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 Jul 6, 2015
31-2 말을 잃은 세계 - 『바벨』
from 교보문고 낭만서점
『바벨』은 2009년 등단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짙은 인상을 남기며 평단의 기대를 받아온 소설가 정용준의 첫번째 소설집 『가나』(2011)에 이은 첫번째 장편소설이다.말이 얼음 결정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아름답고 불길한 동화 「얼음의 나라 아이라」로 시작되는 『바벨』은 이 동화에서 영감을 받은 천재 과학자 노아가 말을 결정화하는 실험에 실패한 뒤, 말이 만들어내는 부패하고 냄새나는 펠릿 때문에 사람들이 말문을 닫고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바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과 ‘소통’이라는 언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런 SF적 상상은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결합해 먹먹하고 절망적인 시기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 고통을 실감하게 한다. 사랑에 도달한다는 것은 언어를 나누는 공통 감각의 현장에 두 사람이 함께 입회하여, 근원적인 실존을 나누고 느끼면서, 다시 둘로 나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에 대한 정용준의 끈질긴 천착이야말로 종말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예표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벨』은 여전히 우리가 희망을 더듬어 나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를 느끼도록 만드는 중이다. - 강동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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