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 · religion
[아침묵상] [Everyday Morning Devotions], 이사야서
by Chi Hyun Kim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Rev.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Full Gospel Somang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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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5 교회에서 세상으로
2. 내 삶에 적용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장엄한 서곡인 동시에, 만물의 기원과 구원의 완성을 ‘태초의 말씀’ 한 분에게 집중시키는 선언이다.이는 영적인 것만 선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다고 여겼던 당시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철저히 박살 내는 것이다. 피조 세계는 우연의 산물이나 저급한 결과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권리를 가지신 선하고 거룩한 소유다.또한, 피조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선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창조의 선언은 오늘 우리의 이분법적인 낡은 신앙을 예리하게 찌른다. 내 안에도 교회에서의 헌신과 예배만 거룩한 영적 활동으로 여기고, 나의 직장과 가정, 지난한 일상의 수고는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그릇된 도피주의가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만물에 대한 권리를 지니셨다는 것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치열하고 평범한 삶의 현장 자체가 주님을 대면하고 피조 세계의 선함을 회복해야 할 사명의 자리임을 보여준다.나아가 만물을 지으신 이 창조의 사역은 어둠을 찢고 들어오는 생명의 ‘빛’으로 절정에 달한다(4-5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라는 5절의 짧고도 강렬한 선언은 단순한 철학적 대립이나 지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둠의 권세는 십자가에서 빛이신 예수를 덮쳐 죽임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거둔 듯 보였으나, 결코 그 생명의 빛을 꺼뜨릴 수 없었다. 이 말씀은 복음서 전체에 펼쳐질 십자가와 부활의 궁극적 승리를 미리 선포하는 영광스러운 복음의 요약본이다.이 찬란한 부활의 승리는 역설적이게도 오늘 우리가 얼마나 어둠의 힘을 과대평가하며 살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현실의 고난과 짙은 절망, 그리고 지독한 죄의 유혹(어둠) 앞에서 마치 세상의 방식이 이긴 것처럼 쉽게 주저앉고 타협하는 패배주의가 있다.그러나 참 생명이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인간의 타락과 어둠이 언제나 빛을 이기려고 시도하지만, 이는 철저한 헛수고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의 짙은 어둠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물러서는 값싼 절망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내 안의 참 빛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승리했음을 직시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둠을 뚫어내는 영광스러운 생명의 빛을 끝까지 뿜어내는 치열한 영적 싸움을 계속해 나아가야 한다.이미 십자가에서 완성된 승리를 나의 것으로 선포한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걸음을 걸어나가야 할까?How? 1) 값싼 패배주의를 버리고 부활의 승리 선포하기1)-1 이미 패배한 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다. 두려움, 절망, 무기력이 밀려올 때마다 승리하신 부활의 주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 빛이 우리 안에 있음을 선포하자. 2)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조차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리’임을 기억하기. 2)-1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궈가야 한다. 3) 영적 도피를 끊고 일상에서 거룩을 회복하기. 3)-1 내게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그 현장에서 삶으로 예수의 빛을 발산해야 한다. ex) 식기도 제대로 하기, 쓰레기 길바닥에 버리지 않기 등[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I)』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1).브라운, 레이몬드 E. 『요한복음 I: 표적의 책』 최흥진 역. 앵커바이블 (서울: CLC, 2013).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de la Potterie, I. "L'emploi Dynamique De είς Dans Saint Jean Et Seş Incidences Théologiques." Bib 43, no. 3 (1962): 366–87.Klein, Günter. "»Das Wahre Licht Scheint Schon«: Beobachtungen Zur Zeit- Und Geschichtserfahrung Einer Urchristlichen Schule." 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68, no. 3 (1971): 261–326.Talbert, Charles H. Reading John: A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Fourth Gospel and the Johannie Epistles. Reading the New Testament Revised ed. Macon, GA: Smyth&Helwys Publishing,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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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20-24 판단 보다 환대로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이사야서의 장엄한 결론인 동시에,인간의 종교적 기득권과 율법의 한계를 완전히 박살 내시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새 창조’의 현장을 보여준다. 당시 예루살렘 기득권층에게 이방 땅에서 돌아오는 디아스포라 형제들은 제의적으로 ‘부정한 자들’로 치부하며 철저히 배척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교적 배타성을 심판하시며 은혜의 주권을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열방을 통해 그들을 ‘깨끗한 그릇에 담긴 순결한 예물’로 영광스럽게 이끌어오실 뿐만 아니라(20절), 놀랍게도 그들 중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우신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다(21절). 이는 혈통과 자격을 무기로 성전 권력을 독점하려던 예루살렘 제사장들의 교만과 오만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 공동체와 내면을 예리하게 찌른다. 내 안에도 신앙의 연수, 직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종교적 텃세와 영적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인간의 얄팍한 잣대가 아니라 오직 주권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 자격 없고 부정했던 나조차 제사장으로 부른 그 파격적인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형제를 온전히 환대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기득권이 타파된 자리에 임한 파격적인 은혜는 율법의 얽매임을 넘어선 ‘영원하고 연속적인 예배’의 성취로 이어진다.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라는 말은 단순히 절기를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초하루에서 초하루, 안식일에서 안식일”로 이어지는 끝없는 연속성을 뜻한다.즉, 모든 혈육이 모세 율법의 한계를 초월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매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경배하는 종말론적 예배의 참된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일주일에 단 하루, 예배당 문턱을 밟고 돌아가는 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착각하는 수동적인 종교 생활을 거부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일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삶의 현장, 즉 가정과 직장과 모든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주님을 대면하는 일상의 예배다. 나의 삶 전체가 매일 타오르는 순결한 소제물이 되도록 거룩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본문의 이 영광스러운 구원과 영원한 예배의 성취는 역설적이게도 철저한 심판의 경고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24절). 예루살렘 한가운데서 매일 끊임없이 예배하는 의인들의 영원한 존속 앞에는, 야웨를 거역한 내부 배교자들의 시체가 불과 벌레에 파먹히는 참혹한 광경이 놓여 있다. 이 가증스러운 시체들은 의인들에게 구원의 우월감이나 타인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만족감을 주려는 장치가 아니다. 이는 야웨를 떠난 자의 결말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끔찍한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게 함으로써,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야웨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을 끝까지 지켜내라는 소름 끼치도록 엄중한 경고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값싼 안도감에 취해 세상의 방식과 적당히 타협하는 나태함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은혜의 자리에서 미끄러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직시하고, 끝까지 말씀 앞에서 거룩하게 떨며 주님을 향한 영혼의 정절을 지켜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영원한 예배자로 남기 위한 치열한 믿음의 싸움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How? 1) 판단의 잣대를 꺾고 ‘환대의 자리’로 나아가기. 1)-1 텃세, 영적 우월감을 매일 점검하자. 2) 주일의 문턱을 넘어 ‘일상의 예배’ 회복하기. 2)-1 매일의 묵상, 기도, 찬양을 통해 매일 예배의 삶을 살자.3) ‘하나님 앞에 떠는 자’로 말씀 대면하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차준희. 『구약 예언서 수업』 (서울: 감은사, 2024).Berges, Ulrich. Jesaja 49-54.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15.———.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lenkinsopp, Joseph. Ezra-Nehemiah: A Commentary. The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PA: The Westminster Press, 1988.———. Isaiah 56-66. The Anchor Bible Vol. 19B, New York, NY: Doubleday, 2003.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Duhm, D. Bernh. Das Buch Jesaja. Hand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Prophetischen Bücher 1; 2 ed.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2.Fischer, Georg. Jeremia 26 - 52.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Vol. jere,2,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05.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Groß, Walter. "Israel Und Die Völker: Die Krise Des Yhwh-Volk-Konzepts Im Jesajabuch." In Der Neue Bund Im Alten: Zur Bundestheologie Der Beiden Testamente, edited by E. Zenger. Quaestiones Disputatae, 149–67. Freiburg, Basel, Wien: Herder, 1993.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Rofé, Alexander. "Isaiah 66:1-4: Judean Sects in the Persian Period as Viewed by Trito-Isaiah." In Biblical and Related Studies Presented to Samuel Iwry, edited by Ann Kort, Scott Morschauser. Isaiah 66:1-4. Winona Lake, IN: Eisenbrauns, 1985.Smith, Paul A. Rhetoric and Redaction in Trito-Isaiah: The Structure, Growth, and Authorship of Isaiah 56 -66. Vetus Testamentum Supplements 62; Leiden: Brill,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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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7-14 하나님의 모성애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캄캄한 절망과 형제들의 조롱 속에서(사 66:5)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위로하시는지를 가슴 벅찬 은유로 보여준다.하나님 자신이 그녀의 태를 여실 것이며, 이 경건한 자, 곧 종들의 갑작스러운 탄생은 물론, 그들의 양육과 성인기에 이르기까지의 위로를 책임지실 것을 약속하신다. 우리는 흔히 구원의 열매나 새로운 역사를 얻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진통(산고)’과의 투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 창조의 역사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생기며 민족이 한순간에 태어나는 기적은 단순히 빠른 응답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의심하며 조롱하던 대적의 입을 닫게 만드는 강력한 하나님의 권능의 선포다(9절). 즉, ‘종들은’ 인간의 율법적 행위나 기득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행동’에만 생명을 빚진 자들임을 명백히 선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어머니”에 비유하신다(13절). 앞선 본문에서 형제들에게 배척당하고 세상으로부터 쫓겨나 깊은 상처를 입어 애통하는 종들을 향해(10절), 하나님은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어머니의 품을 내어주신다. 세상의 젖줄이 끊어져 굶주리고 애통하던 자들은, 이제 풍성한 젖을 배불리 먹으며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된다(11절).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샬롬과 열방의 영광을 풍성하게 주시기 때문이다(12절).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거룩한 떨림을 간직하며 끝까지 인내한 자들의 뼈는 마른 뼈에서 ‘연한 풀의 무성함’(14절) 같이 생명력이 넘치게 될 것이다. 반면, 교만하게 그들을 짓밟던 원수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위로가 아닌, 시온에서 주어지는 이 하늘의 위로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며‘참된 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해질까?How? 1) 하나님의 품에서 참된 위로를 얻기 1)-1 세상의 다른 요소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얻는 것 2) 말씀 앞에 떠는 자로 오늘을 살아가기2)-1 마지막에 웃는 자는 하나님 앞에 떠는 자임. 3) 풍성한 강과 와디 같이 샬롬과 영광을 내게 주신다는 약속 붙잡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49-54.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15.———.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lenkinsopp, Joseph. Isaiah 56-66. The Anchor Bible Vol. 19B, New York, NY: Doubleday, 2003.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Lack, Rémi. La Symbolique Du Livre D'lsaie: Essai Sur I'image Littéraire Comme élément De Structuration. Analecta Biblica 59; Rome: Pontificio Istituto Biblico, 1973.Lau, Wolfgang. Schriftgelehrte Prophetie in Jes 56-66.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25;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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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5-6 우리가 들어야 하는 ‘소리’
2. 내 삶에 적용오늘 본문은 신앙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뼈아픈 갈등과 분열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사야는 밖으로부터 오는 이방 제국의 위협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시작된 ‘형제들의 미움과 폭력’을 고발한다(5절).당시 성전 제의를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순종하려는 ‘떠는 자들’을 성전에서 내쫓았다. 이 쫓아냄(파문)은 단순한 따돌림이 아닌, 토지 소유권과 같은 시민권마저 박탈당하는 끔찍한 사회적 추방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형제를 파문시키고 짓밟으면서도 “이것이 야웨의 이름을 위하는 일이다”라고 굳게 확신했다는 것.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잠잠히 기다리는 경건한 자들을 향해 “어디 한 번 너희의 기쁨을 우리에게 보여봐라”며 잔인하게 조롱했다(5절).이러한 본문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때로는 굳어버린 종교적 관습이나 자기 확신에 빠진 ‘제사장적 교만’이, 순전하게 말씀을 따르려는 지체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세상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묵묵히 좁은 길을 걷는 우리를 향해, “네가 믿는 하나님의 능력을 당장 눈앞에 증명해 보라”며 조롱의 화살을 쏘아댄다.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말씀 앞에서 떠는 자들의 억울한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6절에서 들려오는 파국적인 “떠드는 소리”는 다름 아닌, 기득권자들의 교만을 꺾고 당신의 종들을 신원(vindicate)하시는 하나님의 보응이다. 이 심판이 그들이 안전지대라 믿고 자랑했던 바로 그 '성전과 성읍'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무서운 경고다. 그날에 형제를 짓밟고 조롱하던 자들은 끔찍한 수치를 당할 것이며, 말씀을 경외하며 기다리던 종들은 마침내 하나님이 친히 나타내시는 참된 ‘기쁨’으로 완벽한 역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람의 조롱이나 세상에서의 소외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의 떨림’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종교적인 허울을 벗어던지고,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진실한 예배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그렇다면 껍데기만 남은 종교적 교만을 버리고, 어떠한 조롱이나 소외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 진실한 종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걸음을 내디뎌야 할까?How? 1) 사람의 ‘조롱’이 아닌 ‘하나님 말씀’ 앞에서만 떨기1)-1 당장 눈에 보이는 기쁨과 결과물이 없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직,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2) 내 안의 ‘제사장적 교만’과 ‘형제에 대한 미움’을 철저히 점검하고 끊어내기 2)-1 그렇게 교만하여 형제를 미워했다면, 회개하기.3)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선포하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lenkinsopp, Joseph. Essays on the Book of Isaiah. Forschungen Zum Alten Testament 128; Edited by Konrad Schmid, Mark S. Smith, H. Spieckermann, Teeter Andrew. Tübingen: Mohr Siebeck, 2019.Blidstein, Gerald J. "'Atimia: A Greek Parallel to Ezra X 8 and to Post-Biblical Exclusion from the Community." VT 24, no. 3 (1974): 357–60.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Sekine, Seizō. Die Tritojesajanische Sammlung (Jes 55-66) Redaktionsgeschichtlich Untersucht.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175; Berlin: De Gruyter, 1989.Tiemeyer, Lena-Sofia. Priestly Rites and Prophetic Rage: Post-Exilic Prophetic Critique of the Priesthood. Forshcungen Zum Alten Testament 2. Reihe 19; Tübingen: Mohr Siebeck, 2006.Webster, Edwin C. "A Rhetorical Study of Isaiah 66." JSOT 11, no. 34 (1986): 9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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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24-25 그날의 호흡, 제1형 '샬롬'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길고 길었던 백성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응답입니다. 만약 이사야 66장에 남아있는 현실적인 숙제들[1]이 없었더라면, 이 65장의 비전이야말로 이사야서 전체를 장식하는 ‘눈부신 피날레’가 되었을 만큼 압도적인 구원의 청사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실 구원의 궁극적인 모습, 그 마지막 단어는 바로 ‘완벽한 조화’입니다.첫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수직적인 조화입니다(24절).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우리가 입을 열어 간구하기도 전에, 여전히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이미 기도를 들어주고 계십니다. 제사나 어떤 율법적 행위를 거치지 않고도, 창조주 하나님과 즉각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충만한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죠.이는 실제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하심으로이뤄졌습니다(already). 둘째는 피조 세계와 이웃 사이의 수평적인 조화입니다(25절). 이리와 어린 양, 사자와 소가 함께 먹는 비전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폭력적인 질서가 완전히 종식됨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이사야 11장의 평화 이미지가 다시 등장하지만, 특정한 왕조나 권력자를 기대하는 ‘다윗-메시아적 함의’는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즉, 이 평화는 누군가의 권력으로 주어지는 먼 미래의 동화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비폭력적으로 살아가는 ‘실제 역사 속 사회적 공존’에 대한 강력한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죽어서만 가는 막연한 ‘저 세상(Jenseits)’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2]바로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야웨의 온 거룩한 산”(25절) 위에 존재합니다. 그 완벽한 조화의 초청장 앞에 선 우리는, 오늘 내 삶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이웃과 평화를 이루어가는 이 생명의 질서를 살아내 가야 합니다(Not yet). 십자가로 이미 열어주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며,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성산을 일궈가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How? 1) 이미 시작된 응답의 확신 속에 잠기기 1)-1 오늘 기도의 자리에 나갈 때, “내가 부르기 전에 이미 듣고 계신다”는 약속을 굳게 붙들기. 무거운 의무감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와 나누는 ‘즉각적이고 친밀한 대화’로 하루를 시작 2) ‘아직’ 남겨진 일상에 조화의 씨앗 심기 2)-1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날 선 언어나 권위적인 태도(폭력성)를 내려놓고, 먼저 손을 내밀고 공존을 선택하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걸어가기.3) 하나님이 꿈꾸시는 ‘그날’을 매일의 호흡으로 선포하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Schmid, Konrad. "Neue Schöpfung Als Überbietung Des Neuen Exodus : Die Tritojesajanische Aktualisierung Der Deuterojesajanischen Theologie Und Der Tora." Chap. Ⅱ Fallstudien, 6 In Schriftgelehrte Traditionsliteratur. Forschungen Zum Alten Testament, 185–205. Tübingen: Mohr Siebeck, 2011. [1] 성전의 지위, 구원의 지연.[2] cf. Berges, Jesaja 55-66 (2022),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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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17-23 선취하는 종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아멘의 하나님’(사 65:16)이 자신을 선택한 종들을 향해친히 열어줄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스러운 청사진을 보여준다. 그러고 나에게 묻는다. 과거의 상실에 머물러 울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약속된 기쁨을 오늘 내 삶으로 끌어당겨 노래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삶은 종종 지독한 ‘헛수고’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건축하고 심었지만, 예상치 못한 질병, 경제적 위기또는 타인의 착취로 인해 그 열매를 고스란히 빼앗겨버리는 상실의 아픔이 우리 삶에 존재한다. 그로 인해 우리 안에는 억울함의 우는 소리와 극심한 고통의 부르짖음이 끊이지 않았다(19절). 그러나 야웨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위해 망가진 삶의 질서를 본래의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새 창조’를 선언하신다. 이 새 창조의 핵심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화 속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1] 땀 흘려 수고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23절), 내 삶이 마치 깊이 뿌리내린 ‘나무의 수한(22절)’처럼 흔들림 없는 생명력과 번영을 누리게 되는 일상의 완벽한 회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구원의 그림 한가운데에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다.하나님은 단순히 환경만 바꿔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내가 너희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며 벅찬 사랑을 쏟아내신다(19절). 신랑이 신부를 보며 기뻐하듯,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받은 종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은 바로 ‘기뻐하는 것’이다(18절).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헛수고의 기억에 얽매여 있을 존재가 아니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기쁨을 선취(先取)해야 한다.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는 ‘야웨의 복된 자손’이다. 하나님이 약속한 새 창조의 기쁨을 오늘 내 삶에 선취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How? 1) 과거의 헛수고와 억울함의 기억 단호히 끊어내기 2) 내게 주어진 일상을 기대함으로 성실하게 심기2)-1 야웨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헛수고로 남기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고 꾸준히 걸어가자.3)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쁨’을 매일 소리내어 선취하기. 3)-1 매일 아침 “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야웨의 복된 자손이다”라고 먼저 선포하며 하루를 시작하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월튼, 존 H. 『고대 근동 사상과 구약성경』 신득일, 김백석 역. 고대근동시리즈 12 (서울: CLC,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Gardner, A. "Isaiah 65,20: Centenarians or Millenarians?". Bib 86, no. 1 (2005): 88–96.Gesenius. Gesenius’ Hebrew Grammar as Edited and Enlarged by the Late E. Kautzsch. Edited and Translated by A.E. CowleyOxford: Clarendon Press, 1910.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Hossfeld, F.-L., and E. Zenger. Psalms 3: A Commentary on Psalms 101-150. Translated by Linda M. Maloney. Hermeneia -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Edited by KlausBaltzer.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11.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Lau, Wolfgang. Schriftgelehrte Prophetie in Jes 56-66.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25;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4.Levenson, J. D. Creation and the Persistence of Evil: The Jewish Drama of Divine Omnipotenc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8.Steck, Odil H. Studien Zu Tritojesaja.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03;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1. [1] 베스터만, 『이사야 (Ⅲ)』, 465; Berges, Jesaja 55-66 (2022),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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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13-16 아멘의 하나님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종들’과 세상을 택한 ‘배교자들’의 엇갈린 운명을 타협 없는 단호한 어조로 선언한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앞에서는 어떠한 중간 지대(Gray area)도 존재하지 않는다.이방 신들을 “선택하고/택하고” (בָּחַר) 야웨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선택하는 자들[1]은 이 무리에서 스스로를 배제시키는 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자’는 종들의 무리에 속하게 된다.[2] 13-14절에 연속해서 등장하는 ‘보라’라는 외침은 이 두 집단의 극명한 대조를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인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며 세상의 요행에 화려한 잔칫상을 차린 자들의 결말은 뼈저린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영혼이 부서지는 통곡뿐이다. 그들은 단순히 슬퍼하는 것을 넘어 영원한 ‘수치(13절)’를 당하게 된다. 자신들이 의지했던 세상의 방식이 얼마나 무능하고 허망한 가짜였는지가 만천하에 폭로되기 때문이다. 반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야웨만을 앙망한 종들은 참된 영적 포만감을 누리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 극명한 운명의 차이는 결국 그들이 남기는 ‘이름’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을 버린 자들의 이름은 훗날 공동체 안에서 비참한 ‘저줏거리(15절)’로 전락하여 영적 실패의 표본이 된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종들에게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이름’을 부여하신다. 세상의 가치관에 얽매인 자아를 벗고, 하나님의 합법적인 상속자로서 전혀 다른 생명과 구원의 궤도에 진입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영광스러운 ‘다른 이름’을 얻고, 참된 포만감을 누릴 수 있는가? 그 비결은 16절에 등장하는 ‘진리의 하나님’, 곧 ‘아멘의 하나님(אֱלֹהֵיאָמֵן)’을 의지하는 데 있다. ‘아멘’은 막연한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그분은 참되시다”라고 내 존재를 걸어 고백하는 무거운 신앙고백이다. 세상의 화려한 지름길에 눈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만 “아멘!”으로 내 삶의 닻을 내리는 자, 오직 그들만이 영적인 주림을 면한다. 우리가 이 ‘아멘의 하나님’ 안에 굳건히 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뼈아픈 ‘이전 환난’은 잊혀지고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새 창조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썩어질 세상의 잔칫상을 뒤엎고, ‘아멘의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포만감과 영광스러운 ‘다른 이름’을 누리기 위해 오늘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바하르)을 내려야 할까?How? 1) 내가 지금 기웃거리는 세상의 식탁을 분별하고 끊어내기. 2)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엘로헤 아멘”(진리의 하나님) 선포하기. 2)-1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움직이실 수밖에 없음.3) 과거의 실패와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기. 3)-1 갈라디아서 2:20의 고백을 오늘 하루 3번이상 고백하기. [참고문헌] 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Fischer, Georg. Jeremia 26 - 52.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Vol. jere,2,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05.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Smith, Paul A. Rhetoric and Redaction in Trito-Isaiah: The Structure, Growth, and Authorship of Isaiah 56 - 66. Vetus Testamentum Supplements 62; Leiden: Brill, 1995.Sweeney, Marvin A. Isaiah 40-66. 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17; Edited by Rolf P. Knierim, Gene M. Tucker, Marvin A. Sweeney.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6. [1] cf. 이사야 65:12; 66:3; 58:5-6[2] cf. 이사야 5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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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8-12 요행이 아닌 기도의 손 펼치기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을 읽으며 던져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위기와 심판의 잿더미 속에서도 소망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덜 익고 볼품없는 포도송이 안에서도 생명력(즙)을 발견하시고,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다”며 끝까지 인내하시는 긍휼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사 65:8). 무너진 공동체 안에서도 주님만을 앙망하는 ‘종들’을 남기셔서 새로운 회복의 씨앗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충만한 생명과 기업을 상속해 주신다(사 65:9-10). 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끝내 외면한 배교자들의 행동과 그 말로는 처참하다. 그들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다리는 대신, 행운의 신 ‘갓’을 위해 화려한 잔칫상을 차리고 운명의 신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 부어 바친다(사 65:11).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세상의 처세술과 요행에 내 삶의 안전과 운명을 맡기려 한 것이다. 종일토록 “내가 여기 있다” 부르시는 하나님의 애타는 음성에는 철저히 귀를 닫은 채(사 65:12), 내가 원하는 결과를 스스로 통제하고 얻어내려 하는 이들의 모습은지독한 영적 교만이자 혼합주의의 표본이다. 이처럼 세상의 방식을 택한 자들의 끝은 파멸뿐이다. 그들은 스스로 좋은 운명(므니)을 얻고자 상을 폈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그들의 운명에 맹렬한 ‘칼’을 펼치신다(마나). 행운을 빌며 화려하게 폈던 그 상이, 결국 그들의 인생을 무참히 구부러뜨려 죽음과 굴복으로 이끈 것이다(사 65:12). 세상의 요행과 우상이 당장 내 인생을 활짝 펴줄 것 같지만, 결코 내 영혼과 삶의 결말까지 펴게 하지는 못한다. 이를 통해 오늘 내 안에는 어떤 모습이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여전히 헛된 요행과 세상의 방식에 술을 붓고 잔칫상을 차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이제 썩어질 세상의 동앗줄을 놓아야 한다. 초라한 내 삶 속에서도 기어코 생명(즙)을 발견하시고 인내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귀를 열고, 세상의 상을 뒤엎는 온전한 ‘야웨의 종’의 자리로 돌아가, 사수 할 때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요행의 상을 우상에게 펼지.기도의 손을 야웨께 펼칠지. 기도의 손을 펼치는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How? 1) 세상의 요행에 차려둔 밥상 뒤엎기. 1)-1 우리가 펼칠 것은 만군의 야웨임을 기억하자. 2) 주님의 부르심에 핑계 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하기. 2)-1 내 고집, 아집을 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묻고 행동하는 습관을 가지자.3) 내 안에 남겨진 ‘즙’을 기도와 묵상과 찬양으로 지켜내기. 3)-1 내 현실이 겉보기엔 신 포도 같더라도. 내 안에 성령으로 심겨진 십자가 은혜를 포기하지 말자.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2020).스튜어트, 더글라스. 『호세아-요나』 김병하 역. WBC 성경주석 31 (서울: 솔로몬, 201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구약 예언서 수업』 (서울: 감은사, 2024).Berges, Ulrich. Jesaja 55-66.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Herder, 2022.Hanson, Paul D. The Dawn ofApocalyptic.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5.Koole, Jan L. IsaiahⅢ/3.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Leuven: Peeters, 2001.Lack, Rémi. La Symbolique Du LivreD'lsaie: Essai Sur I'image Littéraire Comme élément De Structuration.Analecta Biblica 59; Rome: Pontificio Istituto Biblico, 1973.Steck, Odil H. Studien ZuTritojesaja.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Wissenschaft 203;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1.Zapff, Burkard M. Jesaja 56-66. Die Neue Echter Bibel Würzburg: Echter Verlag,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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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1-7 구원은 오직 종들을 위한 것
2. 내 삶에 적용 우리는 고난과 위기의 순간에 종종하나님은 숨어 계신다며 그분의 부재를 원망한다(사 64:12). 그러나 오늘 본문의 대답은 우리의 탄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숨으신 적이 없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마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응답할 때 쓰는복종의 언어인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다(הִנֵּנִי הִנֵּנִי)”를 사용하시며절대적인 만남의 의지를 보이셨다(사 65:1). 심지어 탄원자가 부르짖을 때나 취하는 절박한 제스처인 ‘손을 펴는’ 행동을(사 65:2), 야웨 하나님께서 패역한 백성을 향해 종일토록 취하며 애타게 다가가고 계셨다. 침묵의 진짜 원인은 우리의 ‘패역함’이었다. 위급할 때만 단회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뿐(다라쉬), 일상의 삶에서는 무덤과 은밀한 처소 등 세속적인 우상에게생사화복을 묻는 혼합주의적 뻔뻔함이 문제였다(사 65:3-4).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들의 끔찍한 영적 우월감이다. 돼지고기를 먹고 가증한 국을 마시는 부정한 짓을 일삼으면서도, 타인을 향해서는 성전의 제의적 용어들을 들먹이며“내게 가까이 오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고 선을 긋는다(사 65:5). 스스로를 극도로 거룩한 자로 포장한 이 어처구니없는 교만을 향해, 하나님은 ‘내 코를 찌르는 역겨운 연기’요‘종일 타는 불’이라며 강하게 분노하신다. 하나님은 종일토록 은혜의 손을 펴고 기다리시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고 야웨를 능욕하는 자들에게는공의로 보응하신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상급(פְּעֻלָּה)’을 의미하는 단어를 비꼬아그들의 끔찍한 행위에 걸맞은 ‘심판’으로 갚아주겠다고조롱 섞인 선언을 하신다(사 65:7). 위선자들의 가장 은밀하고 깊은 속(품)에 맹렬한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탓하던내 굳은 입술을 회개하며. 종일토록 탄원자의 애절한 모습으로 나를 향해은혜의 두 손을 펴고 계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 때이다. 헛된 우상과 위선적인 영적 우월감의 옷을 벗어 던지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진실하게 그분을 구하고 찾는 참된 종으로 서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재빠르게 돌아서야 한다. 우리 안에 스며든 영적 교만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How? 1) 내 안의 ‘은밀한 처소’ 허물기1)-1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것을 기도를 통해깨닫고 깨버리기 2) 종일토록 펴신 손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기도의 자리를 지키기.3) 늦기 전에 돌이켜 영적 교만과 심판의 경고 앞에 겸손해지기 3)-1 패역함을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상급’은 죄에 대한 합당한 형벌로 내게 올 것. [참고문헌] 사전“חֵיק”. G. J. Botterweck, H. Ringgren.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4.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81): 356–58.“דָּרַשׁ”. G. J. Botterweck, Helmer Ringgren, Heinz-Josef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3.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75): 293–307.“פְּעֻלָּה”.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3.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6): 951.주석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Lau, Wolfgang. Schriftgelehrte Prophetie in Jes 56-66.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25;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4.단행본Ackerman, Susan. Under Every Green Tree: Popular Religion in Sixth-Century Judah. Harvard Semitic Monographs 46; Atlanta, GA: Scholars Press, 1992.Blenkinsopp, Joseph. The Beauty of Holiness: Re-Reading Isaiah in the Light of the Psalms. London, New York, Oxford, New Delhi, Sydney: T&T Clark, 2019.Hanson, Paul D. The Dawn of Apocalyptic.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5.Lewis, Theodore J. Cults of the Dead in Ancient Israel and Ugarit. Harvard Semitic Monographs 39; Atlanta, GA: Scholars Pr., 1989.Tiemeyer, Lena-Sofia. Priestly Rites and Prophetic Rage: Post-Exilic Prophetic Critique of the Priesthood. Forshcungen Zum Alten Testament 2. Reihe 19; Tübingen: Mohr Siebeck,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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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8-12 하나님의 질퍽이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의 기도자들은 잿더미 위에서야웨께서 스스로를 ‘아버지’로 입증하시고‘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손수 빚으신 피조물들을완전한 파멸에 내어주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만을 철저히 신뢰한다(사 64:8).[1]스스로 쟁취한 의나 자격이 아닌, 오직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궁극적인 책임과 긍휼에 기대어진노를 거두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사 64:9). 이들의 기도는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다.기도자들은 황폐한 유다 성읍, 성전, 그리고 기물들을 언급하며야웨께서 최대한 빨리 역사에 개입하시기를 강렬하게 촉구한다(사 64:10-11).야웨의 기나긴 침묵과견디기 힘든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파수꾼들은 자신의 임무(기억나게 하는 자)를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다(사 64:10, 12).이 영적 파수꾼들은 하나님의 약속[2]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수밖에 없도록 거룩한 압박을 가한다. 만약 이 부르짖음 앞에서도 하나님이 끝내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신실함과 언약에 먹칠을 하는 셈이 됩니다.하나님의 신실함에 기대어 하나님을 자극하는 것이다. 야웨와 함께하는 우리의 미래가 열릴 것인지의 여부는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오직 계속해서 침묵하실 수도 있고, 당장 그 침묵을 깨고 구원을 베푸실 수도 있는하나님의 주권에만 달려 있다.[3] 오늘날 우리는 삶의 안정성이 해체되고 고난이 찾아올 때조차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사 64:7).[4]내 삶의 ‘성전’이 불타고 무기력의 늪에 빠질 때, 우리는 쉽게 체념하거나 내 힘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애쓴다. 우리는 잊어버린 기도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내 삶이 형태를 잃은 진흙처럼 무너져 내릴 때야말로, 토기장이 되신 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야 할 때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그분의 약속을 들이밀며, 주님이 일하실 수밖에 없도록 끈질기게 부르짖는‘영적 파수꾼’의 자리로 오늘 다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How? 1) 약속의 말씀 붙잡고 ‘야웨로 하여금’ 기억나게 하기. 2) 야웨께서 침묵하는 시간에 먼저 야웨께 부르짖기.3) 완전한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기. [참고문헌] 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Childs, Brevard S. Isaiah.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מַחְמָד”.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2.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5): 570.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Steck, Odil H. Studien Zu Tritojesaja.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03;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1. [1] Berges, Jesaja 55-66 (2022), 536.[2] 이사야 43:25[3] Berges, Jesaja 55-66 (2022), 536.[4] 스미스, 『이사야 2』 (2020), 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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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5b-7 pointing to 기도손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지속되는 하나님의 침묵 아래 놓인인간의 철저한 절망과 영적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5b절에서 기도자들은 깊은 좌절감 속에서자신들의 타락이 마치하나님의 진노와 침묵 때문인 것처럼 탄원한다. 그러나 이내 6절을 통해, 인간이 자랑하는 최고의 의조차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월경하는 여인의 옷)’에 불과하며, 스스로를 통제할 힘조차 잃어버린 채죄악의 거센 바람에 무기력하게 휩쓸려가는‘시든 잎사귀’와 같은 비참한 실존임을 고백한다. 결국 7절에 이르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얼굴을 숨기심으로 삶의 모든 기반이 해체(무그)되는이 비극의 원인이 그 누구도 아닌‘우리의 죄악’ 때문임을 뼈아프게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본문의 고백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우리의 모든 교만과 환상을 산산조각 낸다. 우리는 종종 남들보다 나은 도덕적 삶이나종교적 열심을 나의 ‘의’로 삼아 위안을 얻고, 이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려 한다. 깨어 있는 파수꾼이었던 기도자의 눈에 비친 인간은, 스스로 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죄악이라는거센 돌풍 앞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철저히 타락하고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진정한 파수꾼은 이 답답한 침묵과 영적 해체(무그)의 순간에하나님을 탓하거나 타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정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라며무너진 공동체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껴안는‘예언자적 연대’의 눈물을 흘린다.주의 이름을 부르지도, 주를 붙잡으려 스스로 분발하지도 못하는이 영적 무기력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우리 안의 죄악을 온전히 직면해야 한다. 내 안에는 어떠한 소망도, 구원의 근거도 없음을 철저히 고백하고 엎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의 긍휼과전적인 은혜만을 절박하게 붙들 수 있다. 내 안의 모든 '가짜 의'를 벗어던지는 거룩한 영적 몸부림은 어떤 것이 있을까?How? 1) 내 생각에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보기에 ‘의로운’ 행동하기. 1)-1 하나님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행위를 ‘의롭다’라고 말하지 않음. 2) 정죄의 손가락질이 아닌 ‘중보’의 기도손을 만들기.3) 오늘 하루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야웨, 예수, 성령 부르기. 3)-1 망령되이 일컫지 않기 위해 그에 합당한 삶 살아야 함(출 20:8).[1] [참고문헌] ㅁ“מוּג”. G. J. Botterweck, H. Ringgren.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8.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97): 149–52.ㅁ“קָרָא”. G. J. Botterweck, H. Ringgren, Heinz-Josef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3. David E. Green, Douglas W. Stot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2004): 109–35.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교회 다니면서 십계명도 몰라?』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2).Alexander, J.A. The Later Prophecies of Isaiah. New York & London: Wiley and Putnam, 184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Childs, Brevard S. Isaiah.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1] cf. 차준희, 『교회 다니면서 십계명도 몰라?』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2), 5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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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1-5a 체념이 아닌 집념
2. 내 삶에 적용 오늘의 기도자(파수꾼)는 영적인 신뢰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우리가 살아갈 때에도 도무지 내 힘으로는 뚫고 나갈 수 없는견고한 놋쇠 같은영적인 ‘신뢰의 위기’(Vertrauenskrise)’를 마주할 때가 있다(3절).침묵하시는 하나님, 여전히 득세하는 원수들과 세상의 불의 앞에서 우리는오늘 본문의 기도자처럼 절박하게 부르짖어야 한다.“야웨여, 제발 저 닫힌 하늘의 장막을 찢고내 삶의 현장에 나타나 주옵소서!” 신앙은 체념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집념이다. 거대한 장막 뒤에 숨어 계신 것 같은 하나님이 친히불처럼 임하시어,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벌벌 떠는 것을 넘어,대적들조차 당신의 압도적인 ‘이름’을 알게 해달라는(2절) 거룩하고 야성적인 부르짖음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닫힌 하늘을 향해 당당히항의하듯 부르짖을 수 있는 근거는과거 이집트와 신내산에서 우리가 상상조차 못한 구원을 행하셨던 분이바로 야웨임을 알기 때문이다(3절). 또한, 나의 역사 속에서 친히 구원의 손길을 펴서말도 안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구원을 이루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를 위해이토록 맹렬히 일하시는 분 오직 야웨뿐이다(4절). 영원부터 지금까지, 오직 야웨 하나님만이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백성을 위해친히 행동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주적인 기적을 소망하는 자가오늘을 살아가는 합당한 태도는 무엇인가? 물을 수 있다. 기도는 하늘을 향하지만, 우리의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시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의 길을 걷는 자들을친히 찾아와 부딪히듯 ‘만나(선대하여, פָּגַע)’ 주신다(5a절).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을 허투루 살지 않는다. 닫힌 하늘 아래서 체념하는 대신,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하나님을 향한 집념을 가지고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누리며, 이웃을 향해 작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묵묵히 되새긴다(5a절). 우리가 일상에서 이 순종의 걸음을 내디딜 때, 영광의 하나님은 마침내 그 평범한 일상의 자리로하늘을 찢고 내려와서 우리를 은혜로 만나주실 것이다. 거창한 기적을 기다리는 대신,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당장 심어야 할 ‘일상의 기적’은 무엇일까?How? 1)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면, ‘임마누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기. 2) 일상에서 이웃에게 쩨다카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구체적인 적용점 생각하기 2)-1 그걸 오늘, 평생의 삶에서 수행하기.3) 5분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기. [참고문헌] ㅁ“עוֹלָ֥ם”.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0. (Michigan: Wm. B. Eerdmans, 1999): 530–45.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Gesenius. Gesenius’ Hebrew Grammar as Edited and Enlarged by the Late E. Kautzsch. Edited and Translated by A.E. CowleyOxford: Clarendon Press, 1910.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Westermann, Claus. Isaiah 40-66. Translated by David M.G. Stalker. The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PA: The Westminster Press,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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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15-19 긁?
2. 내 삶에 적용 우리는 때로 영적인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과연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는지 의심하게 되는칠흑과도 같은 밤을 지날 때가 있다. 오늘 본문은 하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처소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당신의 열심과 큰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당신의 그 애끓는 긍휼(격동하는 창자)은 어찌하여 내게 멈추었나이까?”라고묻는 기도자(파수꾼)의 질문으로 시작한다(15절).이는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터져 나오는 정직한 탄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탄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도자는 자신의 든든한 뒷배와 같던 배경인아브라함과 이스라엘(야곱)마저도“우리를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과감히 끊어낸다(16절). 이는 내가 의지하던 모든 종교적 자부심과 과거의 이력을 부정하고, 오직 자격 없는 나를 건져내실 유일한 ‘고엘(구속자)’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우리 아버지’라 부르며그분의 본성에 철저히 매달리는 혁신적인 신앙의 결단이다. 진정한 신앙의 씨름은내 영혼이 비참할 정도로 완고해진 순간에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어찌하여 우리를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라는기도자의 절규는(17절),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의 완악함조차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그 굳어버린 마음 상태 그대로를 들고 하나님 앞에 가로막고 서서“제발 나를 고쳐달라”고 부르짖는‘역설적 매달림’이다. 우리는 내 영적 상태가 온전할 때만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기도가 나오지 않을 만큼 마음이 굳어버렸을 때야말로, “당신의 종들 곧 당신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라며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해야 할 가장 절박한 순간이다. 우리의 기도는 내가 처한 소외감의 깊이를 오히려하나님의 긍휼을 이끌어내는 통로로 삼는 벼랑 끝 전술로 나아가야 한다. 약속의 땅을 누린 영광의 시간은 찰나 같고원수들에게 성소가 유린당한 고통의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마치 한 번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한영적 고아나 이방인처럼 비참해진다(18-19절). 하지만 이 극심한 소외감은 역설적으로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호소의 무기가 된다. 가장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우리는 “우리가 당신의 통치를 한 번도 받지 못한이방인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라며하나님의 체면과 이름을 자극해야 한다. 우리의 회복이 곧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영광임을 기억하며, 닫힌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어(사 64:3)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해야 한다. 영적 고립이라는 벼랑 끝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1) 나의 아브라함, 이스라엘과 절연하기.1)-1 나의 자랑이던 학연, 지연, 혈연, 지위라는 껍데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아버지 야웨’를 놓자. 2) 하나님 긁기 2)-1 하나님이 하신 말과 그의 본성을 자극하여 거룩함의 항의를 하기.3)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간절히 매달리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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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11-14 독백에서 간구로
2. 내 삶에 적용 우리는 때로 삶의 극심한 고난 속에서, 심지어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마치 대적처럼 느껴지는절망적인 순간을 마주한다(사 63:10). 그러나 오늘 본문의 파수꾼은그 절망의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어디 계시냐”며 과거에 구원을 베푸셨던 하나님을 향해필사적으로 손을 뻗는다(11-12절). 내 삶에 베푸셨던 ‘출애굽’, ‘출-바빌로니아’, ‘출-디아스포라’의 은혜를 기억해 내는 것은단순한 과거의 회상이나 향수가 아니다. 과거에 그렇게 신실하게 역사하셨던그 은혜를 척도로 삼아, 오늘 내가 마주한 고난의 한가운데로하나님의 능력을 강력하게 소환하는 '현재화'의 작업이다. 나아가 이는 내 개인의 위기 극복을 넘어, 상실했던 ‘선한 목자’들을 다시 되찾고무너진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거룩한 기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거의 은혜를 붙들고 부르짖을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야웨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단순한 도구나 힘이 아니라, 우리를 인격적으로 그리고 세밀하게 이끄시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세상의 거대한 권력, 이집트 병마는칠흑 같은 바다의 깊음에 빠져 수장되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는그 위기의 한가운데를 거침없는 광야의 말처럼결코 넘어지거나 비틀거리지 않고 통과하게 된다(13절). 나아가 종일 헤매던 가축을 평안한 골짜기로 이끄는 목자처럼, 상하고 지친 우리의 영혼을 가장 완전한 안식(נוח), 곧 약속이 성취되는 정착의 자리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인도해 내신다(14절). 우리가 이 놀라운 구원과 안식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우리의 어떠함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당신 스스로 영광스러운 이름을 만드시는 것(12, 14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회복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3인칭의 독백[1]에 머물지 않고, 확신에 찬 2인칭의 직접적인 간구[2]로 나아가야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며’ ‘나를 인도하신 분이기에’‘그 사건을 통해 영광 받으시옵소서.’ How? 1) 과거의 은혜를 그저 회상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내 삶의 주인이심을 기억하기 2) 나를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3) 오늘 하루 “삼위일체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며 나를 인도하신 분이기에그 사건을 통해 영광 받으시옵소서.”라고 수시로 고백하면서 살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Duhm, D. Bernh. Das Buch Jesaja. Hand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Prophetischen Bücher 1; 2 ed.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2.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1] 그가 어디 계시냐[2]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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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7-10 지금 야웨 무시함?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과거의 은혜를 단순한 추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현재의 고난을 돌파할 기도의 무기로 삼는파수꾼의 처절한 외침이다(7절). 파수꾼은 야웨께서 베푸신 풍성한 헤세드와 라함을 하나하나 기억해 낸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그렇게 신실하게 행동하셨던 하나님의 의지를오늘 우리의 고난 한가운데로 다시 소환하는(현재화) 간절한 호소다. 헤세드와 라함의 하나님의 모습은자신의 자녀를 향해 “내 백성, 내 자녀는 결코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라고굳건한 믿음을 보여주시며, 기대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다(8절).또한, 우리의 순종보다, 먼저 구원하시고 품어주시는 아버지이시다(9절). 그분은 저 멀리서 지시만 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환난에 친히 '동참'하시고, 오물을 덮어쓰면서까지 우리를 들어 안으시는 분이시다(9절; cf. 사 63:3-6). 그러나 이토록 처절하고 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역했다. 하나님의 애틋한 기대를 철저히 배신한 것이다. 이 반역은 단순한 율법의 파괴를 넘어, 거룩하신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감정적이고 정신적인 깊은 고통)' 만들었다(10절). 언약의 신실함이 깨질 때, 가장 안전했던 관계는 가장 치명적인 위기를 맞는다. 결국 우리를 안아주시던 구원자, 아버지 야웨께서소돔과 고모라를 엎으시듯(הָפַךְ) 돌이켜 우리의 대적이 되시는, 그야말로 '완전히 뒤집힌(upside down)' 비극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바빌로니아 포로기라는 역사적 비극이 생겼다.[1] 이 두려운 경고 앞에 우리는 옷을 찢으며다시 그분의 헤세드에 기대어 회개해야만 한다.우리가 엎드려 돌이킬 때, 우리가 근심하게 했던‘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소망 없음을 소망 있음m으로 바꾸시며다시 한번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cf. 사 44:1-5). How? 1) 내 삶에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만든, 하나님의 거룩성을 모독한반역의 행동이 없는지 돌아보기. 있다면 즉시 회개하기. 2) 내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헤세드와 구원을 현재의 고난을 돌파하는 근거로 삼기. 2)-1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써놓기. 안 써놓으면 까먹음. 3) 하나님은 내 고난에 함께 동참하시는 ‘측은지심’의 하나님임을 기억하기. 3)-1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지금 바로 내 옆에 계심. [참고문헌] “עָצַב”.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1. (Michigan: Wm. B. Eerdmans, 2001): 278–80.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raulik, Georg "«Du Bist Doch Unser Vater! ‹Unser Erlöser Von Jeher› Ist Dein Name»: Wie Israel Als Volk Um Die Vergebung Seiner Schuld Bittet." Internationale Katholische Zeitschrift 《Communio》 47, no. 1 (2018): 4–18.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1] cf.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 6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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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1-6 인지부조화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세상의 불의에 무관심하게 방관하지 않으시고거룩한 분노로 역사의 전면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준다. 중무장을 하신 야웨는(사 59:16-21). 야곱의 자손 중 ‘반역’에서 돌이키는 자에게만구속자이며 구원자가 되신다. 따라서 에돔. 즉, 야웨의 신앙 안에 없는 자는 물론이거니와예언자의 고발에도 불구하고시온의 백성 중 반역에서 돌이키지 않은 자 또한,야웨의 심판적 ‘보응’의 대상이다. 다시 말 해, 단순히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 뿐만 아니라,내부에 있는 적까지 물리치신다. 이 심판은 악인에게는 원수 갚는 날이지만,반역에서 떠난 거룩한 백성에게는 ‘구속의 해’가 임하는 날이다(1, 6절). 특히, 오늘 본문은 승리하신 야웨의 모습을 이질적인 대조로 묘사한다.큰 능력을 지녔지만, 구부정하게 걷는 걸음걸이(1절).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즙으로 다 더럽혀진 옷(3절).이는 고대 근동의 어떤 신도 하지 않았던‘하층민의 노동’을 하나님이 홀로 감당하셨음을 의미한다(2-3절).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하나님이 직접 발로 짓밟고 피를 묻히며 힘을 소모하신‘처절한 헌신’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우리가 바라는 구원자는 흠 없고 깔끔한 왕의 모습이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구원자는 우리를 대신해 오물을 뒤집어쓰고허리가 굽은 채 돌아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1] 우리는 이 낯설고 이질적인,‘전사’와 포도즙틀 밟는 자가 오버랩되는 이미지 안에서인간의 무기력을 돌파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 앞에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How? 1) 내 삶에서, 주변에서 하나님의 쩨다카가 무너진 곳은 어디인지 살펴보기. 1)-1 찾았다면, 하나님의 바른 질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기. 2) 오늘 나타난 낯선 하나님의 모습이 역사 속 예수님을 통해 현실이 되었음을 기억하기.2)-1 내가 만든 하나님의 멋진 모습에 갇히지 않기.2)-2 나를 위해 오물을 뒤집어쓰신 주님 바라보기.3) 내 안의 ‘에돔’과 같은 ‘반역’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회개하며 돌아서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Mathews, Claire R. Defending Zion: Edom's Desolation and Jacob's Restoration (Isaiah 34-35) in Context.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36;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5.Oswalt, John N.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8.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1] cf. Berges, Jesaja 55-66 (2022),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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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8-12 프로-보챔러에서 구원의 방판원으로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핵심적인 시상은더이상 땅의 소산을 페르시아나 압제자에게 빼앗기지 않고그 소산을 얻기 위해 노력한 자들이 “성전 뜰”에서 기쁘게 누리게 되는 것이다(8-9절). 이 기쁨의 사건이 일어날 때성벽 위의 파수꾼들은 성문 밖으로 나가문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귀환자들을 위해 치울 수 있게 된다(10절).즉, 파수꾼들의 임무는 성벽 위에서 하나님을 보채는 것(6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세상 속으로 나아가억압과 불의의 돌들을 직접 치우는 삶의 실천(10절)을 통해 완성된다. 주목할 점은, 파수꾼들의 치열한 삶의 실천이침묵 속 진행되는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불의한 돌들을 치우며 그들은 딸 시온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선포한다.“보라!, 보라! 보라!”. 이 세번 연속으로 터져나오는 외침은,다가오는 구원 사건을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만든다.[1]길 위의 돌을 치우는 파수꾼의 땀방울은 막연한 기대로 흘리는 것이 아니다. “보라! 하나님의 구원이, 그 상급과 보응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다!”라는구원의 임박성과 확실성에 완전히 사로잡혔기에 가능한 믿음의 돌파다. 기도의 자리(성벽)에서 하나님을 보채던 자들은, 이제 삶의 자리(성문 밖)에서 불의를 걷어내고, 절망한 시온의 눈앞에 하나님의 구원을 생생하게 들이밀며 소리치는선포자로 완성된다.나아가 이들의 헌신은만민을 향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리는거대한 깃발이 된다. 이 치열하게 닦인 길을 따라 돌아오는 귀환자들은마침내 ‘거룩함의 백성’으로 불리게 된다.그 이유는 그들이 야웨에 의해 구속받은 자로서야웨의 구원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12절). 이들이 귀환하면 시온도 “찾은 바 된 자”이며 “더 이상 버림받지 않는 성읍”이라는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12절).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어떻게 삶을 걸어가야 하는가?How? 1) 내가 뚫고 나가야 할 ‘성문 앞’은 어디인지 기도하기. 2) 내 삶의 억압과 불의의 돌들을 치우는 작은 실천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하기.2)-1 생각했다면 실천하기. like 눈에 보이는 쓰레기 줍기. 배달이 늦더라도 욕 안하기2)-2 감사합니다 자주 말하기.3) 진지하게 하나님의 구원과 미쉬파트와 쩨다카를 삶에 녹여 낼 수 있는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3)-1 이 방법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보여주는 높이 달린 깃발이 될 것(10절). [참고문헌] 주석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erges, Ulrich, and Willem Beuken. Das Buch Jesaja: Eine Einführung. Utb 4647;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6.Blenkinsopp, Joseph. Isaiah 56-66. The Anchor Bible Vol. 19B, New York, NY: Doubleday, 2003.Duhm, D. Bernh. Das Buch Jesaja. Hand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Prophetischen Bücher 1; 2 ed.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2.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Lau, Wolfgang. Schriftgelehrte Prophetie in Jes 56-66.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25;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4.Spans, Adrea. Die Stadtfrau Zion Im Zentrum Der Welt: Exegese Und Theologie Von Jes 60-62. Bonner Biblische Beiträge 175; Edited by Ulrich Berges, Martin Ebner. Göttingen: V&R unipress, 2015.Zapff, Burkard M. Jesaja 56-66. Die Neue Echter Bibel Würzburg: Echter Verlag, 2006.단행본주옹, 폴, and 타까미추 무라오까. 『주옹-무라오까 성서 히브리어 문법』 김정우 역. (서울: 도서출판 기혼, 2022).Gesenius. Gesenius’ Hebrew Grammar as Edited and Enlarged by the Late E. Kautzsch. Edited and Translated by A.E. CowleyOxford: Clarendon Press, 1910.Steck, Odil H. Studien Zu Tritojesaja.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03;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1.[1] cf. Berges, Jesaja 55-66 (2022),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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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6-7 중보자, 선교사 그리고 프로보챔러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1-5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이름과 지위를 얻은 시온의 백성들이, 이제 어떠한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구원받은 우리는 단순히 객석에 앉아하나님의 일하심을 구경하는 관중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벽 위의 파수꾼'으로 임명(פקד)하셨다(6절). 성벽은 내면의 신앙과 외부의 세상이 교차하는 치열한 경계선이다.가정, 직장, 학교, 그리고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가바로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임무 구역이다. 하나님은 이 성벽 위에 우리를 세우시고그곳에 하나님의 쩨다카와 평화가 온전히 실현되도록 책임지는 파수꾼의 사명을 맡기셨다.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우리의 임무는 ‘기억하게 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이는 2가지 방향성을 띠는데1.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려 절망하는 나와 이웃을 향해, 하나님이 주셨던구원 경험과 옛 약속들을 끊임없이 선포하며 ‘상기시키는 것’2. 하나님을 향해 쉬지 않고 부르짖는‘중보자’가 되는 것(6-7절). 즉, 중보자이자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야웨의 종이라는 특정 예언자에게 주어진 미쉬파트를 세상에 세우는 사명(사 42:4)이오늘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주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할 특권이 있다. 계속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을 귀찮게 해야 하며, 쉬지 않고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해 선포하며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언약을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직과 평화를삶의 예배에서 실천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파수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How? 1) 오늘 다량의 업무량, 정서적 불안으로 인해 낙심이 될 때 그저 침묵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고 선포하기. 2) 우리는 파수꾼으로 부름 받았으니, 하나님이 쉬지 못하시게 계속 재촉할 권리가 있음. 그러니 당당하게 하나님을 귀찮게 하자.3) 내 삶의 성벽에서 미쉬파트와 쩨다카를 수호하기. 오늘 내가 머무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거짓과 타협하지 않기. [참고문헌] 사전“פקד”.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3.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6): 955–8.주석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Hossfeld, F.-L., and E. Zenger. Psalms 3: A Commentary on Psalms 101-150. Translated by Linda M. Maloney. Hermeneia -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Edited by Klaus Baltzer.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11.Lau, Wolfgang. Schriftgelehrte Prophetie in Jes 56-66.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225; Edited by Otto Kaiser.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4.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아티클Klein, Johannes. "Für Mehr Zuverlässigkeit Gottes: Die Wächter an Den Mauern Jerusalems (Jes 62,6-9)." In Reading the Political in Jewish and Christian Texts, edited by Julia A. Snyder, Korinna Zamfir. Biblical Tools and Studies, 29–41. Leuven: Peeter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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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1-5 하나님의 트로피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포로지의 아픔과 침묵 속에 갇힌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선언과예언자의 주석으로 하나님이 시온을 어떻게 보시는지 드러나 있다. 하나님은 시온의 현실 속에서"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겠다"(1절)고 선언하신다. 이는 포로지에서 경험했던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뼈저린 절망을 완전히 뒤집으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열심이다. 하나님은 시온의 삶에 쩨다카(공의)와 구원이 빛처럼,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 구원은 그저 내면의 위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방과 뭇 왕이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는 가시적인 영광이다(2절).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에 대해 예언자는 새로운 이름 수여로 주석한다. 이전에는 버림받은 자, 그로 인해 황무지였던 시온이새로운 이름, 나의 기쁨이 있는 자, 결혼한 자로 완전히 뒤바뀐다(4절). 이 완전히 뒤바뀐 그 상황과 정체성은 시온에게‘만’ 기쁨이 되지 않는다.이는 오히려 야웨께 더 큰 기쁨이 된다(5절). 그렇기에 야웨의 손에 들린 왕관으로써의 ‘시온’은야웨의 자랑으로 온 백성에게 자랑하며 보여주는트로피가 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시킬 때 많은 위로가 현실이 된다. 우리가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쓸모 없는 자”, ‘부족한 자’로 불렸다면,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자, 나의 기쁨이 되는 자로 불러주신다. 이를 위한 조건은 없다. 그저 우리 할 일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기뻐하며,내 안에 임한 야웨의 쩨다카와 구원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뿐이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오히려 더 움직이며 잠잠하지 아니하시고쉬지 않으신다(1절). 사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왕관으로하나님의 자랑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며 신뢰하고그의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 How? 1) 내 영혼을 향해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다라고 오늘 3번 이상 선포하기. 1)-1 하나님이 기뻐하기에 주변의 비난에 귀 기울이지 말자. 2)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 신뢰하기. 2)-1 답답하다면 62:1을 읽고 써보면서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으시는 야웨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자.3) 기쁨으로 내 삶의 황무지 개간하기. [참고문헌] 주석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lenkinsopp, Joseph. Isaiah 56-66. The Anchor Bible Vol. 19B, New York, NY: Doubleday, 2003.Duhm, D. Bernh. Das Buch Jesaja. Hand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Prophetischen Bücher 1; 2 ed.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2.Goldingay, J. Isaiah 56-66: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단행본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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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1.8-11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무너지지 않는영원한 언약(베리트 올람)으로새로워진 ‘의의 나무들’이 일상에서 어떠한 은혜를 누리고그 은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다. 먼저 하나님은 영원한 기쁨(7절)의 원인과영원한 언약을 맺으시는 이유를 강조하며선언하신다. 야웨는 미쉬파트를 늘 사랑하시는 분이시고이웃에 대한 악행을 늘 싫어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8a절).따라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은내 삶의 자리에서 미쉬파트와 쩨다카를 실현시키는 ‘의의 나무’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성실하시기에(에메트)당신의 완전한 신뢰를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는 백성에게성실하게 갚으심으로 보여 주신다(8b절). 이를 통해 열방은 머리로 알고 있던야웨께서 참 하나님이라는 그들의 ‘지식’이 눈으로 ‘봄’으로 증명되며축복이 현실이 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9절). 이러한 영광을 입은 시온/의의 나무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그 질문에 오늘 본문은 바로 답을 해준다.목이 굳어 자랑질하고 열방을 하대하며 자신을 뽐내는 것이 아닌,스스로 야웨로 말미암아 기뻐하라고 권해야 한다(10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내 상황과 조건이 좋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수동적인 기쁨이 아니다. 현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변하게 될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내 영혼(네페쉬)을 향해 기뻐하라고 선포하는 치열하고의지적인 믿음의 결단이라는 사실이다.[1] 우리가 힘듦 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야웨께서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임명하셨기 때문이다(10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상황은 그대로지만, 우리의 지위, 자리는 바뀌었다. 상황은 미쉬파트와 쩨다카가 부재하지만,우리의 자리는 미쉬파트와 쩨다카로 옮겨졌다.옷 입혀졌다(10절). 따라서 우리는 그 미쉬파트와 쩨다카와 구원이 부재한 세상 속에서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야웨의 축복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내야 하는영광스러운 제사장이다. 이때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축복의 증거는‘세상적인 성공이나 부유함’이 아니다. 환난 중에도 빼앗기지 않는 ‘풍성한 기쁨’(10절)이며, 내 이웃을 기꺼이 섬기고 돕는 ‘미쉬파트와 쩨다카’의 삶이다. 이것이 우리가 결단하고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이며, 삶의 모습이며, 이상향이다. 당장의 내 밭의 모습이 가뭄에 든 것 같이 마르고,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좌절할 필요 없다. 땅이 씨앗을 품어 새싹을 틔워내는 일은 주권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이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공의와 찬송, 미쉬파트와 쩨다카의 결실이내 삶의 자리 Sitz im Leben에서 솟아날 것이다(11절). 그러한 길을 가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How? 1) 구제를 위한 십일조(천원이라도) 해보기. 1)-1 교회에 헌금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약자를 위해 천원이라도 써보기. 2) 삶이 찬양조차 안 나올 정도로 힘들더라도, 의지적으로 하나님 찬양하기. 2)-1 최소 2곡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하나님 찬양하기3) 조급함 없이 차분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기. [참고문헌] 주석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Höffken, Peter. Das Buch Jesaja Kapitel 40-66. Neuer Stuttgarter Kommentar Altes Testament 18/2; Stuttgart: Verlag Katholisches Bibelwerk, 1998.Hossfeld, F.-L., and E. Zenger. Die Psalmen 1, Psalm 1-50. Die Neue Echter Bibel 29; Würzburg: Echter Verlag, 1993.———. Psalms 3: A Commentary on Psalms 101-150. Translated by Linda M. Maloney. Hermeneia -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Edited by Klaus Baltzer.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11.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단행본주옹, 폴, and 타까미추 무라오까. 『주옹-무라오까 성서 히브리어 문법』 김정우 역. (서울: 도서출판 기혼, 2022).차준희. 『시인의 영성3: 시편 101-150편 해설과 묵상』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3).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1] cf. Koole, IsaiahⅢ/3 (2001),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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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1.4-7 야웨의 제사장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61:1-3에서 새롭게 정체성을 얻은 ‘의의 나무’들이그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그리고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무너지고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황폐한 시온을 재건해야 한다(4절). 그리고 이방인들은 ‘의의 나무’들이하나님과 세상을 잇는 제사장 직분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도록(6절).그들의 일상을 도우며 양을 치고농사를 지으며, 포도원지기가 되어 준다(5절). 과거 수치를 배로 받았던 이스라엘[1] 중오직 끝까지 야웨를 믿기로 선택한그리고야웨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의의 나무’들에게만야웨의 갑절의 보상이 주어진다. 잃어버렸던 축복의 표지인 약속된 땅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된다(7절). 본문에서 ‘의의 나무’의 영적 지위와 역할이 완전히 변화한다. 이전에는 그저 위로를 기다리는 소극적 수혜자였다면,이제 희년을 경험한 그들은 폐허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재건의 주체자가 된다(4절).이 재건은 단순히 건물을 복구하는 것을 넘어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명의 사역이다. 이를 통해 본문은 우리에게 말한다.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위로 받은 전적이 있다면그냥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는 것이 아닌,이제 다른 무너진 곳을 찾아가 싸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야웨의 제사장’의 역할이며, 하나님과 이방인을 중재하는 의의 나무가 해야 할 일이다. 압제에 시달리는 ‘의의 나무’가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 것같이우리도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경험했다면, 그 통로를 자처해야 한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다(7절).너에게 구원과 축복을 주며(땅), 영원한 기쁨이 있게 하겠다. 의의 나무, 구원을 경험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과 실천은 무엇인가? How? 1) 내 삶의 ‘무너진 곳’을 직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2) 직면한 ‘무너진 곳’을 회개함으로 다시 일으키기2)-1 내 삶, 가정, 일터에 폐허가 있다면(깨어진 관계, 잘못된 습관 등) 회개하고 복구하기.3) 나 혼자만의 신앙이 아닌 제사장으로 이웃을 중보하기. 3)-1 내가 하나님과 관계가 좋다고 만족하며 끝내는 것이 아닌, 내 이웃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기. [참고문헌] 주석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rueggemann, W. Isaiah 40-66.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8.Jacob, B. Das Buch Exodus. Stuttgart: Calwer Verlag, 1997.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Zapff, Burkard M. Jesaja 56-66. Die Neue Echter Bibel Würzburg: Echter Verlag, 2006.단행본Tiemeyer, Lena-Sofia. Priestly Rites and Prophetic Rage: Post-Exilic Prophetic Critique of the Priesthood. Forshcungen Zum Alten Testament 2. Reihe 19; Tübingen: Mohr Siebeck, 2006. [1] 이사야 52:12 (“온전히 수치를 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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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1.1-3 너는 야웨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심은 나무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짧지만, 많은 것이 함축되고이사야서 전체와 얼기설기 엮여 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종’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 받았는지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야웨 하나님이 당시의 상황에서무엇을 해결하기 위하셨는지 너무나 잘 엿보인다. 하나님은 단순히 고통받는 자신의 백성들에게‘심심한 위로의 말’만을 건네고 끝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2절). 하나님은 사회적 정의가 무너진 것으로 인해빚에 짓눌려 노예가 된 자들(가난한 자, 포로된 자)에게그들이 야웨의 소유이며[1] 야웨께서 그들의 중재자가 되신다라는 복음을 전해 주시며,[2]고통으로 인해 이성이 철저히 무너진 자들(마음이 상한 자)을 싸매주며페르시아가 예후드(남유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법권을 회수하심으로[3]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현실에 개입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불의한 상황 자체를 가장 근원에서부터바꾸시길 원하신다(1절).[4]그래서 ‘은혜의 해’와 ‘보응의 날’을 시온에 선포하신다(2절). 하나님의 개입은 약자의 삶에 ‘급진적인’ 전환을 가져다 준다(3절).하나님은 슬퍼하는 자의 머리에 있는 재(אֵפֶר)를 치우고 화관(פְּאֵר)을 씌워 주신다.알파벳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죽음과 슬픔의 상징이기쁨과 영광의 상징으로 바뀐다. 또한, 야웨께서는 다 죽고 밑동만 남은 그루터기와 같던 백성들에게하나님이 친히 심으신 의의 나무(상수리 나무)라는 새로운 이름을부여하심으로그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롭게 하신다. 이러한 극적인 전환의 목표는 바로세상에 하나님의 쩨다카와 미쉬파트가 충분하여시온이 세상의 빛으로 일하게 하기 위함이다(사 60:20). 이 모든 하나님의 전환은야웨 하나님의 영(루아흐)을 받은 자로 인해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How? 1) 이미 성령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실제적인 위로를어떻게 이웃에게 전할 수 있을지 기도를 통해 찾아내기 2) 상황이 너무 힘들어 뒤집어쓴 재를 하나님이 화관으로 바꿔 주시는 것을 기억하기 또한, 우리도 이웃의 재를 화관으로 바꿔줄 수 있는 삶을 살기.3) 오늘만큼은 근심의 옷을 벗어 던지고 찬송의 옷을 입고 살기 3)-1 욕보다는 찬송을, 한숨보다는 찬양 부르기. [참고문헌] 사전“שָׁבָה”. G. J. Botterweck, H. Ringgren, Heinz-Josef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4. David E. Green, Douglas W. Stot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2004): 286–94.“עָנָו”.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1. (Michigan: Wm. B. Eerdmans, 2001): 230–52.“פְּקַח־קוֹחַ”.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3.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6): 960.주석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단행본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Wolff, H. W. Anthropologie Des Alten Testaments: Mit Zwei Anhängen Neu Herausgegeben Von Brend Janowski. 2nd ed. München: Gütersloher Verlagshaus, 2023.아티클Berges, Ulrich. "Die Armen Im Buch Jesaja: Ein Beitrag Zur Literaturgeschichte Des At." Bib 80, no. 2 (1999): 153–77.[1] 이사야 49:13; 시편 72:1-2.[2] 이사야 53:4-5; 62:1-5; 시편 41:1; 잠언 17:5. cf. , (2001), 230-252, 특히 250.[3] Berges, Jesaja 55-66 (2022), 394.[4] Ibid.,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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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17-22 인생의 두 기둥, 그리고 빛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포로민들의 본국 복귀 이후성전 재건에 필요한 자재를 충족시켜주는현재의 결핍된 상황의 역전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사실 성전 재건에 금, 은, 철보다 더 중요한 자재들이 있다.바로 샬롬과 쩨다카(17절).이 최고급 자재가 있을 때‘만’ 비로소 공동체가 건설될 수 있다.[1] 또한, 하나님에 의해 구원 사건[2]이 실행되었지만,그 안에 샬롬과 쩨다카가 굳건히 설 때에만 영원한 구원 ‘상태’로 이어진다(18절).[3]더 이상 황폐와 파멸이 아니라, 구원과 찬송이 도성과 그 주변 땅을 지배한다(17-18절). 마지막 절은 수신자들(청중들) 편에 자리 잡은 회의주의에 맞서서아브라함이 크고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그에게 주신 약속(창 18:18)이바로 시온의 의인들에게서 성취될 것이다라고 응답한다.[4] 야웨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이 시선의 전환은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된다. 우리는 종종 내 삶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금과 은’ 같은실제적인 삶에서 유용 가능한 자원(재정, 인맥, 환경 등)이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긴다.또한, 나를 비춰줄 세상의 ‘해와 달’을 찾기 위해 헤매며,그것들이 내 삶의 ‘전부’를 밝혀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물론 물질적, 실제적인 요소들은 삶에 분명히 필요하긴 하다.이는 부정할 수 없다.하지만 그것들은 언젠가 지고, 물러가는 ‘유한한 빛’일 뿐이다. 내 삶의 전부를 비추는 것처럼 보여도,실상은 내 삶의 극히 일부만을 비추는 ‘제한적인 빛’이며(19-20절),나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절대적 요소가 결코 될 수 없다. 세상의 빛이 가진 한계를 마주하고, 현실이 너무 빡셀 때, 우리는 스스로를 현실에 비해 ‘작은 자’, ‘약한 자’, 능력 없는 자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깊은 ‘회의주의’나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한 우리를 절대적으로 채워주는 ‘완전한 빛’은 바로 야웨의 ‘빛’이다.그의 샬롬과 쩨다카만이 우리의 무너진 삶을 기초부터 다시 세울 수 있다.또한, 지친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 손의 작품”(21절)이라고선언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각자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샬롬과 쩨다카라는거대한 두 기둥을 묵묵히 세워갈 때,가장 작은 자를 통해 강국을 이루시는‘역전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22절). 우리의 눈에 그 과정이 영겁과 같이 느리고 멈춘 것 같을지라도,하나님의 완벽한 ‘때’가 이르면F-1의 레이싱카보다 더 폭발적인 속도로그의 ‘구원’을 “속히” 이뤄 내실 것이다(22절) 그 구원의 때를 맞이하기 위해, 그리고 그 시간을 ‘잘’ 기다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1) 힘들 때마다 하나님이 나의 보증인임을 기억하고 ‘찬송’으로 높이기. 2) 샬롬과 쩨다카로 오늘 하루 살아가기. 2)-1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회개하기.3)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힘들지만, 파이팅!).[참고문헌] 사전“אֶלֶף”.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1.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4): 59–60.주석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lenkinsopp, Joseph. Isaiah 56-66. The Anchor Bible Vol. 19B, New York, NY: Doubleday, 2003.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Duhm, D. Bernh. Das Buch Jesaja. Hand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Prophetischen Bücher 1; 2 ed.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2.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Motyer, J. Alec.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 Commentary. Downers Grove, IL: IVP, 1993.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단행본오성호. 『56-66장을 중심으로 본 이사야서의 종말론 신학』 (서울: 솔로몬, 2012).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1] Berges, Jesaja 55-66 (2022), 365.[2] 이사야 49:6, 8; 51:6, 8; 52:7, 10.[3] 이사야 56:1; 59:11, 17; 62:1[4] Berges, Jesaja 55-66 (2022), 3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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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15-16 Ad Deum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시온의 깊은 상처와 결핍을 완전히 엎으시는(up-side down)야웨 하나님의 ‘통쾌한 역전극’의 절정이다.[1] 오늘 본문은 14절의 미래에 있을 구원에 대한 역접으로 시작한다. “반면에” תַּחַת이것을 통해 미래에 올 구원과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극적으로 대조 시킨다.현재의 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나라로부터, 또 남유다 백성으로부터버림과, 거절을 당했고, 황폐한 땅이었기에 그 누구도 시온을 찾지 않아고립된 상태다(15절).하지만 이렇게 비참하고 황폐하고 소망 없는 현재를 향해하나님의 ‘완전한 역전’[2] 선언이 울려 퍼진다. “내가 시온을 온 세상의 영원한 자랑과 기쁨으로 만들겠다(שׂים)” 그리고 시온에 대한 구원을 2마디로 요약한다. 1) 시온을 괴롭히고 압제하고 황폐하게 만든 이방 나라와 왕들이이제는 시온을 보살피고 양육하고 돌보게 될 것이며. 2) 이를 통해 시온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야웨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다. ‘나’의 고엘이다. 야곱의 전능자시다라는 사실을. 시온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이다.과거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준 하나님이,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지에서 구원해준 하나님이,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자에게 보응하시는 ‘친족, 고엘’이신 분이바로 지금나(시온)를 역전시켜 주시는 그 ‘야웨’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역전은 시온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고엘, 헤세드)에서 비롯된 것[3]이며이 사건을 통해서 야웨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며참 구원자요, 참 공급자임을 온 세상에 나타내기 위함이다.[4]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구원 사건을 이끌어오신 하나님이 바로‘야웨’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함이다(16절). 모든 조각을 맞추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한 나의 삶과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 How? 1) 자괴감, 좌절감에 머무르지 않기 1)-1 오늘 하나님은 상처받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랑’으로 부르신다. 2) 나의 괴로운 상황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을 기대하자. 2)-1 하나님은 신실하시며(헤세드), 나의 친족(고엘)이심을 기억하고 붙잡자. 3) 구원 사건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목적’을 기억하기 (Ad Deum) 3)-1 모든 구원사건의 진짜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기 위함이다. [참고문헌] 주석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rueggemann, W. Isaiah 40-66.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8.Fohrer, G. Jesaja 40-66. Zürcher Bibelkommentare Alten Testament 19.3; 2 ed. Zürich: TVZ, 1986.Koole, Jan L. IsaiahⅢ/3. Translated by Antony P. Runia.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Leuven: Peeters, 2001.McConville, J. Gordon. Isaiah. Baker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Prophetic Book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atts, John D.W.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25;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5.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Zapff, Burkard M. Jesaja 56-66. Die Neue Echter Bibel Würzburg: Echter Verlag, 2006.단행본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 [1] 남은 것은 결말 (17-22절)뿐이다.[2] Berges, Jesaja 55-66 (2022), 361.[3] cf. 이사야 41:8-14; 54:6-10; 55:1-5[4] McConville, Isaiah (2023),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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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10-14 원수에서 동료로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시온의 명예 회복(60장)에 대한 것 중예루살렘 도시의 재건과 성전의 재건에 대한 예언이다. 오늘 단락에서 이전에 맛볼 수 없었던 사이다와 같은 ‘역전’들이단락의 시작부터 끝까지 줄지어 터져 나온다. 과거에 내 삶(시온)의 성벽을 부쉈던 이방인들과 그 왕들이[1]자신들과 아무 상관 없는 내 성벽을 위해 이제는 수고를 자처한다(10a절). 이 엄청난 역전의 근거는 시온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근거는 하나님의 “은혜” (רָצוֹן)에서 비롯된 긍휼함(רחם) 덕분이다(10b절). 이전에는 파괴되고 공격받던 경험에 따라모두를 의심하며 적대하여 문을 걸어 잠갔다.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시온을 찾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오는 자들이기 때문에성문이 닫힐 이유 없이 항상 열려 있게 된다(11절). 시온에게 포로 생활이라는 큰 고통을 안겨준 원수들이시온의 발 앞에 엎드림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역전이 또 나타난다(14절). 그리고 시온은 폐허라는 정체성에서하나님의 이름 수여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14절; “구원의 영역”) 이 엄청난 역전극의 단락을 관통하는 원리는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다.바로 시온의 하나님은 응보의 하나님인 사실이다. 하나님의 나라 된 시온을 섬기지 않는 백성은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기에 진멸 당한다(12절).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 공경 받게 된다.[2]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기에내가 하나님을 공경하면, 하나님이 나를 공경해주고내가 하나님을 높인다면, 하나님이 나를 높여 주실 것이다. 이때 나에게 있어서 고통의 근원이었던, 원인이었던 자들이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나의 하나님을 높이는 동료가 된다. How? 1) 하나님이 날 올려주지 않으셨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높이는 삶 살기. 1)-1 찬양으로, 기도로, 내 삶의 태도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공경하자 2) 내 등에 칼을 꽂았던 사람을 기억하기.2)-1 그 칼을 꽂은 사람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2)-2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원수를 동료로 바꾸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자. 3) 상처 받은 경험이 성문을 닫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 문을 열자. 3)-1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이루실 미래의 회복과 축복, 구원 경험을 꿈꾸며 성문을 열기. [참고문헌] 사전“עָבַד”.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0. (Michigan: Wm. B. Eerdmans, 1999): 376–405.“נהג”.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2.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5): 675.주석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lenkinsopp, Joseph. Isaiah 56-66. The Anchor Bible Vol. 19B, New York, NY: Doubleday, 2003.Duhm, D. Bernh. Das Buch Jesaja. Hand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Prophetischen Bücher 1; 2 ed.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2.McConville, J. Gordon. Isaiah. Baker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Prophetic Book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atts, John D.W.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25;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5.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단행본오성호. 『56-66장을 중심으로 본 이사야서의 종말론 신학』 (서울: 솔로몬, 2012).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아티클Stansell, Gray. "'They All Gather, They Come to You': History, Utopia, and the Reading of Isaiah 49:18-26 and 60:4-16." In The Desert Will Bloom: Poetic Visions in Isaiah, edited by A. Joseph Everson, Hyun Chul Paul Kim. Ancient Israel and Its Literature, 197–216. Atlanta: SBL, 2009. [1] McConville, Isaiah (2023), 668.[2] cf. Berges, Jesaja 55-66 (2022),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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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4-9 시선(Horizon)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주전 587년 멸망해서 바닥만 쳐다보고빛을 잃은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한다(4절).“니 눈을 들어 ‘보라’!”(4절) 사실상 시온(예루살렘)은 3번의 침략과 파괴로 정말 남은 것이 없었다. 땅은 황폐했으며, 지도자, 똑똑한 사람은 모조리 바빌로니아로 끌려갔었다.그렇기에 시온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은망하면 더 망했지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언자들(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등)에게 약속하셨듯백성을 귀환 시키셨다. 하지만 그 약속을 이룬 제3이사야의 시대에도눈앞의 현실은 여전히 폐허였다.그 절망적인 상황 한 가운데에서하나님은 명령하신다. “똑바로 함 봐봐라.” 스스로 망했다고 생각한 시온에게 엄청난 구원의 행렬이 몰려오고 있다(4-9절).시온에게 변한 것은 딱 하나, 시선뿐이다.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만 꽂혀 있었을 때는 이 구원 행렬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눈을 ‘들었을 때’하나님이 이끄시는 ‘구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시온의 시선의 변화에 따라 그의 외적인 환경만 바꾸지 않는다.그의 내면도 완전히 역전시키신다. 절망에서 기쁨으로실망에서 경이로움으로좁음에서 넓어짐으로(5절). 이정도로 놀라긴 이르다.이방나라에서 오는 짐승, 이방인 모두는자신들이 바빌로니아에 끌려갔을 때와 같이 어거지로 오는 것이 아니다. 모두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찬송하고(6절),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기 위해서(7절)성전, 바로 시온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를 하나님이 수용하고 시온을 영화롭게 하신다(7절). 또한, 흩어졌던 친족들이 빠르게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8절). 이러한 모든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은스스로 ‘보잘 것 없다’라고 생각하며 절망과 실망, 소망 없음의 상태에 있는시온을 손수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신다(9절). 이 사건은 오직 시온에게만 향하는 것 같지가 않다.오늘날 우리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How? 1) 나의 상황이 절망과 실망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눈을 들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에 순종하자. 2) 이방나라, 짐승들이 보여주는 예배를 우리의 삶에서 드리기 2)-1 억지로, 생색내려는 마음 내려놓고, 하나님만 올려드리는 삶을 살자. 3) 나를 세우시는 분은 오직 ‘야웨 하나님’ 한 분뿐임을 기억하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Berges, Ulrich F.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Translated by Millard C. Lind. Hebrew Bible Monographs 46;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McConville, J. Gordon. Isaiah. Baker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Prophetic Book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Motyer, J. Alec.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 Commentary. Downers Grove, IL: IVP, 1993.Oswalt, John N.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8.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Stansell, Gray. "The Nations's Journey to Zion: Pilgrimage and Tribute as Metaphor in the Book of Isaiah." In The Desert Will Bloom: Poetic Visions in Isaiah, edited by A. Joseph Everson, Hyun Chul Paul Kim. Ancient Israel and Its Literature. Atlanta: SBL, 2009.Sweeney, Marvin A. Isaiah 40-66. 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17; Edited by Rolf P. Knierim, Gene M. Tucker, Marvin A. Sweeney.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6.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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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9.15-21 고엘, 야웨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바라보심’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은 여느 때와 같이 백성을 바라보셨다(15b, 16절).하지만 곧 이상함을 인지하셨다. 당연히 있어야 할 ‘미쉬파트’가 없었다. 이러한 백성의 상태는 야웨의 눈에 ‘악’과 같았다(15b절). 그리고 야웨께서는 사법적 정의를 실현할 사람이 없으며, 야웨의 종으로서 인간과 야웨 관계를 중보할 자가 없고야웨를 도와줄 수 있는 ‘종’과 같은 자가 없음을 보시고말을 잇지 못하셨다(16절). 도와줄 자가 없으니스스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출격하신다(17절).구속자, 고엘이신 하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사람 밖에 없다.반역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성실한 자, 끝까지 개기면서 불성실한 자 하나님의 개입은 돌이킨 자에게는 ‘구원’이지만불성실하고, 미쉬파트와 쩨다카를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다. 아니,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된 것이다(cf. 마 7:12). 이렇게 교통정리를 끝내신 뒤하나님은 진지하게 백성에게 자신의 영과 말씀을 주신다.그리고 영원토록 백성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감찰하고 계신다.성실한 자인지, 불성실한 자인지.미쉬파트를 행하는 자인지아니면 내 이익을 위해 거짓 증언하며 거짓 고발을 일삼는 자인지.쩨다카를 행하는 자인지약자, 이웃을 착취하는 자인지. 만약 후자라면, 그러기를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개입은 무서운 심판이 될 것이다.하지만 재빠르게 돌이켜전자가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승리/구원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 구원을 맛본 뒤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과 말씀으로무장시키신다.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우리의 삶에서 미쉬파트와 쩨다카를 행할 수 있도록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개임을 구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How? 1) 내 자존심, 이익을 위해 객기부리는 것 멈추기1)-1 남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닌 올려주는 말 하기. 1)-2 내 자존심 때문에 나오는 안 해도 되는 말 안하기. 2) 말씀이 내 가슴을 찌를 때 빠르게 돌이키는 훈련하기(회개). 3)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거하는 ‘입’처럼 행동하기 3)-1 거짓말, 교만의 말, 원색적 비난 하지 않기. [참고문헌] 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니브, 로이드 R. 『구약의 성령론』 차준희, 한사무엘 역. 한국구약학연구소 총서 003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오성호. 『56-66장을 중심으로 본 이사야서의 종말론 신학』 (서울: 솔로몬, 2012).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 『구약 예언서 수업』 (서울: 감은사, 2024).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Childs, Brevard S. Isaiah.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Delitzsch, Franz.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Translated by James Mart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7; Vol. 2, Edinburgh: T&T Clark, 1973.Oswalt, John N.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8.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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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8-12 노력 + 기도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시작부터 조건절로 시작한다.“그리하면”,즉, 6-7절에서 말하는 자신을 포기하고 이웃을 챙기는 행위,압제 받는 자에게 자유를 주고,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한 마디로 하면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 전제된 본문이다. 하지만 시편 5편의 시인의 태도에서 배웠듯, 우리의 실천, 인간적인 노력‘만’을 가지고 걸어가면 안된다. 이것과 함께 늘 “기도”가 동반되어야 한다.하나님이 일하실 Room을 우리의 삶에서 기도를 통해비워 놓아야 한다. 오늘날 예배의 종류는 나일강이 범람할 때의강물처럼 정말로 넘쳐 흐른다. 새벽예배, 특별 새벽예배, 고난주간특별기도회, 수요예배, 금요 찬양집회, 주일예배 1-5부. 하지만, 만약 개인의 삶에서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 없다면, 사회적 정의(쩨다카)와하나님의 사법적 정의(미쉬파트)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하나님께 올려진 예배는 역겨운 향기(cf. 사 1:13)일 뿐이다. 우리는 ‘나’만 만족하는 이기적인 예배에서내 이웃의 네페쉬(목구멍, 영혼, 숨)를 만족시킬 수 있는실천적 사랑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물 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과 같이(사 58:11)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다시 세우는 한 사람으로 사용하실 것이다(사 58:12). 이러한 예배가 지속된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변 이웃, 교회 주변 약자를 살리실 것이고이를 통해 또, 교회의 예배를 살리실 것이다. 실천적 사랑을 삶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How? 1) 단순히 내 목구멍을 채우는 기도에서 내 옆 사람의 영혼을 채우는 기도로 확장하기2) 오는 주일에 공동체원에게 칭찬 한 마디 하기 [참고문헌] 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Brueggemann, W. Isaiah 40-66.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8.Childs, Brevard S. Isaiah.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Motyer, J. Alec.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 Commentary. Downers Grove, IL: IVP, 1993.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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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1-7 딸깍 굶식 or 금식
2. 내 삶에 적용 제3이사야가 되살린 선배 예언자들의 날카로움[1]이 나타난오늘 본문은 주전 500년대 말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날카롭지 않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묵상을 하는 우리에게, 더 나아가 영적 자뻑에 빠져있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심장을정확히 찌른다. 백성들은 절기에 따라 금식을 하면서자신들이 금식하는 것을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며신앙 있는 ‘척’했다(2, 5절). 그 금식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금식이었다(3b-5절).그들은 금식의 형식은 지켰으면서금식하는 자의 마음, 태도는 지키지 못했다.그래서 금식 중에 쾌락을 추구했으며, 일꾼들을 착취했다(3b절).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웃에게 소송을 걸고, 폭력을 행사했다(4절). 내 이웃의 굶주림, 고통은 눈 밖이며,그저 하나님의 응답을 당연시 여겼고, 바랬다(3a절).늘 하듯이 “딸깍” 굶식을 한 것이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하나님이 금식으로 무엇을 의도하셨는지를정확하게 알 수 있다. 바로 억압당하는 자의 자유(6절)이며, 공동체,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다(7절).[2] 우리의 신앙 생활, 영적 금식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자기 학대’가 아닌이웃을 위한 ‘자기 포기’다. 내 삶에서 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나의 열심은 그저 껍데기이며, 굶식이다. 따라서 내 일상에서 하나님의 쩨다카와 미쉬파트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How? 1) 만약 내가 하나님을 자판기로 생각했다면, 회개하기.1)-1 내가 정말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는 기도 응답이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돌아보자. -2 딸깍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3] 2)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을 잠시 내려 놓고, 공동체를 위해 5분이라도 기도하기. 2)-1 교회 공동체 or 회사 동료들 3) 오늘 하루 동안 나 말고 남을 위한 행동 딱 하나라도 해보기 3)-1 가족을 위한 상차림 or 버스 탈 때 밝게 인사하기 등[1] 베스터만, 『이사야 (Ⅲ)』 (1999), 383.[2] cf. Peter Höffken, Das Buch Jesaja Kapitel 40-66 (Neuer Stuttgarter Kommentar Altes Testament 18/2; Stuttgart: Verlag Katholisches Bibelwerk, 1998), 199; Fohrer, Jesaja 40-66 (1986), 209.[3] Do not exploit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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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7.14-21 박살 난 자와 함께 있고 회복시키는 야웨
2. 내 삶에 적용 제3이사야도 제2이사야처럼 모든 민족의 구원을 말하지만,그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바로 불의한 자들에게는 구원이 아닌 ‘화’가 선포될 것[1]이라는 선이다(20-21절). 구원 상태(샬롬)에 머물 수 있는 자는 오직하나님을 입으로, 삶으로 찬양하는 자 뿐이다(사 57:19; cf. 사 43:21) 과거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귀환했기에 자신들에게 이미 샬롬, 즉, 구원 사건이 임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임했다.(구원 사건이 구원 상태를 보증해주지 않음)그러나 문제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다시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들은 약자를 괴롭히며, 부당한 이익을 취했으며(17절), 하나님이 가라고 한 길이 아닌, 자신의 욕심에 눈멀어패역한 길(17절)로 걸어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보시고 오히려 고쳐줄 것이라고 말한다(18절). 그렇게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박살 날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마음(לב)과 영(רוח)을 소생시켜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내가 새롭게 깨달은 하나님이다.구원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이곧 나의 모습과도 같이 보였다.나의 탐심과 죄악으로 인해나는 늘 하나님의 폭발 임계점을 시험(17절)하면서내가 가고 싶은 패역의 길로 끊임없이 질주한다. 그러한 내가 당해야 할 것은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깨지고, 낮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쳐서 박살 나기 전에 스스로하나님 앞에 처절하게 낮아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길을 곧게 해 주시며내 영과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15절).그리고 다시 하나님과 함께,하나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신다(15-16절). 만약 이것을 일찍이 깨닫지 못하고,여전히 하나님 앞에 목이 굳어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욕망에 끌려다닌다면, ‘구원 사건’에는 참여했음에도‘구원 상태’를 결코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다(20-21절). 그런 최악의 상태에 빠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깨지고 낮아져서우리의 입에 찬양을 창조하신하나님의 회복에 참여하여, 샬롬을 누려야 한다. How? 1)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기 1)-1 친구, 일, 돈, 명예, 불안, 두려움 등. 내 마음의 길로 이끄는 것들을 직면하기 2) 교만하고 현재에 안주했다면, 하나님 앞에 스스로 처절히 회개하고 낮아지기. 3)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오늘 찬양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 고백하기. 3)-1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으로. [참고문헌] 사전“דָּכָא”. G. J. Botterweck, Helmer Ringgren, Heinz-Josef Fabry.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3.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75): 195–208.“דַּכָּא”.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1.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4): 221.주석류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Goldingay, J.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Isaiah 56-66.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1] 베스터만, 『이사야 (Ⅲ)』 (1999),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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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6.1-8 하나님의 백성의 새로운 정의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율법에 의한 자격 없는 이들까지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규칙(신 23:1-3)을 스스로 폐기하시고,고자와 이방인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들의 탄식과, 그들을 괴롭히는 자의 이론을정면으로 반박하신다(사 56:3-7) 그러고는 새로운 백성의 조건으로 “의”, 쩨다카 행하기를 부여하신다(사 56:2) 쩨다카를 행하는 것의 의미는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며, 손을 금하여 어떤 악도 하지 않는 것이다.[1]이렇게 백성의 정의가 확장되는 것은야웨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며, 구원의 지평이 ‘선택 받은 백성’에서‘만민’, 야웨를 나의 주인으로 ‘선택 하는 백성’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이방인인 우리가야웨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며,사랑하며, 그의 종이 될 수 있었고,그가 주신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백성이 된 고자와 이방인을 포함한 ‘만민’에게하나님이 하시는 명령은 하나다. 하나님의 전에 모여서그 하나님의 전을‘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 즉, 우리는 교회에 모여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중보[2]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보야 말로 하나님이 생각한 교회가 있는 목적이며, 교회에게 부여한 하나님의 임무이기 때문이다.How? 1)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고, 악행으로부터 손을 멀리하기 2) 오늘 기도 할 때에 남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 갖기. 3) 내가 전도할 대상을 위해 기도하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바운스, 윌리암 D. 『목회서신』 채천석,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46 (서울: 솔로몬, 2009).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Goldingay, J.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Isaiah 56-66.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New York: Bloomsbury, 2014.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atts, John D.W.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25;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5.Zapff, Burkard M. Jesaja 56-66. Die Neue Echter Bibel Würzburg: Echter Verlag, 2006.[1] Paul, Isa 40-66 (2012), 451; 김회권, 『이사야 40-66장』 (2020), 500-1.[2] 중보기도를 ‘도고’기도라고 말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장로교가 있는데, 이는 편협한 사고에 빠져 중보라는 큰 맥락을 가진 단어의 의미를예수라는 작은 의미에 가둔 것이다. 디모데전서 한 구절을 가지고 예수만이 중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석서를 참조하지 않은 번역 성서의 액면가만 보고 해석한 해석상의 오류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주석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윌리암 D. 바운스, 『목회서신』 채천석,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46; 서울: 솔로몬, 2009), 318-20, 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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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6-11 찾으라, 부르라, 버리라, 돌아오라, 복종하라
2. 내 삶에 적용 하나님께 악인, 불의한 자로 묘사되는악인의 길, 불의한 자의 생각으로 평가되는 이스라엘의 행동은하나님을 불신한 것이다.하나님이 직접 말한 구원 계획을 신뢰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게끔 우상을 의지했고(cf. 사 46:1-7)늘 두려워 했으며, 하나님이 바라보는 길에서 떠나 걸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하나님이 갚으실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여스스로 복수를 계획하는 자.당장에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하나님이 잠잠하라고 했음에도, 시끄럽게 일을 그르치는 자.하나님이 도우신다고 했지만, 그 도우심이 보이지 않기에 두려워 떠는 자. 내 계산은 이게 맞는데 하면서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지혜의 길을 걷지 않는 자.그러한 자가 바로 우리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그 길에서 돌이켜야웨께로 돌아와 기도하고 찾으라고 명령하신다(사 55:6-7; cf. 마 7:7-8). 이스라엘과 달리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역사적 증거를 하나님이 주셨다.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cf. 요 1:1).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육의 양식을 제공했고(마 14:13-21)더 나아가 우리가 꼭 먹어야 할, 생명을 주시는 영적 양식이 되셨다(요 6:35-40).그가 우리에게 보이신 모범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데목숨을 거는 하나님의 “복종의 화신”이었다.[1] 이런 복종의 화신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는 삶이다. 즉, 순종할수록 예수님은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았다(cf. 요 4:34; 6:38)[2] 우리는 이러한 모범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못 본 척 할 수 없다.모르는 척할 수 없다.그의 걸음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해야 할 걸음이다. How? 1) 나의 계산기를 끄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 1)-1 바쁜 아침시간이지만, 매일 5분이라도 침대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2) 두렵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담대하게 걸어가기 3) 오늘의 기도에서 “내 길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참고문헌] 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구약 예언서 수업』 (서울: 감은사, 2024).Brueggemann, W. "Isaiah 55 and Deuteronomic Theology." ZAW 80, no. 2 (1968): 191–203.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1]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 487.[2] Ibid.,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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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1-5 영적 가계부
2. 내 삶에 적용 하나님이 2절에서 ‘계속해서 내게 들으라’라고 명령한 것은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신 8:3; 마 4:4).그래서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도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깨우침을 받았음(사 50:4). 또한, 이 말씀이 우리가 처한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1]사실 이 힘든 상황이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맛볼 수 있는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게 되는 최적의 순간이다. 이 맛을 느낀 우리의 영혼은 기아 상태에서 영양 충분의 상태로 역전된다(3절). 삶을 삶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이제는 내 신앙의 ‘멍청비용’을 줄이기 위한 영적 가계부를 써볼 때다. How? 1) 오늘 하루 참 생명과 평안을 주지 못하는 양식이 아닌 것(릴스, 숏츠)에 투자한 시간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데에 얼만큼 투자했는지 비교해보기[참고문헌] 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1] cf. 김회권, 『이사야 40-66장』 (2020),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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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4.6-10 베리트 샬롬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나에게 계속해서 보여지는 단어, 어구는 다음과 같다.“네 하나님이 말한다.”“네 구속자 야웨께서 말한다.”“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야웨께서 말한다.”“자비”(헤세드), “긍휼”, “샬롬”, “언약” 이런 속성들로 묘사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반역에 의해이스라엘을 잠깐 버렸다.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과 약속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헤세드)하나님이 먼저 그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비추신다. 그러고 계속 그들에게 말씀하신다(6절, 8절, 10절)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을 지키시는 하나님,신실하신, 사랑(헤세드)의 하나님이다. 그 말씀하신 바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죽이셨고, 부활시키셨고, 영광 받게 하셨다.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강력하다.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 53장 이후에 54장이 이어지는 것처럼.이러한 예수님의 수난-죽으심-부활-승천 이후,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베리트 샬롬”, 샬롬의 언약을 맺으신다. 그 언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조건은 없다.이 언약은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표증으로,영원히 변하지도, 없어지지도, 심지어 흔들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그저 신실하신 하나님(헤세드)과 함께 하는 것 뿐.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실하듯, 그 신실하심을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돌려드리는 것(헤세드의 원칙).즉, 우리가 대접 받은 대로 하나님을 대접할 뿐이다(cf. 마 7:12).이러한 자발적 돌려 드림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내 인생의 아주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영원한 베리트 샬롬 속에서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1) 상황, 환경, 미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두려움이 찾아올 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베리트 샬롬을 기억하기 1)-1 기도할 때 “베리트 샬롬”이라고 그냥 외치기 2)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2)-1 오늘 하루 하나님은 나의 고엘이시다. 나를 만드신 분이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다 라고 고백하기. 3)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실하셨듯, 하나님께 우리도 신실해야 하고, 우리가 받은 이 사랑(헤세드)과 긍휼을 우리의 이웃에게 흘려 보내기. 3)-1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욕 나와도 한 번은 참기 등. [참고문헌] ㅁ“גָּאַל”. G. J. Botterweck, Helmer Ringgren, Heinz-Josef Fabry. in Theological Dica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2.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75): 350–5.골딩게이, 존. 『이사야』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서울: 성서유니온, 2012).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and 김치현. ”「개역개정」 창세기 9장 13-17절의 '무지개' 번역에 대한 번역사적 고찰”. 「구약논단」 92 (2024) 220–37.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Childs, Brevard S. Isaiah.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ㅁ“שָׁלֹם ,שָׁלוֹם”.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4.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9): 1506–10.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ebb, Barry G. The Message of Isaiah: On Eagles' Wings. The Bible Speaks Today Edited by J.A. Motyer.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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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2.13-53.12 오늘도 찍먹(종의 노래 4)
2. 내 삶에 적용 베드로는 이사야 53장을 인용[1]하며, 종의 고난을 대속적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로 이해한다.[2]즉, 베드로는 그저 그리스도에 대한감동과 감사에 머물러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니가 직접 그 길을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앉아서 꿀빠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도 오늘 본문을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대속적 은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베드로처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53:11에 근거하여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식을 그리고야웨를 아는 지식을곤고한 자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데리고 오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의 손을 통해서 나에게 온그 ‘고난’의 십자가를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남한테 떠넘기며자기가 가고 싶은 아무 길(a way)이나 가는 것이 아닌(cf. 사 53:6)스스로 그것을 지고 모범적 모델, 예수님이 걸어간 ‘그 길’(the way)을(cf. 사 53:7)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 53:12에 나타난 종의 모습은 ‘이타적’이다.요즘은 마초적, 상남자, 군사 소비주의와 세상의 지배하는 니체의 초인에 빠져있다.[3]그런 상남자적 요소도 좋다. 하지만, 이타적인 사람이니체가 말한 ‘소심하고, 나약하고, 비겁한 실패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야웨의 눈에는 성공적이며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사람이며, 승리자의 모습이다(사 53:12). 우리는 대속적 은혜(사 53:5)에만 머물러 서 있으면서, 그 야웨의 종 뒤에서 구경만 하면 안된다. 예수님이 탱킹하면서 나아가는 그 걸음에우리도 함께 걸어가야 한다. 한 번씩 우리에게 튀는 채찍을 함 맞아 보면서 얼마나 아픈지를 경험해야 하고,그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찍먹 해보면서그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자이다. 야웨가 도우신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것을 감당한다(cf. 사 50:4-9). 종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야웨께서 갚아 주실 것을 믿고그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한다(사 53:12). 그리고 그 종은 대적을 위해 중보하는 자이다. 이것은 ‘그 종’만의 걸음이 아닌,우리가 같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이다. 이것을 까먹어서 종교의 관전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고난에 참여하여 진정한 은혜를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1)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내 신앙’이 올바로 서있어만 가능함. 1)-1 매일의 묵상, 기도,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올바른 관계에 서있으려고 노력하기. 2) 이 신앙에 근거한 지식,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지식(달란트)을선교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 결과도 도출 해야 함. 3) 오늘 하루 날 개빡치게 만드는, 만들었던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참고문헌] 사전“עָוֹן”.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2.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5): 800.주석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Brueggemann, W. Isaiah 40-66.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8.Höffken, Peter. Das Buch Jesaja Kapitel 40-66. Neuer Stuttgarter Kommentar Altes Testament 18/2; Stuttgart: Verlag Katholisches Bibelwerk, 1998.Oswalt, John N.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8.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hybray, R.N. Isaiah 40-66.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Edited by Ronald E. Clement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Zapff, Burkard M. Jesaja 40-55. Die Neue Echter Bibel Würzburg: Echter Verlag, 2001.단행본김근주. 『특강 이사야: 예언자가 본 평화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서울: IVP,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von Rad, Gerhard. Die Botschaft Der Propheten. Siebenstern-Taschenbuch 100/101; München, Hamburg: Siebenstern Traschenbuch Verlag, 1967.———. The Message of the Prophets. Translated by D.M.G. Stalker. London: SCM Press Ltd, 1968. [1] 베드로전서 2:19-21.[2] 김근주, 『특강 이사야: 예언자가 본 평화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서울: IVP, 2017), 390.[3] Brueggemann, Isaiah 40-66 (1998),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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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4-8 나에 대한 평가는 야웨가 한다.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처음부터 끝까지내게 2개의 진영 대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JYP 아님).덧없는 진영 vs. 영원한 진영놀라운 사실은덧없는 진영은 눈에 너무 잘 보이는 것들로 이뤄져 있지만,영원한 진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한 진영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외침은 계속해서 백성들의 귀에 들린다.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저 이스라엘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로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를 인정하는 자로 재정립되었다(사 44:5; 51:4-5. cf 사 45:22; 49:6).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지만,그렇지 않은 민족에게는 세상 빡센 심판이다(5절). 야웨의 신실하신 통치(미쉬파트)가 이뤄질 때덧없는 진영이 의지하는 자연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연기 같이 사라지게 된다.남는 것은 오직, 야웨의 구원과 사회적 정의(쩨데크). 하나님의 백성은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반드시 이뤄지는 ‘구원’의 하나님의 말을 듣기에덧없는 필멸자들의 비방과 모욕에 쫄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야웨는 이렇게 평가한다.나의 토라를 마음에 가진 자, 의를 아는 자(7절).이들이 ‘들을 수 있다’ 그러고 덧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어사라질 것 아닌, 야웨의 영원한 공의(쩨데크)와 구원을 기대하고 시선을 맞춘다. How? 1) 하나님의 토라를 배우는 것에 열심을 다하기. 1)-1 이웃사랑, 하나님 사랑. 2) 일상에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자처럼 행동하기. 3) 내가 의지했던 덧없는 것, 날 두렵게 하던 덧없는 자들의 말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기. 3)-1 그들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나의 대한 평가를 듣자. [참고문헌] ㅁ“רֶגַע”. G. J. Botterweck, Helmer Ringgren, Heinz-Josef Fabry. in Theological Dica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3.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75): 1189.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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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0.4-9 억까쯤이야, 야웨가 도우시는데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는 시편 4편의 시인의 모습,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모습이 너무 잘 나타난다. 시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종은 그 어떤 멸시와 모욕도 담담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 주는 사람(4절).이를 위해서 종은 하나님과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오늘날 하나님과의 대화를 지속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묵상과 기도.[1] 따라서 우리는 매일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우리 주변의 곤고한 자를 위로해 줘야 한다. 즉, 우리가 배우고 성장하는 이유는 내가 잘남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다.오직,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함이며, 주변의 곤고한 자를 돕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내 주변의 사람을 이해하여 위로하고, 돕기 위해서하나님의 종인 우리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배움이 멈추는 때는, 내 숨이 멈추는 순간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학생으로서하나님의 것을 배우기 위해 존재하며,그 배운 것을 주변에 나누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대적들의 억까에 의해 종은 고통받지만(8절),하나님의 도우심이 자신에게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이러한 확신과 하나님이 돕고 계시다는 사실덕에 종은 당당하게 그 험준한 길을 걸어간다. 본문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도움은고난을 피하게 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다.바로 고난을 이겨내고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2]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걸어간다면, 평탄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을 감수하고 그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앞으로 전진해야 한다.[3] How? 1) 하나님의 종처럼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이 깨우쳐 주시는 것을 기억하기. 2) 그 깨우침의 자리에 매일 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 3)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은 고난을 수반함을 기억하고, 탄신에만 빠져 있지 않기. 3)-1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묵묵히 전진하기. [참고문헌] “כלם”. G. J. Botterweck, H. Ringgren. in Theological Dica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7.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95): 185–96.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1] 차준희, 『이사야서』 (2020), 141-42.[2] Ibid., 146.[3] cf. 베드로전서 3:17; 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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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9.1-6 하나님의 눈에 실패자 or 헌신하는 자 (종의 노래 2)
2. 내 삶에 적용 전체 본문 중 종의 믿음이 가장 돋보이는 구절인 4절에서내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 배우게 되었다. 자신이 쏟아 부은 노력이 헛된 것 רִיק, 공허 תֹהוּ, 허무 הֶבֶל이 되었음에도충분히 절망했다. 낙심도 했다. 그리고 괴로워 하기도 했다.하지만, 패배감에 절어 있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하나님 신뢰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실패 했음에도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그 마음을 하나님께자신의 신뢰를 고백한다. 그리고 인간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눈엔 실패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 믿음을 붙들고 있음.[1]이 실패가 하나님과 종 사이의 관계를 훼손하지 못한다.[2]즉, 사업의 실패, 인생의 실패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실패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종은 예레미야처럼자신의 사역 속에서 낙심을 경험한다(cf. 렘 20장). 하지만, 그 낙심, 낙담, 실패 속에 거주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닌, 그 사역의 근원인 하나님께 시선을 올린다.이 때 종은 새로운 힘,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4절의 믿음의 고백이 반전을 만든다.[3] 그 결과 소명에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그 결과를 보고 그의 자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닌오히려 더 큰 소명을 부어주시고더 큰 사역을 허락해 주셨음. 종의 눈에 자신은 실패자였지만,하나님의 눈에 종은 헌신한 자였다. 하나님은 결과만이 아닌, 그 과정을 전부다 감찰하신다. 결과가 좋더라도 과정이 엉망이라면, 그는 실패자지만,결과가 안 좋더라도 과정이 옳으면, 그는 하나님의 눈에 성공한 사람이다. How? 1) 내가 보는 실패가 하나님의 눈에 실패가 아닐 수 있음을 기억하기. 1)-1 실패가 아닌 전재는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 헌신했는가? 2) 낙담 중에 낙담을 만든 상황, 환경만을 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 3) 결과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반증이 아님을 기억하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박동현. 『예언과 목회(4)』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van Wolde, Ellen. "One Bow or Another? A Study of the Bow in Genesis 9:8-17." VT 63, no. 1 (2013): 124–49. [1] Ibid., 184.[2] 클라우스 베스터만,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 243.[3] 차준희, 『이사야서』 (2020),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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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8.9-13 제발 "들으라"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는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하나님 모두에게 이입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고난으로 연단 받고 시험 받음에도 불구하고완전히 정결하게 되지 않는 모습이나의 모습과도 같았고, 하나님도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참으시는데감히 내가 참지 못하고 화를 발산하여그 위대하신 이름에 먹칠하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또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하나님께서 더럽혀 지셨듯, 나도 그들처럼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로 인해서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는가? 질문하게 되었다. 그 어떤 우상들은 하나님처럼 자신을 의지하는 자를 구원할 수 없다.또, 하나님처럼 미래의 일들을 알 수 없다. 왜? 그들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이기 때문이다.심지어 인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무용’하다. 과연 나는 무용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아니면 유용한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그러한 창조주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고, 그의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수 많은 질문들이 묵상 하는 내내 머리속을 맴돌았다. How? 1)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내가 정말 힘들 때 제일 처음에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1)-1 그것이 바로 내가 의지하는 ‘우상’이다. 이를 회개하기. 2) 자신의 영광, 이름을 위해 참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3) 하나님의 창조 목적(사 43:21)에 따라 하나님을 향해 내 신앙 선포하기 [참고문헌] ㅁ“יָסַד”. G. J. Botterweck, H. Ringgren. in Theological Dica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6. David E. Green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90): 109–21.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ㅁ“חטם”.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1.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4): 307.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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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7.12-15 나의 '자랑거리'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야웨 하나님은바빌로니아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천문학, 점성술에 정면으로 맞서 도전한다.바빌로니아가 제국을 이루기까지 평생에 걸쳐 한 노력에 대한야웨 하나님의 도전이다. 바빌로니아는 자신 있었다. 왜냐하면, 전 세계(고대 근동)를 통틀어 자신들이점성술, 천문학에서 최강이었기 때문.그러나 결과는 안 봐도 뻔하죠. 바빌로니아가 뼈도 못 추리고 발렸다(15절).야웨 앞에서 뻣뻣했던 목이부숴져 버렸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우상, 능력, 힘, 지혜, 지식, 노력은자신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46-47장).그들의 평생의 노력이 야웨 하나님 앞에서 쓰레기임이 증명되었다.오직 ‘구원’은 야웨 하나님만이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사 43:11; 46:13).. 이렇게 바빌로니아가 처절하게 밟힌 이유는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들의 ‘교만’에 있다(사 47:10[1]).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라는 사실이다.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사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주의: 이는 결코 ‘비굴’해라는 말이 아님.내가 낮아지고 남을 높여주라는 의미.나의 능력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긍정하라는 의미.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해준 달란트로 교만하여, 깝쭉된다면, 하나님에 의해 나의 ‘자랑’은 ‘수치’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늘 겸손히 하나님이 허락해준 재능으로나를 높이는 것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을 높이고내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하나님은 더 큰 것들을 계속해서 허락해 주실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산다면 우리의 ‘자랑’은 ‘능력’이 아닌, ‘하나님’ 그 자체가 될 것. 우리의 대화 주제도 얼마를 벌었고, 내가 뭘 잘하고 이런 것들이 아닌,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허락해 주셨는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지이것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지를 논하는 대화가 될 것이다. How? 1) 내가 하나님의 자랑이듯, 하나님도 나의 자랑이기에“하나님은 저의 자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2) 나도 하나님의 자랑임을 기억하기. 3) 나를 통한 하나님의 업적에서 어떻게 하나님만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3)-1 저한테도 그 고민의 결과를 알려주세요.[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Friedländer, Michael. The Commentary of Iban Ezra on Isaiah: Edited from Mss. And Translated, with Notes, Introductions, and Indexes. Philipp Feldheim, Inc.: New York, NY., 1873.“סחר”.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2.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5): 749–50.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right, G.E. The Old Testament Agains Its Environment.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2; Naperville, IL: SCM Press Ltd, 1950.[1]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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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6.1-7 그 어떤 것으로도 비유 불가능한 ‘야웨’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43:22-28의 야웨의 선언을 생각나게 함.[1]그리고 계속해서 우상들의 불가함과 야웨 하나님의 가능함이 대조 된다. 우상들은 자신의 백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1, 2, 6-7절)야웨 하나님은 백성의 시작부터 끝까지 큰 도움이 되신다(3-4절). 우상들은 한 번 인간에 의해 자리가 정해지면 움직이지 못하지만(7절)야웨는 직접 움직이며 백성을 업고, 품고, 구해내신다(4절). 우상은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못하지만, 야웨는 부르짖기 전에 이미 응답하실 수 있으신 분이다(사 65:24). 우상과 야웨 하나님은 본질부터 다르다. 지속적으로 아무리 강한 신이라도우상의 형태를 취한 신들이 자신을 섬기는 백성에 의해 운반되어야 한다면, 그 신들은 자기 백성을 멸망에서 이끌어낼 수 없다.[2] 그 어떤 것도 야웨 하나님에 대한 ‘비유’로 사용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 그 자신만이 가능하다(cf. 출 3:14; 6장) 또한, 페르시아의 정복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계속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님이 변함없이계속 안아주기 때문이다.[3] 야웨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로 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러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직접 품고, 업고, 구하여 낸다고 약속하신다(4절).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이 본문에서 비쳐 보여진다. 그러한 하나님의 품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How? 1) 절대 주권자이신 야웨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을 기억하기. 2) 삼위일체 하나님을 내 삶을 통해 고백하고, 찬양하기 3) 아무리 인간적으로 두렵더라도, 그 두려움보다 더 크신 하나님 신뢰하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Goldingay, John. The Message of Isaiah 40-55: A Literary-Theological Commentary. London: T&T Clark International, 2005.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1]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Price-less Grace, Priceless Confession 묵상 참조.[2] 베스터만, 『이사야 (Ⅲ)』 (1999), 208.[3] Ibid.,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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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5.20-25 야웨가 한다 했제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함은자신의 힘의 과시를 통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공의와 자비의 행하심에서 드러난다."[1] 아브라함 헤셀의 말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가장 잘 드러난 것같다. 하나님은 이전부터 자신만이 참 하나님이며, 유일한 하나님이며구원을 가져다 줄 하나님이라고 계속 말하셨다. 그럼에도 이방민족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조차 이를 믿지 못했다. 아니 믿지 않았다. 그래서 고레스를 통한 바빌로니아 정복. 이 사건으로 많은 피난민이 생겼다.그 중에서 우상 숭배자에게 야웨 하나님은 말씀하신다(20-21절). “내가 한다 했제?” “내가 참 하나님이라 했제?”“니네 손에 나무 막대기들이 니네 구원 못한다 했제?” 그렇게 계속 얘기한 상황 속에서 이런 결과하나님의 말이, 그 예언들이 다 맞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기에사실 야웨가 승리의 나팔을 계속 불고, 이들을 미친듯이 조롱하면서야웨 하나님 스스로 승리를 만끽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에게 그렇게 조롱하면서 승리를 만끽하지 않는다. 딱 스스로 생각하게끔 질문을 던져놓고그것에 대해 답변을 마친 후(21절). 야웨는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초대하며구원으로 초대하신다. 사실, 초대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맹세’까지 하신다. 여기에 어울리는 멋드러진 사자성어가 있다. “외유내강”하나님은 우상을 지지하던 자들마저자신의 피조물, 자신이 만든 작품이기에그들을 멸망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 아닌구원의 부드러움으로 안으시고 초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 ‘외유내강’잘못된 점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비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조롱을 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들고 스스로 참 정답이 무엇인지 찾게 만들고심지어 답까지 알려주시며, 그 답을 수용한다면, 자신의 백성으로 초대하시는 부드러움. 넓은 마음. 이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니, 내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임을 깨달았다. How? 1) 하나님이 참 창조주이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기억하기. 2) 하나님이 한다 했으면, 무조건 이뤄질 것임을 믿고 나아가기. 3) 진정한 강함은 하나님의 부드러움 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맹세를 기억하기(23-24절). 4) 하나님은 나의 자랑임을 오늘 하루 쉴 새 없이 고백하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Heschel, Abraham. J. The Prophets. Perennial Classics ed. New York: Harper Collins Publisher, 2001.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1] Heschel, The Prophets (2001),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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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5.9-13 경험 그 이상의 구원 계획
2. 내 삶에 적용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계속 내 머리속을 맴돌던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교만(9절), 패륜(10절), 싸가지가 바가지(10-11절), 지가 뭔데(11절), 피조물 주제에(11절). + 네 자신을 알라(11절). 본문의 일부 이스라엘 집단(9절)은계속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들의 이상과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백성의 논쟁에 하나님은 친히 자신이 창조주임을 나타내시고왜 그런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지 대답해 주신다.사실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내 같으면 몇 번을 말했는데도 이러면그냥 “아 그래 니들이 맞다. 다 걍 바빌론에 있으면서 죽어라”.라고 할텐데 하나님은 끝까지 대화로 이끌어가신다. 물론 화 선포를 하기는 하지만, 그 화 선포는 심판 고지가 아닌지속적으로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의 뉘앙스이기에 친절하다. 다정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이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말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인다(사 43:25). 물론 백성들의 태도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그들의 구원경험과 그 때의 약속에 의거하여‘하나님이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하나님을 위해 변론하고 있는 것이다.이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거부하고 검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같다. 하나님은 내 경험 속의 하나님에 국한되지 않는다.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그 경험까지 창조하셨고, 그 경험을 뛰어 넘는 새로운 사건조차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 그 이상의 경험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회복시키기 원하신다.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How? 1) 내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 부수기 2) 나의 기쁨을 넘어서 힘듦마저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음을 기억하기. 3) 나의 창조주이신 야웨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일상에서 높이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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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5.1-8 모든 사건의 창조자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이 고레스를 선택하신 목적은 3가지다.[1] 1) 고레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 2)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함. 3) 전 세계가 하나님의 유일성을 인정하게 하기 위함.또한, 본문 단락 전체에서 계속 울리는 내용은“나 야웨가 이 일을 창조했다.”라는 야웨 하나님의 선언이다. 하나님은 자연의 모든 것, 빛부터 그림자까지전부 창조하신 분이며사건에 있어서 좋은 사건부터 중간 사건 나쁜 사건 모두하나님의 손을 거쳐서 나타난 것들이다. 그러한 모든 것의 ‘창조주’ 하나님이고레스를 선택하여 이방나라 정복 사건을 ‘창조’하신다.이 정복은 고레스의 명예를 위함이 아니다.하나님의 ‘나의 종, 내가 택한 그 백성을 해방하기 위함이다. 고레스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늘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고 세상은 말하지만,하나님은 이것에 반대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인공은그 모든 것의 주인인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지금 당장 악해 보일지라도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신실한 자,하나님의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자를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걸음일 뿐이다. 좋든 나쁘든 어떤 사건이든하나님의 손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하게 행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의 주인공인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은어떻게 할 수 있을까?1) 매일의 입술의 고백을 삶의 고백으로 만들기 1)-1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한다면, 사랑하는 자처럼 행동하기 2) 어떤 일이 내 눈 앞에 닥쳐와도 이 일을 만든 분은 ‘하나님’임을 기억하기 3) 그리고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나를 위한 구원의 수순인 것을 기억하기. 4) 도구로 쓰임 받는다면 교만하지 않기. [참고문헌] ㅁ“צדק”.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heological Dica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12.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2012):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1] Paul, Isa 40-66 (2012),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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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4.1-5 역전과 도움의 하나님
2. 내 삶에 적용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직접 다 지워 주시고(사 43:22-28)오늘 본문에서 이들을 “나의 종, 내가 택한”이라며 매우 다정하게 불러 주신다(1절). 그리고 이들이 들어야 할 말을 말씀해 주신다(2-5절) 하나님의 백성은 야웨께서 자신을 만들었고, 모태에서부터 지었으며, 도와 주셨고, 도와 주시고 계시며, 계속 도와 주실 하나님임을 인지 해야 한다(2절).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인지하고 ‘알기에’ 외부의 위협에 두려워 하면 안된다(2절).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우리가 죽을 것같이 힘들 때, 숨통을 틔워주신다(3절). 그리고 하나님의 “나의 영”을 통해그 백성의 소망 없음의 상태(3절)를 소망 있음의 상태로 역전시키신다(cf. 겔 37:11-14). 그 하나님의 개입의 결과로백성은 번성하게 되며(4절)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어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게 된다(5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께 선택 받은 자들이다. 이사야 44:2-5절의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2500년 전의 이스라엘이 아닌, 오늘의 ‘나’이다.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How? 1) 야웨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고백하기. 2) 성령의 충만함과 충분함 구하기 3) 하나님과 나만의 싸인 만들기(cf. 사 44:5). [참고문헌] 김주현. ”에스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רוח/루아흐)’의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백성 안에 임재하는 하나님의 영”. 「구약논단」 92 (2024) 106–34.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아이히로트, W. 『에제키엘』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Paul, Shalom M. Divrei Shalom: Collected Studies of Shalom M. Paul on the Bible and the Ancient near East 1967-2005. Culture and History of the Ancient near East 23; Edited by B. Halpern, M.H.E. Weippert, Th.P.J. van den Hout, I. Winter. Leiden, Boston: Brill, 2005.———.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estermann, Claus. Das Loben Gottes in Den Psalmen. 3 ed.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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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22-28 Price-less Grace, Priceless Confession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을 읽고 주석하고, 묵상하면서내 머리 속에 가장 크게 그려지는 이미지는미성숙한 아들, ‘이스라엘’이 싼 똥을최소한의 책임만 지게하고 모두 치우시는 아버지 ‘야웨’다.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더 정확히는 하나님을 선포(ספר)하기 위해 지어졌다(21절).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 아닌하나님께 바락바락 대들었으며(26절), 자기 자신을 세상에 선포했다. 그들이 행한 모든 행위들,양을 선별하고, 곡식을 가져오고, 그 위에 향을 올리고, 비싼 돈을 주고 향초를 사고, 화목제의 제물의 기름을 뿌리고하는그 모든 행위들은 다 자신의 자랑을, 멋있음을 보여주기 위한허례허식이었다(22-24절). 야웨 하나님은 이를 정확하게 알고계신다(24절).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 “거룩함”(사 6:3)을 따라자신의 “거룩한 이름”(겔 36:22-23)을 위해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직접 용서해 주신다.그리고 그 지은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값을 지불하지 않고(price-less) 은혜를 입었다.무료지만, 이 은혜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priceless) 매우 귀중한 은혜다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이런 값 없는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 How? 1) 내 삶의 태도를 통해 선포하기=> 예수님을 따르는 자처럼 행동(cf. 요 14장), like 밥 먹기 전에 기도하기. 2) 내 입의 고백을 통해 선포하기=> 오늘 하루 찬양, 기도로 하나님 높여드리는 시간 갖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Watts, John D.W.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25;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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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1-4 미쉬파트를 풍기며 약자를 보듬는 종
2. 내 삶에 적용 1) 오늘 본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미쉬파트, 즉 사법적 정의다(1, 3, 4절).그리고 하나님의 종은 미쉬파트를 세상에 보여주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Radical 하거나폭력적이지 않다. 귀가 찢어지는, 고통에 사무쳐서 내는 소리와 같은 외침 없이,조용하게, 은밀하고 겸손한 방식으로미쉬파트를 세상에 베풀고 있다. 오늘날에 우리에게 적용해보면우리는 미쉬파트를 각각 개인의 ‘삶의 자리’에서 나타내야 한다(2절).직장, 가정, 출퇴근하는 버스, 지하철 안 등. 즉, 예수님의 향기를 뽐내려고 하지 않아도은은하게 계속 풍기는 삶인 것이다. 2) 또한, 본문에서종은 가혹한 세상의 풍파에 고통 받는 자들에게새로운 고통을 얹어주는 것이 아닌, 그들을 품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모습과 달리오늘날 세상은 내가 보기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 피해자들에게(여기서 말하는 이 피해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가해자들로 인해 자신들의 일상을 침범 받은 사람을 뜻한다.) 니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 잘못이지, 니가 멍청한 탓이다 등피해자를 이상한 말로 매도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야만인이 많다.또는 사법부의 실수로 인해가해자의 인권은 챙겨주고피해자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그로인해피해자의 신상 등 많은 것이 공개되어 2차, 3차 피해를 입게 되는그런 세상이 현실이다.이 현실은 상한 갈대를 꺾는 현실이며,꺼져가는 등불을 끄는 각박한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 우리 ‘기독교’인은온전히 피해자의 아픔을 위로하고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2가지, 약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보듬는 것과 미쉬파트, 예수의 향기를세상에 풍기는 것은 내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하다. 오직 하나님의 ‘나의 영’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하다(1절).하나님의 영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하려고 노력한다면, 내 스스로가 곧 꺼질 등불이 될 것이다. 약자의 고통을 위로하고 미쉬파트를 세상에 풍기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1) 매일 아침 성령의 충만함, 충분함을 구하기 2) 내 안의 교만함, 욕심 회개하기 3) 앞만 보지 말고 한번쯤은 이웃을 돌아보기 [참고문헌] 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Paul, Shalom M. Isaiah 40-66: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Edited by David Noel Freedma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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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8-14 벌레를 위해 벌레가 되시는 분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총 3가지인데요.1. 이스라엘에 대한 호칭이다. 하나님은 사실상 신실하고 남부럽지 않게 자신의 백성들을 대접해줬지만,그 백성들로부터 받은 것은 ‘배신’이었다.그럼에도 하나님은 심판 이후에 이들을 영영 무시하는 것이 아닌“나의 종”, “내가 택한”, “나의 벗”이라고 부른다.이를 통해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의 죄로 인해 배신 당하셨고그 이유로 우리를 버리셨구나.”라며 절망하던 백성의 사상을 완전히 역전시킨다(8-9절). 2. 야웨 하나님 버스(각주. 20).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위험, 두려움으로 인해 쫄아 있을 때.나의 Big Brother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마 니 내 못믿나? 내가 하께”. 야웨 하나님은 나를 강하게 하시지만(10, 13절)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뛰어 드신다(11-12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께 믿고 맡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3. 벌레를 위해 스스로 벌레가 되신 야웨(14절).벌레 같은 날 위해하나님은 굳이 굳이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주신다.이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감격스럽다.역사적으로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부활로 시작되었다.이미 우리의 채무를 갚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우리의 억울함도 지속적으로 갚으시기 위해우리의 기업 무를 자의 위치를 자처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을 잔뜩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How? 1) 늘 회개하는 삶.2) 하나님과 친밀하게 관계 맺는 삶: 늘 기도, 묵상, 찬양으로3) 나의 정체성 기억하기: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광야, 포로지와 같은팍팍한 삶 속에서조차 하나님은 날“친구”, “내가 택한 자”, “나의 종” 부르시는 것 잊지 않기.4) 맡기기: 내가 억지로 복수하거나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닌고엘이신 야웨를 믿고 그에게 맡기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Brueggemann, W. Reverberations of Faith: A Theological Handbook of Old Testament Themes.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Norden, Eduard. Agnostos Theos: Untersuchungen Zur Formen-Geschichte Religiöser Rede. Stuttgart: B.G. Teubner Verlagsgesellschaft, 1956.Watts, John D.W.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25;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5.Westermann, Claus. Das Loben Gottes in Den Psalmen. 3 ed.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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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1-7 내 습관/버릇에 하나님이 있는가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야웨는 자신이 역사의 진정한 주인임을 밝히기 위해법정에 모든 나라들을 증인으로 소환한다(1절). 그리고 당시 동방, 페르시아에서 시행하는 정복전쟁과고레스의 순조로운 승리를 허락하고 이끌어가는 주체가 바로자신이라는 것을 수사 의문문을 통해 말한다(2-3절). 또한, 본인만이 역사의 모든 순간에,아니 역사가 시작되기 전,역사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건들 보다 앞에,역사의 마무리에 함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4절).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이방 나라의 백성들은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증언과 하나님이 이끌어가는 역사를 그들이“보고” 두려워하며 떤다(5절). 그러고는 습관에 따라 자신들이 의지할 우상을 직접 손수 만들고그 우상들의 강함을 원하면서서로 격려하며(6-7절) 우상들을 강하게 보수한다(7절). 오늘 본문은 나에게 질문한다.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심, 주권과 통치를 “보았을 때”나는 이방 나라 백성처럼 우상을 만들어 의지할 습관을 지녔는가? 아니면,이사야처럼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송할 습관을 지녔는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How? 1) 매일 아침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우선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기2) 매일 아침 삼위일체 하나님께 오늘도 함께 동행해달라고 기도하기.3)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기(2-3절). 4) 오늘 하루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 부르기.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핸슨, 폴 D. 『이사야 40-66: 목회자와 설교자를 위한 주석』 이인세 역. 현대성서주석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2).Sweeney, Marvin A. Isaiah 40-66. 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17; Edited by Rolf P. Knierim, Gene M. Tucker, Marvin A. Sweeney.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6.Watts, John D.W.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25;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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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1-8 우리는 모두 의존자
2. 내 삶에 적용 제2이사야는 바빌로니아 포로지에서난공불락의 성이었던,인간의 눈에 영영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요새,바빌론이 한낱 ‘풀’에 불과하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제1이사야가 선포한 구원의 성취가바빌론으로부터의 귀환으로 성취된다고 선포한다. 이 선포와 더불어제2이사야는 포로민들을 “위로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우리의 삶을 보면약자를 위로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내’가 위로를 받는 것도 필요하다. 인간은 ‘지존자’, All might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의존자’, dependent—Deku[1]이다. 따라서, 위로는 약자만의 ‘몫’이 아닌우리 모두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로자가 되어주셨듯,이사야가 위로하는 소명을 받았듯,우리도 누군가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또한, 위로를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위로가 지금 광야에 서있는 것 같은 우리의 삶에 “대로”를 낼 것이며삶의 굴곡들을 평탄화 시킬 것이다(3-4절). How? 1) 내 욕심보다 하나님의 욕심이 우선되는 삶 만들기 1)-1 묵상, 찬양, 특히 기도를 통해. [참고문헌]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서울: 복 있는 사람, 2020).베스터만, 클라우스. 『이사야 (Ⅲ)』 번역실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슈미트, 콘라드. "이사야."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안소근. 『이사야서 40-66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2 (서울: 바오로딸, 2017).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Debourse, Céline. "Textual Sources for the Babylonian New Year Festival during the First Millennium Bce." Chap. 3 In Of Priests and Kings: The Babylonian New Year Festival in the Last Age of Cuneiform Culture, 36–89. Leiden: Brill, 2022.Höffken, Peter. Das Buch Jesaja Kapitel 40-66. Neuer Stuttgarter Kommentar Altes Testament 18/2; Stuttgart: Verlag Katholisches Bibelwerk, 1998.ㅁ“חֶסֶד”. in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1. M.E.J. Richardson (New York: Koninklijke Brill NV, 1994): 336–7.Westermann, Claus. Isaiah 40-66. Translated by David M.G. Stalker. The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PA: The Westminster Press, 1969.Wolff, H. W. Anthropologie Des Alten Testaments: Mit Zwei Anhängen Neu Herausgegeben Von Brend Janowski. 2nd ed. München: Gütersloher Verlagshaus, 2023.[1]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서 본래 별명은 デク(데쿠), 비꼬는 말이었지만, 친구(우라라카 오차코)가 “할 수 있다”(できる, 데키루)로 재해석 해주어 정체성이 새롭게 정립된다. 또한, 작중에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얻고 주기에 본 “의존자”에 해당하는 명사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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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Rev.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Full Gospel Somang Church
HOSTED BY
Chi Hy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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