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 May 17, 2026 · 12 MIN
요한복음 1.43-51 만남, 그리고 고백
from [아침묵상] [Everyday Morning Devotions], 이사야서 · host Chi Hyun Kim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며,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즉 메시아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이후 더 큰 일을 보고 자신을 제대로 믿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먼저, 제자됨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1]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나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다.[2]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나 지적 탐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예수님과의 ‘만남’과 그의 주도적인 부르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부르심을 받은 빌립은 혼자 머물지 않는다.그는 곧바로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말한다.“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이러한 초대는 제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된다.참된 제자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그분께 나아가도록 초대한다. 하지만 나다나엘의 반응은 차갑다. 오히려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며 조롱한다.[3] 그는 율법과 예언자를 아는 사람이었지만,자신이 가진 지식과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을 낮게 보았다.나사렛이라는 어떤 문헌에서도 말하지 않는 메시아의 출신지가 그의 눈을 가렸다.그는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말씀의 성취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빌립은 논쟁하지 않는다.그는 나다나엘을 설득하려고 긴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그저 말한다. “와서 보라.” 이 짧은 말은 제자의 증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제자는 예수님을 대신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다.제자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사람이다.진짜 변화는 내 논리와 설득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그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만날 때 일어난다. 나다나엘은 결국 친구를 따라 예수님께 나아간다.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평가하기 전에,이미 예수님께서 자신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마주한다.예수님은 나다나엘보다 먼저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다.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판단하기 전부터, 예수님은 그의 내면과 성품과 갈망을 알고 계셨다.이것이 은혜다.우리가 예수님을 찾아가기 전부터,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보고 계신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설명하기 전부터, 예수님은 우리를 아신다. 그 사실 앞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려온 메시아로 고백한다.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백에서 멈추게 하지 않으신다.“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나다나엘의 믿음은 예수님의 초자연적 통찰력에서 시작되었지만,예수님은 그가 더 큰 일, 곧 예수님의 삶과 사역, 죽음과 부활, 승천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로 계시하신다.이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어떤 특정한 땅이나 성소에 제한되지 않는다.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길은 예수님 자신이다.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다. 오늘 본문의 나다나엘의 색안경을 낀 그 모습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우리도 성경을 알고,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지만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기준과 편견으로 하나님을 제한할 때가 많다.“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일하실 리 없다.”“저 사람을 통해 은혜가 임할 리 없다.”“이런 평범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리 없다.”나다나엘의 조롱은 오늘 우리의 닫힌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나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즉시 따르는가?나는 사람들을 내 논리 안에 가두는가, 아니면 예수님께 데려가는가?나는 내 편견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나는 예수님이 이미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 앞에서 정직하게 서 있는가?제자의 삶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에게 부름을 받고,예수님께 나아가며, 예수님을 보고,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다.우리는 나다나엘처럼 편견을 품고 시작할 수 있다.그러나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를 만난다면,그 편견은 믿음의 고백으로 바뀐다.닫힌 시선은 믿음의 눈으로 바뀐다.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보게 하신다. 오늘 우리는 빌립처럼 말해야 한다. “와서 보라.”그리고 나다나엘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그곳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아시고,우리보다 깊이 우리를 보시며,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더 나아가 그의 구원과 축복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How? 1)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기도하기 1)-1 “주님, 제 편견이 아니라 주님이 보시는 것을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기 2) 예수님이 나를 먼저 보고 아신다는 사실 앞에서 정직하게 서기 2)-1 하나님 앞에 ‘척’하지 말자. 내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기3) 매일 아침, 또는 자기 전 하나님께 ‘만나달라’고 요청하기3)-1 나부터 먼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함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I)』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1).브라운, 레이몬드 E. 『요한복음 I: 표적의 책』 최흥진 역. 앵커바이블 (서울: CLC, 2013).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Bultmann, Rudolf. 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Translated by G.R. Beasley-Murray. Edited by R.W.N. Hoare, J.K. Riches. Philadelphia, PA: Westminster Press, 1971.Dodd, C.H. Historical Tradition in the Fourth Gospel.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3.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1] cf.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2001), 158.[2] 바레트, 『요한복음 (I)』 (2001), 280. cf. 크루즈, 『요한복음』 (2013), 127.[3] 바레트, 『요한복음 (I)』 (2001), 287; 브라운, 『요한복음 I』 (2013), 342, 349; Thompson, John (2015), 52. cf. 크루즈, 『요한복음』 (2013),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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