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법인 설립과 공익단체 등록, 기부금 영수증 발급 자격은 절차가 각각 다릅니다. 또 어느 단체에 기부하실 때는 그곳이 공익법인으로 정식 등록되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인지 국세청 공시 자료 등으로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차가 까다로운 사안일수록 혼자 판단하기보다 중간지원조직이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작은 모임에서 출발하더라도, 제도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그 뜻을 오래도록 든든하게 이어 갈 수 있습니다.출처: 법률신문; 두잉 굿 인덱스(Doing Good Index) 2022·2026, 아름다운재단·CAPS;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더나은미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국 국세청(IRS); 미국 재단협의회; 영국 자선위원회; 프랑스 공공서비스; 독일 민법전; 노르웨이 브뢰뇌이순 등록소; 스웨덴 비영리 안내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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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3] 끊기 어렵게 설계된 가공식품, 그 뿌리에 담배 회사가 있었습니다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자칩 한 봉지를 끝내 비우고, 탄산음료와 달콤한 과자에 자꾸 손이 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의지가 약한 탓이 아니라, 애초에 멈추기 어렵도록 설계된 제품 때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더 뜻밖의 사실은 그 설계의 상당 부분이 한때 담배를 팔던 바로 그 회사들의 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미국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에 실린 의사 리아나 S. 웬(Leana S. Wen)의 기고문은, 미국 공중보건 저널(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이 2026년 6월 3일 내놓은 특별 논문 묶음을 인용해 이 문제를 짚었습니다. 수십 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이 작업은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의 확산과 거대 담배 산업 사이에 분명한 연결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담배에서 식품으로 옮겨온 기술연구를 이끈 미국 캔자스 대학교의 중독 연구자 테라 파지노(Tera Fazzino) 부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담배 판매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당시 최대 담배 기업이던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와 R.J. 레이놀즈(R.J. Reynolds)는 식품 산업으로 사업을 넓혔습니다. 두 회사는 크래프트(Kraft), 나비스코(Nabisco), 델몬테(Del Monte)와 같은 굵직한 브랜드를 잇따라 사들였고, 한때 식품 사업은 두 회사 자산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할 만큼 그 중심에 놓였습니다.연구진이 과거 소송에서 공개된 100건이 넘는 내부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은 담배를 만들며 쌓은 노하우를 식품에 그대로 옮겼습니다. 더 긴 담배를 팔기 위해 등장한 킹사이즈 개념은 대용량 음료와 과자로, 건강을 걱정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라이트·저지방 발상은 그대로 식품 광고로 이어졌습니다. 방대한 색소와 첨가물 자료를 갖추고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화학 조합을 정밀하게 찾아내던 기법까지 식품에 동원되었습니다.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연구자들이 고기호성(hyper-palatable) 식품이라 부르는 제품입니다. 지방과 설탕, 나트륨에 여러 첨가물을 자연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조합으로 섞어,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게 설계한 식품을 가리킵니다. 짧고 강렬한 만족감이 빠르게 사라지도록 만들어 소비자가 더 많은 양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평생 가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어린 소비자를 일찍 사로잡는 전략 역시 식품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식탁의 70퍼센트, 그러나 신중한 해석이 전략은 실제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파지노 부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기호성 식품은 현재 미국 식품 공급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며(이 수치는 연구진의 추정치입니다), 이는 비만과 당뇨병을 비롯한 만성 질환이 크게 늘어난 시기와 맞물립니다. 담배 회사들은 2000년대 들어 식품 사업에서 차례로 손을 뗐지만, 그들이 남긴 방식은 업계 전반의 표준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다만 연구진은 이 대목에서 신중한 태도를 지킵니다. 담배 회사들이 이를 의도했는지는 확보한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공식품과 만성 질환의 관계는 인과를 확정하기보다 강한 연관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연구진은 과거 담배 규제에서 효과를 본 방식, 곧 어린이를 겨냥한 광고를 제한하고 경고 문구를 붙이는 등의 방안을 식품에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언합니다.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미국의 사례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인 가구 증가와 바쁜 일상 속에서 간편식과 가공식품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당뇨와 고혈압, 비만처럼 식습관과 밀접한 만성 질환을 관리해야 하는 시니어에게는 무엇을 먹느냐가 곧 건강의 질을 좌우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식품이 단순히 입맛에 맞는 수준을 넘어, 멈추기 어렵게 만들어진 제품일 수 있음을 알아 두는 것입니다. 알고 마주하는 것과 모르고 끌려다니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작은 습관만으로도 휘둘리는 정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우선 먹는 동안 머리는 더 원하는데 배는 이미 충분한 상태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곧 멈출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제품 뒷면의 영양성분표를 확인하는 습관도 권해 드립니다. 지방과 당류, 나트륨이 동시에 높은 제품일수록 한번 손대면 멈추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끼니의 중심은 가능한 한 가공을 덜 거친 재료로 옮겨 보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지은 밥과 국, 제철 채소와 과일이 가장 든든한 대안입니다. 완전히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비중을 조금씩 줄여 가자는 권유입니다. 만성 질환이 있으시다면 식단 조정은 주치의나 영양 전문가와 상의해 정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좋은 식습관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한 끼 한 끼의 작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오늘 저녁상부터 한 가지만 바꾸어 보셔도 충분합니다.출처: The Washington Post 2026년 6월 10일자 오피니언 면에 실린 리아나 S. 웬(Leana S. Wen)의 기고문을 바탕으로,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특별 논문 묶음(2026년 6월 3일 게재), 미국 캔자스 대학교 테라 파지노 부교수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라 슈미트(Laura Schmidt) 교수의 연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를 종합해 재구성하였습니다.※ 본 칼럼은 원문을 직역하지 않고 내용을 재해석하여 새롭게 작성하였으며, 의학 관련 내용은 단정적 표현을 피하고 연관성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만성 질환 관리와 식단 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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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2]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오래 기다린다는 역설
영국 응급실 장기 대기와 연관된 사망이 10년 새 거의 열 배… 빠르게 늙어 가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병이 위중하여 응급실을 찾았는데, 정작 그 문턱에서 오래 기다리다 끝내 명을 달리하는 일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의료 선진국으로 꼽혀 온 영국에서 그러한 우려가 거듭 통계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나이 들어 가는 우리 사회에도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닙니다.10년 새 거의 열 배로영국 왕립응급의학회(Royal College of Emergency Medicine, RCEM)가 최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서 응급실의 긴 대기와 연관된 것으로 추산되는 초과 사망이 2025년 한 해 1만 5,860명에 이르렀습니다. 한 주에 약 305명, 한 달에 1,300명가량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추산한 2015년 수치가 1,657명이었던 점과 견주면, 10년 만에 거의 열 배로 불어난 셈입니다. 다만 직전 해인 2024년 1만 6,644명보다는 소폭 줄었습니다.배경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요가 자리합니다. 지난해 잉글랜드 주요 응급실을 찾은 이는 약 1,700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으나, 도착 후 4시간 안에 입원이나 퇴원 등으로 처리된 환자는 60.5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영국이 정한 기준선 95퍼센트에 한참 못 미칩니다. 12시간 넘게 기다린 환자가 174만여 명, 24시간 이상 머문 환자도 48만 9천여 명에 달했습니다.숫자보다 ‘경향’을 읽어야 합니다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 사망자 수는 개개인의 사인을 ‘대기 탓’이라고 일일이 확인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환자 자료에 통계 모형을 적용해 보수적으로 추산한 ‘연관 추정치’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과거 영국 보건 당국이 이런 방식의 추정에 이견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 숫자에 놀라기보다, 대기가 길어질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경향에 무게를 두고 차분히 읽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사실에 근거하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가 이런 사안일수록 더욱 긴요합니다.가장 아픈 환자가 가장 오래 기다리는 구조문제의 본질은 자원의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RCEM 회장은 응급실이 가득 차 정작 도움이 절실한 중증 환자가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통계를 조금 개선하려고 비교적 가벼운 환자에게 자원을 몰아주라는 요구가 따르는 상황도 우려했습니다. 환자가 복도에서 진료받는 이른바 복도 진료(corridor care)를 없애겠다는 약속은 환영하나, 입원을 기다리는 중증 환자를 먼저 살피지 않는 한 본질은 풀리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대기의 그늘은 응급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자기공명영상이나 컴퓨터단층촬영, 각종 암 검사 등 진단검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192만 명으로 사상 최대에 이르렀습니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이 권고 기준인 6주를 넘겨 기다립니다.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의 첫 단추부터 어긋날 수 있습니다.이에 영국 정부는 오랜 대기를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하고, 응급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당일 응급진료 및 긴급치료센터 40곳에 2억 1,550만 파운드(한화 약 4,433억 원)를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임시방편이 아니라 병상과 간호 인력, 1차 의료와 지역 돌봄까지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영국의 사정은 우리에게도 거울이 됩니다. 우리 역시 받아 줄 병상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표류와 의료 인력 수급의 진통을 겪어 왔습니다. 우리나라 응급실은 도착 순서가 아니라 증상의 위중함에 따라 진료 순서를 정하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KTAS)를 적용합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먼저 진료받는 까닭에, 가벼운 증상으로 찾은 분은 한참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오래 기다린다’는 영국의 역설과 맞닿은 대목입니다.기다림을 줄이는 일은 공동체의 책무입니다의료 접근성은 한 사회가 그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 주는 척도입니다. 시니어가 살아온 세월만큼 쌓은 경험은 공동체의 자산이며, 그 자산을 지키는 일은 곧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국가는 충분한 병상과 인력으로 든든히 떠받쳐야 하고, 우리 또한 응급 의료를 아껴 정작 절실한 이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절제를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지원과 책임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기다림의 그늘은 옅어집니다.시니어 여러분께는 평소의 준비를 당부드립니다. 가벼운 증상이라면 응급실 대신 야간진료 병원이나 심야 약국을 먼저 찾으시고, 늘 드시는 약과 지병, 알레르기 정보를 한 장으로 정리해 지갑이나 휴대전화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응급실의 실시간 상황은 보건복지부 응급의료포털 이젠(E-Gen, www.e-gen.or.kr)이나 119, 보건복지상담센터 129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병을 일찍 찾아내는 가장 든든한 길은 정기 검진입니다. 국가건강검진을 빠짐없이 챙기시고, 궁금한 점은 국민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마시고 즉시 119에 연락하셔야 합니다.건강에 관한 판단은 늘 의료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 담긴 통계와 정보는 현황을 이해하는 참고 자료일 뿐, 개인의 진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이 칼럼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2026년 6월 8일 자 보도를 바탕으로, 영국 왕립응급의학회와 영국 정부 발표 자료 등을 추가로 확인해 시니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것입니다. 원문을 직역하지 않고 의역하였으며, 모든 인용은 간접 인용으로 옮겼습니다. 환율은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 기준 2026년 6월 5일 1파운드 약 2,057원을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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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1] 삶을 ‘최적화’하다 즐거움을 잃는 사람들
— 측정의 시대, 시니어의 지혜를 다시 묻습니다모든 것을 숫자로 재는 시대요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잠자는 시간과 먹는 음식과 하루 걸음 수까지 숫자로 기록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향해 자신을 다듬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손목에 찬 기기가 밤새 수면의 질을 채점하고, 아침이면 오늘의 컨디션 점수를 보여 줍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의 기계처럼 측정하고 관리하는 이른바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부지런한 자기 관리가 정작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멈추어 물어볼 때가 되었습니다.한 칼럼니스트의 진단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의 칼럼니스트 제미마 켈리는 이 풍조를 정면으로 짚었습니다. 칼럼에 따르면, 인기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한 30대 방송인은 술을 끊었다가 다시 마셔 본 경험을 두고 마치 실험을 하듯 비교 측정(A/B 테스트)을 했다고 말합니다. 와인 두 잔에 취하지도 않았으나 그날 잠을 설친 탓에 사흘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과정을 자신이 후원받는 건강 측정 기기로 일일이 기록했다고 자랑하듯 덧붙였습니다.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측정 만능주의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한 방송 진행자는 모든 것을 끝없이 최적화하고 측정하다 보면 목표에 조금만 못 미쳐도 비참해진다며, 최적화가 즐거움을 죽이고 있으니 이에 맞서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무엇도 기록하지 말며 그저 즐겁게 보내라고 권했습니다.켈리는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더 보탰습니다. 임종을 앞둔 이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행복할 기회를 주지 못한 일, 그리고 지나치게 일만 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호스피스 현장의 기록을 토대로 널리 인용되는 보고로, 표본과 측정 방식은 연구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손목의 기기는 우리가 너무 늦게 잠들었다고 알려 줄 수는 있어도, 그날 우리가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평생의 인연을 만났는지는 결코 기록하지 못합니다.우리는 왜 자신을 숫자에 가두는가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을 숫자에 가두게 되었을까요. 무엇이든 효율과 성과로 환산하려는 후기 산업사회의 사고방식이 그 뿌리에 자리합니다. 삶을 ‘잘’ 사는 문제는 제쳐 두고 오직 목표 수치만을 좇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측정을 손쉽게 만들어 주는 기술과, 그 기술을 팔아야 하는 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립니다. 앞서 소개한 방송인이 자랑한 측정 기기가 사실은 그가 후원과 투자를 받는 회사의 제품이었다는 대목은, 이 열풍의 상업적 속내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건강과 자기 계발이라는 선의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으나,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더 사고 더 측정하라는 부추김이 깔려 있습니다.우리 시니어에게 던지는 물음이 문제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시니어 사이에서도 건강 관리 열풍은 뜨겁습니다. 스마트워치로 심박과 걸음을 확인하고, 영양제를 챙기며, 작은 수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건강을 돌보는 일은 분명 소중하고 마땅한 책임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검사 결과 한 줄에 마음이 흔들리고 즐거움을 자꾸 뒤로 미루는 건강 염려로 기울면, 정작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만남과 웃음과 여유를 놓치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정하는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의 핵심은, 수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기준으로 하루를 선택하는 데 있습니다.절제와 즐거움 사이, 중용의 지혜다만 이 글이 절제 없는 향락을 권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곤란합니다. 측정에 매몰되는 삶이 공허하듯, 건강을 함부로 방치하는 삶 또한 지혜롭지 못합니다. 우리 선현이 일러 온 중용(中庸)의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되, 그것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더 오래 더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균형입니다. 한 영국 작가는 요양원에서 몇 해를 더 연명하자고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할 까닭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소 과장된 말이지만, 삶의 길이만큼이나 그 깊이와 온기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새길 만합니다.수십 년의 풍파를 건너온 시니어 세대는 무엇이 정말로 남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숫자가 일러 주지 못하는 그 지혜야말로, 측정에 지친 이 시대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오래 보지 못한 벗에게 안부 한마디 건네 보시기를 권합니다.[출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오피니언, 제미마 켈리(Jemima Kelly) 칼럼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인용된 발언은 원문 보도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 옮긴 것이며, 직접 인용이 아닌 요약·재진술입니다. 임종 전 후회에 관한 내용은 호스피스 현장 기록에 근거한 다수의 보고를 종합한 것으로, 표본과 방법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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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80] 마음의 건강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습니다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마음의 풍경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도 마음의 건강을 둘러싼 사정은 나라마다 사뭇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의 소비자 인사이트(Consumer Insights)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우울감과 스트레스, 불안과 같은 마음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한 성인의 비율이 나라별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조사는 2025년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세계 주요 10개국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나라마다 1천 명에서 8천6백 명에 이르는 만 18세부터 64세까지의 응답자가 참여하였습니다.수치를 보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42퍼센트)이었고 미국(41퍼센트)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습니다. 캐나다(39퍼센트)와 영국(37퍼센트)이 그 뒤를 따르며 북유럽과 북미, 영어권 국가가 대체로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어 브라질(32퍼센트)과 독일(31퍼센트)이 중간 수준을 보였고, 인도(26퍼센트), 프랑스와 일본(각각 22퍼센트)이 그 아래에 자리했으며, 가장 낮은 곳은 중국(16퍼센트)이었습니다.숫자가 높은 나라가 더 아픈 나라일까요다만 이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번 결과는 의료기관의 정식 진단이 아니라, 응답자 스스로가 그러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밝힌 비율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수치가 높은 나라가 곧 마음이 더 병든 나라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에 거리낌이 적은 사회일수록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정신 건강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마음의 병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있어, 실제로 힘들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결과는 마음의 병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지도인 동시에, 사람들이 그 문제를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는지를 함께 비추는 거울로 읽는 편이 옳습니다.조사에서 빠진 65세 이상, 그러나 마음의 무게는 더합니다시니어 독자께서 특히 유념하실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번 조사의 대상은 만 18세부터 64세까지, 곧 경제 활동을 하는 연령층이었습니다. 만 65세 이상 시니어 세대는 처음부터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위의 수치를 시니어의 마음 건강으로 그대로 옮겨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건강이 소중하다는 사실에는 나이의 구분이 없습니다. 도리어 은퇴와 사별, 신체 기능의 변화, 사회적 관계의 축소처럼 인생의 후반기에 마주하는 변화들은 마음에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오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시니어 세대의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은 오래도록 관심이 필요한 과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마음의 병은 결코 의지가 약한 탓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먼저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지혜입니다마음이 가라앉고 의욕이 사라지거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평소 즐기던 일에도 흥미를 잃는 상태가 2주 넘게 이어진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시기를 권합니다. 이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병원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부담 없이 두드릴 수 있는 도움의 창구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습니다.마음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힘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담 전화와 제도도 끝내 대신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입니다. 가까이 사는 가족과 주고받는 한 통의 안부 전화, 동네 복지관과 경로당의 작은 모임에 한 발 내딛는 일, 이웃과 나누는 인사 한마디가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든든한 힘입니다. 사회가 마련한 제도가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그 울타리 안을 따뜻하게 채우는 것은 결국 우리 곁의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힘든 날, 부디 혼자 끌어안지 마시고 곁의 누군가에게, 그리고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그 한 걸음이 곧 회복의 시작입니다.자료 출처: 스타티스타 소비자 인사이트(Statista Consumer Insights) 조사 및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보도를 참고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조사 기간은 2025년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이며, 세계 주요 10개국의 만 18세부터 64세 성인(국가별 응답자 1천 명에서 8천6백 명)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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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79] 마취는 ‘잠’이 아니라 ‘되돌릴 수 있는 혼수’였습니다
— 시니어가 수술 앞에서 알아야 할 사실우리가 알던 ‘마취는 깊은 잠’이라는 믿음수술을 앞둔 많은 분들이 전신마취를 ‘잠시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는 일’로 이해하십니다. 의료진조차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제 주무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 국제 학계의 연구는 이 오래된 비유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주말판(The Wall Street Journal Weekend)은 6월 6일자 지면에서, 마취 상태의 뇌가 자연스러운 수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연구 흐름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신마취 상태의 뇌는 ‘잠든 뇌’가 아니라 ‘혼수상태에 더 가까운 뇌’입니다.뇌파가 말해 주는 진실이 통찰의 토대는 미국 하버드·매사추세츠종합병원의 에머리 브라운(Emery Brown) 교수 연구진이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발표한 종합 분석입니다. 연구진은 뇌의 전기 활동을 기록하는 뇌파(EEG) 자료를 비교해, 사람이 밤새 거치는 가장 깊은 수면조차 가장 얕은 전신마취보다 얕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수면 중 뇌파는 여러 단계를 오가지만, 마취 중 뇌파는 그 어느 수면 단계와도 닮지 않았고 오히려 혼수상태 환자의 뇌파와 가장 비슷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전신마취란 약물로 유도한, 그러나 되돌릴 수 있는 혼수상태라고 규정했습니다.최근에는 이 그림이 한층 정교해졌습니다.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은 머리 전체를 덮는 방식의 뇌파 측정으로 마취된 뇌를 정밀하게 지도화해 그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었고, 마취 상태가 뇌의 부위에 따라 어느 곳은 수면을, 어느 곳은 혼수상태를 닮는 복합적인 상태임을 밝혔습니다. 즉 마취는 단순한 ‘잠’도, 균일한 ‘혼수’도 아닌, 여러 상태가 겹쳐 있는 정교한 의식의 억제였던 것입니다.왜 이것이 시니어에게 더 중요한가이 사실이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분들이 바로 시니어입니다. 65세 이상 시니어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혼란과 착란을 보이는 섬망(delirium)을 겪거나, 수술 뒤 기억력과 판단력이 한동안 떨어지는 수술 후 인지기능 저하(POCD)를 경험할 확률이 젊은 층보다 뚜렷하게 높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뇌가 약물을 처리하고 본래 상태로 회복하는 속도가 더디고, 손상을 버텨 내는 뇌의 예비 능력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마취가 ‘잠’이라면 깨어나면 그만이겠으나, 그 본질이 ‘되돌릴 수 있는 혼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혼수에 가까운 깊은 억제 상태에 시니어의 뇌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 깊게 두는 것은 회복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예일대 연구진이 주목한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취 깊이를 정교하게 조절해 뇌를 혼수보다 수면에 가까운 상태로 유도한다면, 수면이 본래 지닌 면역·대사 회복 기능을 일부나마 살리면서 수술 뒤 인지 후유증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입니다.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새겨야 할 점우리 사회는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습니다. 시니어의 수술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하루 약 6만 명이 전신마취 아래 수술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마취 안전은 더 이상 일부 환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다행히 마취 중 뇌파를 실시간으로 살피며 깊이를 조절하는 감시 장비와 기법은 이미 임상 현장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맞춤형 마취’의 필요성을 환자와 보호자가 먼저 인식하는 일입니다. 수술을 앞둔 시니어와 가족이라면, 마취 전 상담에서 본인의 나이와 평소 인지 상태, 복용 약물을 충분히 알리고, 마취 깊이를 감시하는 방법이 적용되는지 담당 의료진에게 차분히 여쭤보시기를 권합니다. 병원과 수술 관련 정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1644-2000)의 의료정보 안내에서, 수술 후 기억력 변화가 오래 지속될 때는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에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두려움이 아니라 분별이 필요한 때이 연구들은 마취를 두려워하라는 경고가 아닙니다. 전신마취는 지난 한 세기 의학이 쌓아 올린 가장 안전하고 정교한 성취 가운데 하나이며, 필요한 수술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더 큰 위험입니다. 다만 ‘잠’이라는 부드러운 비유에 안주하기보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데서 더 나은 선택이 시작됩니다.오래 살아온 시니어는 자기 몸의 신호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의료진의 전문성을 신뢰하되, 동시에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리고 합당한 질문을 던지는 것, 이 둘의 균형이 곧 스스로를 지키는 분별입니다. 검증된 사실 위에서 차분히 따져 묻는 태도, 그것이 시니어가 오랜 세월 길러 온 지혜의 힘이며 우리 사회의 안전을 떠받치는 단단한 토대이기도 합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Weekend(2026년 6월 6일자, Review 섹션)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연구,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게재 논문 E. Brown·R. Lydic·N. Schiff, ‘General Anesthesia, Sleep, and Coma’,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 본문 중 일부 수치는 해외 보도와 학술 자료에 근거하며, 환자 개개인의 상황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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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78] 집주인도 늙어간다 — 독일 임대시장의 고령화가 던지는 경고
요즘 부동산을 둘러싼 이야기는 대개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눈여겨보아야 할 변화는 다른 곳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집을 빌려주는 사람, 곧 임대인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에서 최근 발표된 한 조사는 이 흐름을 또렷한 숫자로 보여 줍니다.임대인의 60%가 55세 이상인 나라독일은 국민 상당수가 남의 집을 빌려 사는 이른바 세입자의 나라입니다. 세입자 단체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천만 가구가 넘는 4,400만여 명이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집을 공급하는 핵심 주체는 대기업이 아니라 개인 임대인이며, 이들이 전체 주택의 60% 이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문제는 이 개인 임대인들이 빠르게 나이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일경제연구소(IW Köln)와 부동산 플랫폼 기업 도이칠란트이모빌리엔이 해마다 함께 펴내는 민간 임대인 보고서를 보면, 임대인 가운데 65세 이상이 30%, 55세 이상으로 넓히면 60%에 이릅니다. 반면 35세 미만 임대인은 단 5%에 불과합니다. 같은 연령대가 전체 인구에서는 38%를 차지하는 것과 견주면 불균형이 뚜렷합니다. 이전 조사에서 11%였던 젊은 임대인 비율이 최근 5%로 줄었다는 한 가지 숫자만으로도 세대 간 이동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일 개인 임대인의 평균 연령은 58세입니다.물려받아도 이어가지 않는다흥미로운 점은 이 자산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옮겨 간다는 데 있습니다. 상속과 증여를 통해 적지 않은 부동산이 자녀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연구를 함께 진행한 독일경제연구소의 금융·부동산 시장 책임자 미하엘 포익틀랜더(Michael Voigtländer)는, 정작 그 자녀들이 임대업을 이어받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분석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임대 관리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그에 비해 수익은 얼마나 변변치 않은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기 때문입니다.여기에 제도와 환경의 변화가 겹칩니다.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는 임대료 상한제(Mietpreisbremse), 복잡한 보조금 규정, 수리 인력 부족, 그리고 낡은 건물을 고쳐야 하는 에너지 개보수(Sanierung) 의무가 임대업의 매력을 떨어뜨립니다. 실제로 개인 임대인이 가진 집은 대부분 1949년에서 1994년 사이에 지어진 노후 주택입니다. 한 부동산 경제 전공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가 부동산을 자산으로 여기면서도 직접 집을 사서 세를 놓기보다 부동산투자신탁(REITs)이나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간접 투자를 선호한다고 전했습니다. 손이 덜 가고 수익은 더 기대할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독일 주택소유주 단체인 하우스운트그룬트(Haus und Grund)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우려를 내놓았습니다. 새 난방기구법(Heizungsgesetz)에 따라 임대인이 화석연료 난방기를 새로 들이면 앞으로 발생할 난방비의 일부를 떠안아야 하는데,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다세대 주택에서는 히트펌프(Wärmepumpe)를 설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비용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단체는 차라리 임대를 접는 편이 낫다는 조언까지 내놓아야 했다고 토로했습니다.동네 집주인이 사라진 자리개인 임대인이 물러난 자리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수리가 필요한 집을 사들여 가치를 끌어올린 뒤 투자 상품으로 되파는 전문 기업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시장이 한두 채를 가진 개인에서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수익률을 따지는 법인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이 변화를 마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개인 임대인의 43%는 새로 계약을 맺을 때조차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법으로 올릴 수 있는데도 세입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양보해 온 것입니다. 전문 법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 이런 인정(人情)의 여백은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좋은 입지에 현대적 기준을 갖춘 집, 그리고 단독주택 임대의 상당 부분을 개인이 공급해 온 만큼, 그 기반이 약해지면 세입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도 함께 좁아집니다.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자산 이야기이 독일의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상당수 시니어가 노후를 부동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집 한 채, 작은 상가 한 칸을 세놓아 생활비를 보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동시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로 대표되는 임대차 제도의 변화, 전세사기 파문, 보유세 부담은 개인 임대인이 시장에 머물 이유를 점점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자녀 세대의 생각도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번거로운 관리와 분쟁의 위험을 떠안기보다, 물려받은 자산을 정리해 더 간편한 금융 투자로 갈아타려는 흐름이 분명합니다. 개인 임대인이 시장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기업형 임대가 대신할 때 임대료와 거주 조건이 더 깐깐하게 계산될 것이라는 독일의 경고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효율보다 오래 지켜온 질서를 생각할 때오랜 세월 동네의 집을 관리하며 세입자와 얼굴을 맞대 온 개인 임대인은 단순한 돈벌이의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임대 시장의 다양성과 안정을 떠받쳐 온, 보이지 않는 사회적 기반이었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평생 일군 부동산을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넘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장의 인간적 질서를 어떻게 지켜낼지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공동체의 숙제입니다.해법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세입자를 보호하는 합리적 규제는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개인 임대인이 시장을 떠나도록 등을 떠미는 과도한 부담은 결국 세입자에게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는 점도 함께 헤아려야 합니다. 지원할 것은 지원하되 책임을 물을 것은 묻는 균형, 그리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작동해 온 질서를 함부로 허물지 않는 신중함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붙들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출처: 독일의 일간지 디벨트(Die Welt) 2026년 6월 4일자 10면 경제면(WIRTSCHAFT UND GELD)의 임대시장 고령화 관련 보도, 그리고 독일경제연구소(IW Köln)와 도이칠란트이모빌리엔(Deutschland.Immobilien)이 공동 발표한 민간 임대인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본 칼럼은 원문 보도를 직접 인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재구성·해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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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377] 인공지능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아니면 거품인가
인공지능(AI)이라는 말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분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경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Martin Wolf)도 최근 글에서 바로 그 막막함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12세기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남긴 당혹스러운 자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빌려, 자신 또한 인공지능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헤아리려는 노력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현자는 없으니, 낯섦을 인정하는 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분별의 출발이라 하겠습니다.거품인가, 아닌가울프가 던지는 물음은 단순합니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아니면 한때의 거품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거품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정리합니다. 하나는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시장이 그 값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투기로 흐르는 경우로, 19세기 철도 건설 붐이나 1990년대 후반 닷컴 거품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거품은 꺼진 뒤에도 철도망과 광케이블 같은 쓸모 있는 기반을 세상에 남깁니다. 다른 하나는 알맹이가 없는 헛된 거품으로, 18세기 미시시피 거품과 남해회사 거품처럼 파산만 남기고 사라집니다.그렇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어느 쪽일까요. 울프는 다소 조심스럽게 진짜라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인류가 인공일반지능(AGI)의 문턱에 닿았는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사람을 대신해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자율형 모델의 능력만큼은 인상적이며, 앤트로픽(Anthropic) 같은 기업이 실제로 큰 매출 성장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거도 듭니다.엔비디아(Nvidia)의 주가 급등을 닷컴 시절의 시스코(Cisco)에 빗대는 시각이 있으나, 엔비디아는 이익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시스코의 순이익은 2000년까지 2년간 겨우 두 배에 그쳤습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는 인공지능이 이미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에 적지 않게 보태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투자 열기가 식으면 지금의 실적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그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거품은 아니라고 결론짓습니다. 실제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은 인공지능 기반 시설 투자를 위해 최대 800억 달러(약 120조 원)에 이르는 주식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축복과 재앙, 두 갈래의 목록울프는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 챗지피티(ChatGPT)의 도움까지 받아 축복과 재앙의 목록을 나란히 정리합니다. 축복 쪽에는 더 나은 의료와 과학의 가속, 생산성 향상,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 기후 대응, 번역과 음성 인식을 통한 접근성 개선 등이 오릅니다. 반대편 재앙 쪽에는 인간이 통제력과 책임을 잃을 위험, 테러에 악용될 신무기, 대규모 실업, 소수에게 쏠리는 권력, 대중 감시와 여론 조작, 객관성을 가장한 편견의 고착 등이 늘어섭니다. 어느 쪽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이 두 목록을 앞에 두고 울프는 몇 가지 결론에 이릅니다. 인공지능은 여러 산업에 두루 쓰이는 범용기술을 넘어 인류의 존립에 관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업과 국가 사이의 경쟁에 이미 불이 붙어 축복을 향한 경쟁과 재앙을 부르는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리라는 것입니다. 핵무기 확산을 막아 온 통제나 신약을 까다롭게 심사하는 규제도 이번에는 본보기가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은 국가만의 것도 아니고 한 종류로 묶이지도 않는, 쓰임새가 매우 다양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기술은 끝내 사람을 위해 존재그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을 곧 진보로 여기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하며, 참된 진보란 안전과 자유, 정당성이라는 조건 안에서 사람이 잘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황 레오 14세(Pope Leo XIV)가 2026년 5월 인공지능을 다룬 첫 회칙 마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 위대한 인류)에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호소한 대목도 같은 맥락에 놓입니다.기술은 끝내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쓸지 정하는 주인은 기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며, 진보의 잣대는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의 선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분별 있게 받아들이되 질서와 안전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함께 지켜 가는 일, 그것이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균형일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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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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