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지혜 #427] 대학이 유일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episode artwork

EPISODE · Jul 25, 2026 · 26 MIN

[아침마다 지혜 #427] 대학이 유일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from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 host 김형래

독일 청년들이 다시 손기술로 돌아서는 이유지난 20년간 독일의 교육은 한 방향으로만 달려왔습니다. 대학생 수는 10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불어났고, 학업 기간도 함께 길어졌습니다. 조산사 양성 과정이 학사 학위 과정으로 개편되고, 응용과학고등전문학교(Fachhochschule)가 응용과학대학교로 승격되는 동안, 정작 집을 고치려는 시민은 수공업자의 방문 예약 하나를 잡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회민주당 정치인 줄리안 니다-뤼멜린이 이런 흐름을 두고 학력 과잉 광풍이라 이름 붙였을 때 거센 반발이 일었던 것도, 대학 진학이 곧 성공이라는 믿음이 그만큼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에 균열이 생겼습니다.76 대 67, 뒤집힌 숫자독일 베르텔스만 재단이 청년 1,7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직업교육 아우스빌둥(Ausbildung)을 선택할 뜻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76%로 나타났습니다. 대학 진학을 고려한다는 응답 67%를 앞지른 것입니다. 응답자 대부분은 직업교육을 안정된 경력의 좋은 출발점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 대목은 정직하게 읽어야 합니다. 직업교육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소득이 가능하다고 본 응답자는 여섯 명 중 한 명에 그쳤습니다. 청년들은 직업교육을 안정의 길로는 인정하되, 부의 길로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말과 행동 사이에는 늘 간격이 있습니다만, 이번 변화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앞선 교육·사회경제 분야 연구에서도 아비투어(Abitur) 합격자 가운데 직업교육을 실제로 시작한 비율이 2011년부터 2021년 사이 14% 늘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자료의 세부 수치는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자리는 남는데 사람은 못 구하는 역설문제는 이제 청년의 의지가 아닙니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5만 개가 넘는 직업교육 자리가 주인을 찾지 못했는데, 동시에 8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공급과 수요가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셈입니다. 해당 연구는 기업이 학교 성적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반면 지원자의 동기와 성실성은 충분히 살피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성적이 낮은 청소년들은 어차피 안 될 것이라 지레 단정하고 지원조차 하지 않습니다. 법으로 정한 직업교육 보장제만으로 이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도는 자리를 만들 수 있어도, 사람을 보는 눈까지 만들어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인공지능이 옮겨 놓은 무게중심인식을 근본에서 흔드는 힘은 다른 곳에서 오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입니다. 번역가와 소프트웨어 개발자처럼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학술·전문 직군이 먼저 흔들리는 반면, 간호 인력이나 메카트로닉스 기술자처럼 몸과 현장을 함께 쓰는 직업은 오히려 몸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복잡한 노동시장에는 더 많은 대졸자가 필요하다는 오랜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주장은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 문제를 덮는 편리한 구실이기도 했습니다. 학력 과잉에 대한 비판은 대학 교육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학위만이 성공의 유일한 통로라는 고정관념을 겨눈 것이었습니다.한국이 마주 봐야 할 거울우리 사정은 독일보다 더합니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오랫동안 세계 최상위권을 지켜 왔고, 그 사이 제조 현장과 건설, 정비, 돌봄 분야는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려 왔습니다. 학위는 넘치는데 기술은 모자라고,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는데 사업장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폴리텍대학 같은 제도가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기술직을 차선책으로 여기는 시선, 임금과 사회적 대우의 격차, 성적표 한 장으로 사람을 가르는 채용 관행이 그 밑에 깔려 있습니다. 개별 통계 수치는 발표 시점과 기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인용 시 확인이 필요합니다.시니어 세대의 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오늘의 시니어 세대는 손으로 일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던 시대를 살아냈습니다. 선반을 깎고, 배선을 잡고, 벽돌을 쌓아 이 나라의 기초를 놓은 분들입니다. 그 세대가 자식만은 책상 앞에 앉히겠다고 결심했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다만 그 선의가 사회 전체의 규범으로 굳어지면서, 일의 값을 학위로 매기는 습관이 남았습니다. 이제 기술 발전이 그 계산이 틀렸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씁쓸합니다만, 젊은 세대가 스스로 방향을 다시 잡고 있다는 것은 결코 나쁜 신호가 아닙니다.필요한 것은 두 가지를 함께 붙드는 일입니다. 하나는 지원입니다. 현장 실습과 지원형 직업교육을 늘리고, 기술직의 임금과 승진 경로를 학위 경로와 대등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요구입니다. 제도가 자리를 마련한 만큼 청년에게는 성실한 참여와 책임을, 기업에는 성적표 너머의 사람을 보는 안목을 요구해야 합니다.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오래된 가치이지만, 인공지능의 시대에 가장 새로운 전략이기도 합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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